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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란? 디지털 기기나 인터넷을 매개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을 의미한다. 상대의 동의 없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유포, 유포 협박, 저장, 전시해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포괄한다.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사건인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을 어떻게 보셨나요?
남철희 매우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체포되지 않은 가해자들도 수일 내에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천정헌 우리 사회에 축적됐던 잘못된 성(性) 인식이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박수진 디지털 성범죄가 점점 악랄해지고 교묘해지고 있다는 걸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가해자가 저희 또래인 20대나 10대 중·고등학생이라는 점도 충격적이었어요.
이수민 N번방 이전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플랫폼만 바꿔가며 계속 일어났어요. 이후로도 유사 범죄가 일어날 것을 직감했는데 결국 터질 게 터졌다고 봐요.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영상을 착취하는 일련의 과정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가장 끔찍한 것 같아요.
최혜원 언론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갖기보다 선정적 보도에만 치중하고 가해자들에게 ‘희대의 악마’라고 서사를 부여하는 게 화가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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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가 일반 성범죄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을까요?
박수진 일반 성범죄가 면대면 신체 접촉인 것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는 발생 장소가 가상 공간인 인터넷이잖아요? 그래서 일반 성범죄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저지를 수 있어요. 또 가해자가 익명성 뒤에 숨기 때문에 큰 죄책감도 없고요.
최혜원 디지털 성범죄는 촬영자 또는 촬영을 협박한 자 외에도 유포자, 관람자 등 가해자의 층위가 다양해요. 또 텔레그램처럼 보안이 철저한 플랫폼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죠.
천정헌 제 생각엔 인터넷상에 피해 영상이 있는 한 언제든 재유포될 수 있고, 이로 인해 2차·3차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이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 여성가족부가 피해 영상의 삭제를 지원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최혜원 범죄 피해 영상 대부분이 한국 야동이나 일반인 몰카 영상이란 이름으로 음란물 사이트나 비밀 대화방에 올라와요. 실제로는 촬영자와 피촬영자 사이에 전혀 합의되지 않은 영상이고, 범죄의 결과물인데 맥락을 제거해 마치 콘텐츠처럼 소비되는 거죠. 심지어 피해자가 죽으면 유작이라며 프리미엄을 붙이는 등 끔찍한 범죄가 계속되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남철희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의 구성 방식이 피해자의 통제력을 앗아가는 것 같아요. 피해자 본인이 직접 영상을 촬영하고 전송하게끔 유도하거든요. 피해자 스스로 범죄를 자초했다는 자책에 빠질 수 있어요. 또 피해 영상 유포 및 유포 협박이 피해자를 마비시켜서 경찰이나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만들어요.
디지털 성범죄 발생 빈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남철희 정준영 단톡방 사건, 웹하드 카르텔 같은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징조가 되는 사건들이 분명 있었지만, 제대로 처벌되거나 공론화되지 않았어요. 이처럼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 양상이 지금처럼 심각한 상태로 진화했다고 생각해요.
박수진 디지털 성범죄에 경미한 처벌이 내려지는 게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법무부가 발행한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처벌로 벌금형이 56.5%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가 30.3%, 징역형은 8.2%에 그쳤다고 해요. 이처럼 경미한 처벌만 내려지면 성범죄자는 자신이 재수가 없어서 걸렸고, 걸려도 벌금이나 내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최혜원 뒤틀린 성 인식 외에도 청년 실업의 심화 등 사회 불안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박사방의 박사는 방마다 입장료를 정해 돈을 받고 성착취물을 판매했어요. 철저히 돈벌이가 목적이었죠. 다른 성착취물 유포자(헤비 업로더)들도 성착취물을 모으고, 교환하고, 판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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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상에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지요. 디지털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던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남철희 기존 법이 새로운 형식의 범죄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따르면 피해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한 자를 처벌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최근의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처럼 피해자가 직접 성착취 영상을 업로드하면 피해자가 유포자와 동일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자가 피해자가 되거든요. 지난 5월 개정안을 통해 피해자가 직접 피해 영상을 올렸을 때 처벌받지 않도록 했지만 뒤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정헌 디지털 성범죄는 대체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등에 의해 처벌되고 있어요.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데에는 기존 법이 형벌로서 위하력(공개 처형과 같이 두렵고 무서운 형벌로 잠재 범죄인을 위협하여 범죄를 예방하는 힘), 재범방지, 교화 등의 목적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해서라고 봐요. 형량 역시 지능화된 범죄에 맞게 가중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예요. 물론 사법부로선 다른 범죄와의 형평을 고려해야 해서 무조건 형량을 높일 수 없겠지만, 일반 시민의 법 감정에 맞는 새로운 양형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박수진 맞아요. 일반 시민의 법 감정과 실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의식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에 대해 법에서 정한 형량은 징역 5년 이상에서 무기징역까지예요. 하지만 지난 4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법관들을 상대로 실시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1.6%가 징역 3년형을, 응답자의 23.7%가 징역 5년형으로 응답했어요. 법정형의 최소 형량이나 그에 밑도는 정도로 징역형을 부과한 거죠.
이수민 특수살인, 폭력, 일반 성범죄 등 다른 범죄와 비교했을 때 디지털 성범죄 사건만 특별히 많은 형량을 줄 수 없다는 게 판사들의 의견이에요.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가 지속적인 것을 고려했을 때 기준 형량을 높여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 주동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원이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혜원 일반 성범죄의 재범률이 다른 범죄에 비해 높다는 자료를 봤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역시 재범률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따라서 신상 공개와 같은 강력한 방법이 재범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수민 가해자는 본인의 쾌락과 돈벌이를 위해 피해자를 노예 취급하고, 가학적인 영상을 찍게 하여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했잖아요. 이렇게 극악한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상 공개가 동일 범죄에 대한 가중 처벌의 요소가 있더라도 무조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서 불이익을 주고 범죄를 억제해야 합니다.
남철희 경찰의 신상 공개가 늦어지면 SNS상에서 네티즌이 사건과 무관한 개인을 해당 범죄의 가해자라며 신상을 털기도 해요. 가짜 뉴스가 생산되어 엉뚱한 시민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봐요.
천정헌 솔직한 심정으로는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가해자도 느껴보라는 취지로 다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신상 공개가 재범방지나 교화에 효과적일지는 의문이에요. 가해자들은 애초에 익명성에 기대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신상 공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고요. 오히려 더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우려됩니다. 범죄 수위에 따라 공개 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남철희 성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 여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에서 정한다고 해요. 사건별로 공개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의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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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정부는 관계부처와 협력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내놨습니다. 정부 대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남철희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처벌을 무겁게 하고, 피해자 보호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어요. 또한 수요 차단 및 인식 개선을 위해 예방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방향성이 잘 설정되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방 교육이 보여주기식으로 끝나지 않고 실효를 거두려면, 예방 교육의 질을 담보하고 듣는 이가 집중할 수 있도록 내용 구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혜원 정부는 국민이 디지털 성범죄물을 신고하고, 신고된 사람이 해당 범죄로 기소 또는 기소 유예될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는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민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관심을 두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또한 성범죄 근절이 사회 전체가 주목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릴 수 있고요.
박수진 ‘성범죄물을 소지할 시 처벌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등 처벌의 사각지대를 막겠다는 의지가 보였어요. 다만 법적 형량을 상향하겠다고 했는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법적 형량은 지금도 꽤 높아요. 하지만 실제로 법관들이 법적 형량만큼도 선고하지 않는 게 문제죠. 현장에서 법관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적절한 양형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봐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면?
- 여성긴급전화 1366
women1366.kr
-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02-735-8994
d4u.stop.or.kr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02-817-7959
cyber-lion.com
-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sisters.or.kr
- 한국여성의전화 02-2263-6464~5
hotline.or.kr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적정한 양형 기준이 세워져야 합니다.
Audienc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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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디지털 성범죄가 문제로 인식되는데, 성범죄에 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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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등 구체적인 사회 변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불법 촬영, 유포, 관람이 모두 ‘잘못’이라는 인식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교육에서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이 이뤄져서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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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성폭력이 문제라는 인식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처럼 디지털 성범죄도 앞으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해요. 또 피해자들이 낙인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사회가 조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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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영상을 다운로드 받는 게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의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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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이 깨진 창문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자극이 여과 없이 수용되잖아요. 디지털 성범죄가 더 공론화되어 건강한 성인지 감수성을 함양하고, 법 제도가 정비되어 안전장치 역할을 잘 수행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