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은 ‘관계’로 풀어야 한다며 관계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는 성교육 17년 경력의 손경이 강사(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 대표). 유튜브 방송에서 아들과 함께 성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51세기에서 온 엄마’라는 별명을 얻은 인기 강사이다. 한 해 350여 건의 강의를 하며 그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통해 행복을 느끼면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거예요.
인기 강사로 활동 중이세요.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어릴 땐 말도 잘하지 못하고 소극적이었어요. 하지만 공부만큼은 적극적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교실 첫 줄에 앉아 수업을 듣고 싶은데 키 때문에 중간에 앉아야 하는 거예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교실 앞바닥에 앉아 수업을 들었는데 그 일로 반 아이들로부터 재수 없다며 따돌림을 당했어요.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서는 소심한 성격을 바꾸고 싶어 좋다, 싫다를 정확히 표현하고 쾌활하게 지냈죠. 성격을 바꾸고 힘들지 않았던 걸 보면 원래 활발한 성격인데 가부장적인 가정 문화 때문에 억압됐던 건 아니었나 생각도 들어요.
성폭력과 가정폭력 경험을 밝히셨어요.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많은 경우 그런 일을 당하면 일어서기 힘들다고 해요. 저는 엄마가 된 후, 상처가 많으면 아이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부모 교육을 들으러 다녔어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성폭력, 가정폭력 관련 국제 세미나도 찾아들었고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거기서 힘과 용기를 얻었어요. 마음이 탄탄해졌죠. 내면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애썼어요. 지금도 세미나 개최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찾아 들어요. 피해자이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모든 대상에게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인품’을 이야기해요. 권력은 성별, 나이, 직급, 경제력 등 다양한 곳에서 나올 수 있는데, 저는 인품에서 권력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품이 권력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 교육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사람이 사람을 통해 행복을 느끼면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거예요. 제가 강조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젠더감수성’과 ‘관계’에요. 다른 성별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요. 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면 성을 포함한 많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관계교육에도 역점을 두고 있어요.
‘버닝썬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전문가로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심경이 어떠신지요?
사건이 터졌을 때 놀라지 않았어요. ‘현재 드러난 것보다 숨겨진 사실이 많을 텐데 더 찾지’라고 생각했어요.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마약, 성매매 사건은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도 벌어지는 일이에요. 대학가에서 단톡방을 통해 성희롱하거나 사진 및 동영상을 공유하는 일은 뉴스를 통해 접해봤을 거예요. 다만 이전에 벌어진 비슷한 사건들과 차이를 보인 점이 있는데 대중의 반응이에요. 일단, 사건 이름이 피해자의 이름이 아니라 가해자의 이름으로 지어졌죠. 댓글도 긍정적 방향으로 작성된 것들이 보였어요. 유포된 동영상을 찾는 글에는 ‘2차 가해’라며 저지하는 댓글이 달렸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고 사회도 성장하는데, 이번에는 그 속도가 빨랐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가에서도 몰래카메라, 단톡방 성희롱, 데이트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0대 개인의 문제로 돌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공교육, 가정, 미디어, 국가. 이들이 성교육, 인성교육을 등한시한 결과인 거죠.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로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야 서로 혐오하지 않아요. 근래 악화되고 있는 성별 혐오 문제도 공적인 부분으로 생각해야 갈등을 멈추고 서로 힘을 합할 수 있어요.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몽정에 대해 가르치고, 첫 사정을 했을 때 ‘존중 파티’를 해주셨죠. 이후 좀 더 자라 성에 호기심을 보일 때는 계획섹스표를 작성해보도록 했다는 일화를 들었는데요. 계획섹스표란 무엇인가요?
계획섹스표는 계획임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예요. 결혼한 부부가 ‘6개월 후 아이를 가질까?’, ‘직장에서 자리 잡은 후 아이를 갖자’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잖아요.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줄일 수 있고,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니까요. 이를 응용해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해보도록 한 것이 계획섹스표에요. 현재 이성 친구가 없어도 해볼 수 있어요. ‘나는 만난 지 몇 개월 되는 날 어디에서 하겠다’는 식으로 적는 거예요. 강의하며 중3부터 대학생까지 표를 적게 해봤는데 재밌어하고 반응이 좋아요. 각자의 계획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면 거기 ‘몰카는 없을까?’, ‘상대도 좋아할까?’ 이런 반문이 나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죠. 개인의 성 가치관도 확인할 수 있고요. 이렇게 아이들에게 계획을 세워보도록 한 후 ‘이 표는 50%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줘요. 혼자의 생각일 뿐 상대에게도 의사를 묻고 맞춰나가야 한다고요. 계획섹스표를 통해 ‘성적 자기 결정권’과 ‘동의’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어요.
사랑과 연애, 성에 대해 여러 고민을 안고 있을 20대에게 도움이 될 영화나 책을 추천해 주세요.
어느 한 영화를 추천하기보다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아보길 권해요. 특히 국제여성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들을 보면 좋겠어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경우 일 년에 한 번 일주일 정도 열리는데,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들을 상영하는 만큼 성과 관련된 이슈들을 알 수 있죠. 책이나 연극도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을 찾아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계획하고 있는 꿈이 있다면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죠. 그런데 ‘외상 후 성장’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어요. 외상 사건을 겪고 회복력을 통해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뜻해요. 제 꿈은 ‘외상 후 성장 센터’를 만드는 거예요.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극복 경험을 이야기하며 좋은 모델을 보여주는 거죠. 구상은 강사 일을 시작할 때부터 했어요. 다만 함께 연대할 분을 모으기가 어려웠죠. ‘성장’을 하신 분들이어야 하는데 외상 후 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현재 조각가, 시인, 웹툰 작가 등 7~8분 정도 모였어요.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오래 공부하고 내면이 탄탄한 분들입니다. 외국엔 이런 모델 기법이 잘 형성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도 피해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어요. 이른 시일 내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혁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 대표
법무부 법사랑 의정부지검 고양파주지청 전문 자문위원
아동안전위원회 자문위원
옴부즈만 성희롱, 성폭력고충조사, 자문, 징계 전문위원
방송
tvN 어쩌다어른 ‘#위드유 특집’(2018)
SBS 스페셜 ‘나는 말한다’(2018)
Youtube
닷페이스(.FACE) ‘엄마와 나’
저서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2018)
『움츠러들지 않고 용기있게 딸 성교육 하는 법』(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