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정부는 현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충, 공공의대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공공의료 정책을 내놓았다. 의료계는 이에 반발하며 집단휴진을 강행했고,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업무 개시 명령과 형사 고발로 대응했다. 서로 입장을 굽히지 않은 채 팽팽히 대치하던 정부와 의료계는 결국 지난 9월 4일,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관련 정책을 훗날 재논의하기로 약속하고 논의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처럼 뜨거운 감자가 된 공공의료 정책에 대해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학생 연합 독서토론동아리 ‘따뜻한 책 이야기’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평소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이세진: 종합 병원 방문 시, 대기 환자가 많아서 예약을 했더라도 오래 기다릴 때가 많았어요. 반면 대기 시간에 비해 진료 시간은 2분이 채 되지 않아서 의료 시스템이 종합 병원에 치중되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정용희: 저는 현 의료 시스템에 만족해요. 특히 의료 민영화가 진행된 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치료 시 고액의 비용이 드는 반면, 우리나라는 검사도 무료로 받고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소민: 부연하자면 미국의 경우 고액의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사례도 있다고 해요. 한국 국민으로서 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30일, 국회는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며 의료계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른바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황승현: 저는 국가가 비용을 보전해서 핵심 인력을 길러낸다는 점에서 공공의대의 설립 취지가 사관학교나 경찰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2018년 기준 공공병원 수가 전체 병원의 5.7%에 그쳐서 그동안 민간 병원이 의료 산업의 주축이었는데, 공공의대가 설립된다면 공공 의료기관을 추가로 구축하는 원동력이 될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이소민: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라면 ‘의대 정원 한시적 증원 법률안’으로도 충분하고, 굳이 많은 재정적 지원이 요구되는 의대 설립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세진: 의사 수 증원이라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정부 예산을 써서 공공의대를 직접 설립하기보다는 기존의 비인기과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7월 23일, 정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의대 정원 한시적 증원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2022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연간 400명씩 10년간 총 4,000여 명 증원을 목표로 하는데, 정부의 방안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이소민: 우리나라 인구 통계를 보았을 때 출산율은 낮아지고, 총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예요. 미래에는 의사라는 직업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데 갑작스레 정원을 늘려 놓으면 훗날 다시금 의사 수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지 우려돼요. 또 한시적 증원이다 보니 차후에 인원을 감축할 때도 진통을 겪을 수 있고요.
황승현: 제 생각엔 총 인구는 줄어들더라도 노년층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의료 서비스가 요구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기 때문에 점점 더 돌봄, 간호, 의료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요구 수준도 높아질 거예요. 따라서 의사 수를 증원하기 위해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용희: 정부가 방안을 발표하기 전에 입법 취지를 충분히 홍보하고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국민에게 정책 실효성을 일깨워주고 증원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방안을 발표해서 갑작스러운 느낌이 들고 아쉬움이 큽니다.
이세진: 의사 수 증원에는 찬성하지만, 정부안의 총 4,000여 명 증원이라는 숫자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도출한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또한 증원하더라도 동시에 비인기과에 대한 정부 지원이 병행돼야 할 거 같아요. 인원만 늘려놓고 정부 지원이 미비하면, 의사들이 인기과에만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앞선 입학 정원 증원 방침의 각론으로 의대 입시에 ‘지역의사 선발 전형’을 신설해 지역의사 및 특수 전문 분야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지역의사제’ 도입에 대해 찬성하시나요?
이소민: 지역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 자체에는 찬성해요. 그런데 법률안 중 지역에서 10년간 복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펠로우 2~3년 등 수련 기간을 전부 포함하기 때문에 전문의로서 실질적으로 지역에 머무는 기간은 짧아요. 지역의사가 의무 기간 10년을 채운 뒤에도 지역에 더 오래 남아있도록 하려면 교육 기관, 교통망, 복지 시설 등 다방면의 지역 인프라를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황승현: 지역의사제에 일부 허점이 있더라도 모든 의료 전문 장비와 인력이 서울에 밀집된 지역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동원해서라도 지역 의사를 육성해야 조금이라도 지역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용희: 저도 지역의사제 도입에 찬성하는데, 지방에 없는 인프라 중에는 병원 그 자체도 포함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방 소재 민간 병원은 의료 인력이 늘 모자라고, 재원 부족으로 장비도 노후화되는 경향이 있어요. 수익이 나지 않아 문을 닫은 곳도 많고요. 지역에 의사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지방의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월 21일, 전공의들이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에 반대해 무기한 집단휴진을 강행했고, 이후 전임의와 개원의까지 힘을 보탰습니다. 의대생들은 국가고시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는데요. 공공의료 정책에 대해 의료계의 반발이 거셌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정용희: 협의보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정책 추진 과정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반대를 드러내는 가장 강한 방식으로 집단휴진을 선택한 것이고요. 의대생의 경우 의대 정원이 증원되면 의사로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소민: 의대생은 정책이 시행됐을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집단인데 합의 없이 입시 문제를 건드린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의사협회와는 상의하면서 대학생들의 의견에는 왜 귀 기울이지 않았는지 절차상의 미비함이 느껴져 아쉬웠어요.
이세진: 정부가 정책안을 발표할 때 의료계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정책을 내놓는 건 정부여도 현장에서 실제로 영향을 받는 건 의료계 종사자들이잖아요.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생각을 듣는 과정이 먼저였다고 봐요.
황승현: 코로나19가 아직 심각한 시기에 공공의료 정책을 꺼내든 건 정부의 계산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정책 취지가 좋더라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잖아요. 대통령의 잔여 임기 동안 새 업적이 필요해서 서두르고 압박하는 모양새가 옳지 못하다고 봐요.
의사들의 집단휴진,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황승현: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감행한 집단휴진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근래에 국가고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는 말이 나왔어요. 집단휴진을 강행하고 국시도 거부하다가, 이제 와서 의료 공백을 메울 기회를 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 않나 싶어요.
정용희: 솔직히 갑질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제네바 선언)를 하잖아요. 이에 따르면 의사는 인류에 봉사하고,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선언하는데, 이번 집단휴진은 명분도 약하고 밥그릇을 뺏기기 싫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부 정책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더라도 전면적인 집단 휴진 외에 다른 방법을 더 깊이 고민해보는 게 좋았을 거예요.
이소민: 의사도 그저 하나의 직업일 뿐인데요. 고위험군 환자를 고려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집단휴진(파업)할 권리는 충분히 있다고 봐요. 또 의사 사회가 집단주의적인 특성이 있어서 의대생들이 주변 상황에 쉽게 휘말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네요.
지난 9월 4일, 대한의사협회, 보건복지부,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가 안정화된 이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안을 재논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본 합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용희: 논의 시점을 미룬 것은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논의를 재개할 때까지 정부는 노골적인 여론몰이를 자제해야 한다고 봐요. 얼마 전 정부 공식 페이스북에 의사는 제쳐두고 간호사를 노골적으로 치하하는 게시물이 올라온 적이 있거든요. 이런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소민: 코로나19가 언제 안정화될지 알 수 없는데 막연하게 합의 시점을 미룬 것 같아요. 또한 정권이 합의를 보려는 것에만 꽂혀서 또다시 과정을 등한시하고 부랴부랴 졸속 합의할까봐 우려돼요.
황승현: 정책을 추진하다가 한번 실패하면 동력을 잃는다고 생각해요. 논의를 재개하기가 더 어려워질 테니까요. 그래서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에 재논의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전면 백지화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시기가 적절했는가를 떠나서 일단 시작했다면 매듭지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세진: 저는 코로나19가 안정화된 후에 재협의하기로 한 것은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여유가 생긴 만큼 정부도, 의료계도 과격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지 않았으면 해요. 재협의 때는 양측 모두의 입장이 잘 존중되었으면 합니다.
공공의료 정책을 다시 논의할 때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이소민: 최대한 많은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수렴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의대와 관련한 논의에서 의대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제일 안타까웠거든요.
정용희: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의사의 수를 늘려야 하는지, 왜 의사들이 특정 분과를 기피하는지 같은 것이 서로에게 명확해야 해결 방안도 제대로 도출될 것 같아요.
이세진: 저는 합의 이후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정책이 잘 추진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공공의료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에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해서 모든 국민이 공공의료를 잘 누릴 수 있게끔 해야 해요.
“공공의료 정책을 실시하기 전,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Audience Talk
이세진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 17학번
요즘 많은 논란이 되는 공공의대와 공공의료 정책에 대해 다각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공공의료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소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19학번
토론을 준비하면서 사안을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 선배들과 토론하며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유익했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용희 인하대학교 화학공학과 16학번
평소에 친한 친구들끼리 사회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이번 토론이 더욱 유익하게 다가왔습니다. 학우들과 토론하면서 공공의료에 대해 더 폭넓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황승현 건국대학교 기계공학부 16학번
공공의료 정책을 두고 정부, 의료계, 환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공공의료 정책이 정쟁으로 치닫는 것을 지양하고, 모두의 지혜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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