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 끝에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이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러한 아동 학대 사건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서현이법, 2016년 원영이법 등 아이가 떠난 자리마다 새로운 법과 제도가 생겼지만, 여전히 아동 학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아동 학대의 현주소와 관련 법안 그리고 실질적인 예방책에 대해 대학연합 독서토론동아리 ‘필로소피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정인이 사건’이 세간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평소 아동 학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김민주 2017년에 ‘아동과 법’이라는 교양 수업에서 다양한 아동 학대 사례를 알게 됐어요. 정인이 사건 또한 수업에서 접한 사례들과 다르지 않았죠. 해당 사건은 한동안 신경 쓰지 못한 아동 학대 문제에 다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도연 갈수록 아동 학대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요. 현재 아동 학대에 대한 법적 제재는 가중되고 있지만, 오히려 아동 학대는 증가하고 있어요. 처벌 형량보다 다른 지점을 분석해보고 새로운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현희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일 보도되면서 모두 안타까운 심정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동 학대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관련 법안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법안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생각해요.
우예진 아동 학대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 아동 학대가 심각해지는 것인지, 사람들의 문제인식이 높아져서 아동 학대 신고 비율이 높아지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아동 학대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김민주 법안의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매번 정인이 사건 같은 심각한 아동 학대 사건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돼야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성을 제재하거나 보호하는 시스템이 사문화되지 않고 실효성 있게 개선돼야 해요.
김도연 장기 학대가 지속되는 이유는 주위의 무관심과 외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인이 사건에서도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3회나 들어왔는데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아 정인이가 사망에 이르렀어요. 또 주변에서 신고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아동학대를 판단해 곧바로 제재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현희 아동 학대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른들의 인식이 아닐까요.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대하려는 인식이 아동 학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우예진 저도 현희 님 의견에 매우 공감해요. 2018~2019년 KOSIS 국가통계포털 ‘학대피해아동보호현황’에 따르면 아동 학대 행위자 중 70% 이상이 부모라고 해요. 우리나라는 친권이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내 아이는 내 방식대로 가르친다는 인식이 높아요. 그래서 부모가 훈육이라는 명목 아래 행하는 체벌이 아동 학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아동 학대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됩니다. 아동 학대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요?
김도연 학대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돼야 합니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님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주로 신체적 상흔을 학대의 중점 기준으로 두고 처벌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신체적 상흔이 있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의 이야기까지 모두 듣다 보니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정상 참작되기도 하죠. 특히 아이가 스톡홀롬 증후군(가해자에게 오히려 애착이나 연민을 느끼는 현상)을 앓거나 부모와의 애착을 끊어내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말하지 못할 여지도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사례처럼 아동 학대의 객관적 판단 기준을 마련해 정확히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현희 직접적인 학대가 가해지지 않더라도 학대의 가능성이 있다면 아동 학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가능성에 대한 판단 기준은 반복, 세기의 정도 등을 토대로 유연하게 만들어야 해요. 오히려 획일적인 기준은 학대를 처벌하는 데 제약을 줄 듯합니다.
우예진 신체적 학대보다 판단 기준이 더 모호한 정서적 학대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에게 모멸감을 주고 정신 건강을 저해하는 행위도 학대에 해당합니다.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면 교구장 위에 아동을 올려놓은 보육 교사의 행위는 정서적 건강을 해친 것으로 보아 아동 학대로 판단했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은 한 키즈 유튜브 채널에서 아빠의 지갑을 훔치는 행위를 종용하는 것도 아동 학대라고 고발했죠. 많은 사람이 이 같은 사례를 인지하면 정서적 학대를 이해하고 조심하지 않을까요.
지난 1월, 아동학대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이른바 ‘정인이 법’이 통과됐는데요. 개정안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민주 개정된 법안이 잘 실천될 수 있도록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나 관련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심도 높은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또 일반인들도 아동 학대를 인지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인식 변화를 도모해야 해요. 가령 영유아를 데리고 술집에 가는 것도 방임으로서의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데, 실질적으로 이에 대한 신고는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서현희 저는 개정안 중 피해 아동을 아동 학대 행위자로부터 분리 조사하는 항목에 주목했습니다. 분리 조사·보호는 좋지만, 갑자기 분리된 아동이 부모 없이 잘 지낼 수 있을지, 분리조치가 적절히 시행될지 우려됐어요.
‘정인이 법’과 함께 자녀에 대한 친권자 징계권 규정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도 통과됐습니다. 부모의 징계권 삭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도연 친권자의 징계권 삭제는 최소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비록 실효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향후 학대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훈육이라는 사유를 정상 참작하지 않아도 되죠.
서현희 저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친권자 징계권 삭제에 찬성합니다. 친권자 징계권은 부모가 아동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한다고 오인할 여지가 큽니다.
우예진 체벌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해결책이라는 인식을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 체벌은 공포에 의해 고통을 주면서 복종시키는 것이지 사랑의 매로 보긴 어려워요.
김민주 일각에서는 친권자 징계권 삭제로 인해 자녀들의 고소가 잇따를 것이라고 우려했어요. 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학대를 받는 자녀가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요.
피해 아동의 사후 관리를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까요?
김도연 아동 학대 예산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아동 학대 예산의 68.5%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범죄자들이 낸 벌금에서 떼온다는 소리인데, 문제는 벌금 수납액이 해마다 들쭉날쭉해요. 복권기금도 아동 학대 예산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고, 타 소외계층 사업에 많이 배분되면 아동 학대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또한 각 기금을 담당하는 부처가 달라서 정책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고요. 아동 학대 예산을 보건복지부 소관 일반 회계로 통일하거나 자체적인 예산 회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현희 학대피해아동쉼터 확충이 가장 필요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학대피해아동쉼터는 72곳으로 한 곳에 입소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7명입니다. 전국을 합쳐도 500여 명의 아동만이 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2019년 아동 학대 사례는 3만여 건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하여, 아동 학대 사례 대비 쉼터가 부족한 편입니다. 또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의 인력을 증원하고, 이들의 전문성을 확보해 현장 대응에 최선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예진 아동보호기관 상담원의 근로 처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국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동 학대 사례 관리자들은 1인당 평균 64건을 맡고 있다고 해요. 유럽의 경우 1인당 12~17건인데 우리나라는 3배 이상이죠. 또 피해 아동 가정과 마찰이 생길 경우 위협, 협박, 성희롱 등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평균 근속 기간이 불과 2.8년이고, 이직률도 30%입니다. 아동 학대 관련 직업 종사자의 근무 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해야 효율적인 아동 보호로 이어질 것 같아요.
아동 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민주 양형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량이 정당했다면 지금과 같은 분노는 안 나왔을 거로 생각해요.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은 다양한 사건에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 기준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도연 형량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형량에 변화를 준다고 해서 아동 학대 사례 증감에 영향을 줄지 의문이에요. 아동 학대 범죄에 대한 형량은 이전보다 더 높아졌지만, 아동 학대 사례는 계속 늘고 있어요. 양형은 인과응보에 기반한 사회 욕구를 충족시킬 뿐, 형량 외의 다른 모든 조건이 그대로라면 아동 학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서현희 아동 학대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2019년 대법원에 따르면 1심에서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 10명 중 1명만 실형을 받았다고 해요. 집행유예는 실형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았고요. 법이 주는 강제성이 크기 때문에 아동 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면서 국민적 합의점에 도달하려면 그에 맞는 처벌 수위를 갖춰야 합니다. 처벌 수위는 높이되 아동 학대 대응 기관의 확충이나 전담 보호 경찰관 제도 등 추가적인 보완책도 있어야겠죠.
우예진 처벌의 측면보다 아동 학대 범죄와 관련된 사후 서비스 강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동 학대 행위자일 경우 재학대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인 양육이 가능하도록 상담, 심리치료 등을 제공해 가족 기능을 강화해야 해요.
매번 개정된 법과 제도에도 불구하고 아동 학대 사건은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기적으로 아동 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해결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도연 저는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으로 나눠 해결책을 생각해봤습니다. 미시적으로는 누군가의 관심과 오지랖에 기대야겠죠. 지난해 창녕에서 학대를 당하던 아이가 베란다로 탈출해 거리를 배회하다가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했던 것처럼, 주변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도와줘야 합니다. 거시적으로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합니다. 대부분 아동 학대 행위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동에게 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학대 행위자의 직업 유형이 무직이며, 소득이 없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즉, 많은 아동 학대 사례에 경제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서현희 아동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바라보는 인식이 개선돼야 합니다. 또 지자체에서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른 부모 교육과 상담을 제공해야 해요. 특히 아동에게도 학대 대처 방법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동이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안다면 스스로 학대를 알릴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우예진 아동 학대 행위자가 주로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대상으로 아동 학대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출산 후 아동수당을 신청하거나 보육원에 아동을 등록할 때 등 아동에 대한 국가 서비스가 개시되는 시점 이전에 의무 교육을 이수하도록 해야 해요. 현재 학대 위기 아동을 빅데이터로 찾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있지만, 업무가 많은 읍면동의 경우 세 차례 피해 아동을 못 만나면 조사를 종결한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 또한 방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동 정책이 아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정책이라면, 그 희생이
헛되지 않길 바랍니다
Audience Talk
김민주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16학번
아동 정책은 아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희생당해야 사회가 관심을 가진다는 얘기인데, 그 희생이 헛되지 않는 정책이 되길 바랍니다.
김도연
연세대학교 UD PSIR 18학번
최근 핫 이슈인 아동 학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아동 학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제 생각을 보완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서현희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19학번
아동 학대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얘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학대 아동을 위해 대학생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우예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19학번
뉴스로만 접하던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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