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어떻게 보셨나요?
고려대학교 토론동아리 코기토
2021년 6월 1일
|
|
지난 4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윤여정 배우가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영화 <미나리>는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등 명성 있는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휩쓸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 가족의 이야기는 전 세계인에게 어떤 감동과 울림을 줬을까. 고려대 토론동아리 코기토와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화 <미나리>
정이삭 감독 /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출연 / 2021년 3월 3일 개봉 / 드라마 / 115분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에게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일자리를 다시 찾는다. 낮 동안 어린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도착한다. 하지만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 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하다.
* 이 기사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미나리>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궁금합니다.
안준현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의미 있었습니다.
박성수 잔잔하면서 큰 울림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시골의 전원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영화 내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훌륭한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데이빗 가족의 이야기가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들어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정세화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고, 각 개인의 입장이 잘 드러나서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가족에게 힘든 상황이 있었지만, 미나리를 캐는 마지막 장면으로 밝은 미래를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창헌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미국에 이주한 한인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이를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력으로 전달하여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잘 됐습니다.
이수민 영화에 담긴 정서와 문화가 놀랍도록 한국적이어서 미국 영화지만 익숙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민 가정도 아니고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지만, 매 장면과 각 캐릭터에 공감이 가서 재밌었습니다.
권재영 줄거리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지루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갔는데, 생각보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굴곡이 크고 부정적인 일이 중첩되어 나타나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 깊은 캐릭터가 있을까요?
안준현 스티븐 연이 연기한 아버지 ‘제이콥’입니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정작 병아리의 성별을 감별하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남은 가부장적인 마인드나 미국 문화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엔 그가 미국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영화가 아버지의 성장 일대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박성수 할머니 ‘순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순자는 손주들이 좋아하는 걸 해주지도 못하고, 병에 걸려 간호를 받고, 마지막에는 가족의 채소 창고에 불을 내 모든 것을 망치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 같지만, 순자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사랑의 본질을 알려줍니다.
정세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 ‘모니카’가 인상에 남습니다. 모니카를 보며 저희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떠올라 더욱 공감이 갔습니다. 제이콥은 자신의 꿈을 위해 행동하지만, 모니카는 모든 행동의 이유가 가족입니다. 그녀가 캘리포니아를 떠나길 거부했던 이유도 아이들의 교육과 데이빗의 심장 질환 때문이었습니다. 모니카를 보고, 아이들이 다 큰 뒤에야 뒤늦게 자신들의 꿈을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떠올라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이창헌 ‘제이콥’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에는 제이콥이 자신의 꿈만 중시하는 철부지 같다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아리 공장에서 아들이 왜 굴뚝에 연기가 나오냐는 질문에 그가 “수컷은 쓸모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가장으로서 현실도 고려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느껴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이수민 태풍이 오던 날, 모니카 제이콥 부부가 싸우는 장면입니다. 카메라는 싸우는 부부가 아닌 방에 있는 데이빗과 앤을 오랫동안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다툼을 말리기 위해 ‘Don't fight’라고 적힌 종이비행기를 날리는데, 그 장면이 가족의 본질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권재영 순자가 실수로 창고에 불을 내고 죄책감에 혼자 숲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망쳤다는 죄책감, 허망함이 눈빛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감정임에도 훌륭한 연기로 인해 장면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세화 앞서 말한 장면 이후 데이빗이 할머니를 향해 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심장이 좋지 않아 항상 뛰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가족을 떠나려 할 때, 데이빗이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달리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준다고 깨달았습니다.
박성수 채소 창고가 불타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채소는 제이콥의 꿈을 상징합니다. 제이콥이 가정보다 꿈을 택한다고 이별을 선언하던 모니카가 채소를 구하러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제이콥이 모니카를 구하기 위해 뒤따라 들어갑니다. 이 장면을 보고 극적인 상황에서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안준현 창고에 불이 나고 온 가족이 바닥에 누워 자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원래 영화에서 불은 부정적인 상징으로 쓰이는데, 반대로 <미나리>에선 가족을 단합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제이콥이 바닥에서 자자고 해도 아이들은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다 같이 바닥에 누워 자는 장면을 보고, 화재라는 위기 속에서 가족이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보여줘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는 제목에서도 그렇듯 ‘미나리’가 중심 메타포로 나오고 있습니다. ‘미나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나요?
안준현 미나리는 동아시아 중심으로 나는 식물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심어도 잘 자라고, 어떤 음식과 먹어도 잘 어울립니다. 이처럼 한 아시아계 가족이 미국의 아칸소라는 각박한 곳에 정착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미나리에 빗대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수 영화에서 미나리는 순자가 가져왔다는 점에서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을 상징한다고 봤습니다. 타 문화에 대한 이질감, 고향에 대한 향수, 열악한 환경 등에도 불구하고 미나리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한국인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세화 미나리는 뱀이 많아서 가지 말라는 위험한 땅에서도 무럭무럭 자라고, 제이콥이 키운 채소가 불에 탄 이후에도 파릇파릇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아들과 아버지가 미나리를 따며 끝난다는 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희망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안준현 가끔 농사일을 도와주는 백인이 십자가를 지고 가거나, 땅에 안 좋은 기운이 있어서 엑소시즘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모습도 나오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종교와 관련된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중요한 연관성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영화의 맥거핀(영화의 전개와 무관하지만, 관객들의 의문이나 혼란을 유발하는 극적 장치. 일종의 속임수)으로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수민 이 영화의 매력은 평범함,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데이빗과 순자가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잠들었던 다음 날, 갑자기 순자에게 뇌졸중이 나타나는 부분은 너무 영화적 요소처럼 느껴져서 아쉬웠습니다. 또 스티븐 연이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그런지 한국어 대사가 한국인 입장에서는 조금 어색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감정 전달은 충분히 이뤄졌기에 외국에서 흥행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이창헌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나타났습니다.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인 내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일반 대중이 보기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미나리>는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정세화 한국인 이민 가족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가족 간의 사랑, 희생, 갈등 같은 보편적인 정서를 잘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관객이어도 <미나리>의 캐릭터들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었기에 해외 관객 또한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수 <미나리>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며, 한국인 입장에서는 떠난 이의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을 조명해 타국에 사는 아시아인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수민 호평을 크게 받은 이유에는 외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국적인 문화를 보여준 동시에 만국 공통의 소재인 가족을 통해 이질적이지 않고 공감이 가도록 보여줘 큰 호평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안준현 해외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해 아카데미 4관왕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후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브래드 피트의 영화 제작사 ‘플랜B’에서 제작된 점도 영화 관계자들에게 입소문이 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순자 역의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성수 순자의 경우 미국 문화에 동화된 다른 가족과 달리 순도 100% 한국 할머니의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줘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빗에게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 기준에는 하나도 맞추지 못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안준현 외국인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할머니가 아닌 K-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로 미국으로 건너간 윤여정 배우의 삶에서 비롯한 생활 연기가 캐릭터와 장면을 잘 표현했습니다.
정세화 전형적이지 않으면서도 전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주들이 자신을 무시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보통의 할머니와 다르다고 느꼈지만, 데이빗을 안고 잠자리에 들거나 딸의 집에 올 때 짐을 바리바리 들고 오는 모습은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의 표현 방식은 다를 수 있어도 자식을 사랑한다는 본질은 같기에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권재영 윤여정 배우의 연기를 보고 어떤 점이 특별할까 생각했는데, 사실 순자는 제 어릴 적 할머니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 특별한 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익숙했죠. 한국에서는 할머니가 손주를 봐주는 것이 보편적인데, 외국에는 이런 모습이 잘 없다 보니 가장 신선하고 한국적인 인물로 이목이 쏠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미나리>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박성수 코로나19로 인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이 심해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나리>는 동양인도 그들과 같은 사람임을 보여주며 서로를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민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정세화 순자 할머니는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낫다. 숨어있는 게 더 위험한 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들어가는 채소는 눈에 보여 당장 해결할 수 있지만, 순자의 뇌졸중이나 화재는 예방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나리>처럼 사랑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나리>는 현재 사회에 부재한 공동체의 회복을 일깨워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창헌 이주민을 주제로 한 영화지만, <미나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주민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힘든 삶을 살아내는 모든 사람에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재영 <미나리>는 현재 사회에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비주류 구성원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또 한 가족의 이야기로 본다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Audience Talk
권재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9학번
영화 <미나리>는 많은 생각이 들면서도 쉽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토론을 통해 여러 질문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박성수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17학번
제가 놓친 부분,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알아가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토론이었습니다. <미나리>라는 좋은 영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안준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7학번
요즘 흥행하는 영화 <미나리>를 주제로 깊은 논의를 하면서,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영화나 드라마와 관련된 토론을 자주 나누고 싶습니다.
이수민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20학번
사람들과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나리>가 평범한 이야기여서 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각자의 해석이 달라서 재밌었습니다.
이창헌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21학번
영화를 통해 이전에는 큰 관심이 없던 ‘이주민’이라는 주제를 접할 수 있었고, 영화가 주는 의미에 관해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정세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학번
화제의 영화 <미나리>를 직접 분석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특히, <미나리>가 전하는 ‘함께일 때 찾을 수 있는 희망’을 배울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