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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된다 _ "유현준 건축가"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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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건축가는 교수이자 작가, 강연자로서 전국을 다니며 쉴 틈 없이 대중과 소통한다. 외부와 소통하는 마을 같은 학교, 거실을 향해 창문을 뚫는 아파트 등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과 도시를 제안하며 우리가 사는 곳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한다’는 철학을 갖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건축을 바라보기까지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오늘날, 그를 만든 삶의 주요 경험과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현재 준비하고 계신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CJ 라이브시티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일산 호수공원 옆에 10만 평 되는 테마파크와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설계하고 있어요. 큰 프로젝트다 보니 미국과 코펜하겐에 있는 회사들과 협업해서 해외 출장이 잦아요. 그 외에 다른 일도 하느라 올해 학교 일은 휴직한 상태에요.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계세요.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데, 어떻게 해내세요?
여러 일을 하지만, 건축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잖아요. 건축 설계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을 글로 쓰고, 말로 전할 뿐이에요. 마치 물이 얼음이 되고 수증기가 되지만 똑같은 H2O인 것처럼, 매체가 다를 뿐 건축으로 나를 표현하는 일인 것 같아요.

물리, 미술, 지리, 지구과학을 좋아해서 건축과를 가게 됐다고 들었어요. 건축이 적성에 맞다고 느낀 순간이 언제셨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 그림 그리기에요. 미술이 초·중·고를 다니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과목이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근데 건축과가 그래요. 건축을 배우지만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내 것으로 적용해서 만들죠. 예를 들어 교수님은 사각형으로 주택을 짓는 게 맞다고 하지만, 저는 삼각형이 맞다고 생각하면 삼각형이 왜 좋은지 설득하면 돼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대학교 다니면서 되게 즐거웠어요. 제 건축 스타일을 그림과 모형으로 표현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이 재밌었거든요.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공부하셨어요. 한국과 미국에서 대학 생활은 각각 어땠나요?
연세대에서는 교수님과 학생이 수평적인 관계였어요. 학생들끼리 경쟁하며 배우고, 교수님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게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MIT와 하버드대가 수직적인 관계였어요. 교수님들이 많이 가르치려 했죠. 한 교수님은 강압적으로 자기 디자인 철학을 주입하려고 했고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배울만한 내용이었어요. 그땐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보다 국내·외 교수법이 반대네요. 기억에 남는 교수님도 있을 것 같아요.
MIT 2학기 때 한 교수님이 건축물 보는 눈을 키워줬어요. 보통 저학년 때는 건축물의 형태에 집착해요. 저도 화려한 건축 디자인이 유행하던 시절에 그쪽으로 넘어갈뻔 했어요. 근데 그 교수님과 충돌이 생겼죠. 교수님은 자연 생태계의 흐름을 보고 디자인 원리를 설명하려고 했어요. 자연의 디자인을 보는 눈이 생기면 너의 건축 디자인도 달라진다는 식이었죠. 예를 들어 나뭇가지의 원리를 적용해 호텔 복도를 디자인할 수 있고, 벌집 구조로 빌딩 구조를 디자인할 수 있는 거죠. 그 교수님 덕분에 건축을 보는 색다른 시각이 생기고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한다’는 제 건축의 핵심이 생겼어요.
 

MIT를 졸업하고 다시 하버드대로 입학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어요?
복합적인 이유가 있어요. MIT 2학기 때 갑자기 건축가라는 직업이 하찮게 보이면서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비자가 끝나고 있어서 무작정 한 설계사무소에 들어갔죠. 거기서 학부생 때 서로 경쟁하며 같이 공부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어요. 그 친구 덕분에 공모전에 함께 나가면서 건축의 재미를 다시 느끼게 됐죠. 게다가 학부생 때 라이벌이었던 다른 친구도 만났어요. 세 명이 동시에 공모전에 나갔는데, 저만 떨어졌어요. (웃음) 열 받아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만 귀인이 아니에요. 때론 나를 자극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귀인일 수 있어요. 원래는 MIT 갈 때 하버드대 원서도 냈는데, 서류를 잘못 보내서 떨어졌어요. 억울했죠. 그때를 생각하면서 하버드대를 붙으면 계속 건축 일을 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보고 지원했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감이 부족해서 저를 실험해본 거죠.

귀국 후 설계사무소를 차리면서 힘들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2007년에 개인 설계사무소를 설립하고 거의 10년 동안 ‘이번 달에 무슨 일 하지?’, ‘다음 달에 월급 어떻게 주지?’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일거리가 없을 땐 대출을 받아 직원 월급을 주기도 했어요. 한 번은 사기당한 일도 있었어요. 현장 소장이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서 당시 사무소의 1년 매출만큼 세금 폭탄을 맞았어요. (웃음) 이러다 망하겠다 생각했는데, 천우신조로 큰 프로젝트가 들어와서 빨리 빚을 갚아 위기를 넘겼죠.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보면 도시와 공간 이야기를 인간의 삶과 연결해 쉽고 재밌게 전달하세요. 어떻게 이런 사고와 통찰력을 가지게 되셨나요?
저는 ‘나만의 시각’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다른 건축가들이 쓴 책은 안 읽었어요. 왜냐면 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받잖아요. 저는 책 읽는 이유가 지식을 배우기보다 스스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를 보려고 읽어요.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한 번에 두 권의 책을 사지 않아요. 책을 한 권 읽으면 생각이 바뀌잖아요. 그런 다음 서점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이 달라져 있거나, 같은 분야라도 조금 다른 책을 읽게 돼요. 그 과정에서 책과 관련된 내 생각들이 쌓이면,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고 다른 것들과 연결할 수 있어요.

스트레스받을 땐 어떻게 해소하세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요. 왜냐면 대부분 스트레스가 관계에서 오잖아요. 그럼 모든 관계를 끊고 오롯이 혼자 있으면 치유된다고 생각해요.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바에서 술도 마시고, 드라이브도 해요. 스트레스가 못 견딜 수준으로 오기 전에 미리 저를 즐겁게 만들어서 틈틈이 해소하려고 해요. (웃음) 그래서 버티기 힘든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많은 대학생이 성적에 맞춰 입학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해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하고 싶은 것을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해요. 저도 MIT를 간 다음에도, 리차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일할 때도, 심지어 홍대 교수가 되고 나서도 ‘건축 설계를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계속 고민하고 회의감이 들겠지만, 그게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게 나아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제 인생의 모토가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된다’에요. 제가 글도 쓰고 강연도 하는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일거리가 없어서였어요. 누가 칼럼을 쓰면 돈을 주겠다고 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어요. 어릴 때 일기 쓰기도 싫어했는데, 책을 낼 줄 상상도 못 했죠. 주어진 일을 하니까 그렇게 된 거에요. 저는 지금 제 인생이 너무 좋아요. 과거에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을 못 했기에 지금 더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길이 열리는 대로 가세요.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하고 최선을 기다리라는 건 아니에요.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계속 하려는 노력은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경력
스페이스컨설팅그룹 대표 건축가 (2019)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2013)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학과장 (2011.1~2013.2)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2005~)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교환교수 (2009.12~2010.12)
리차드 마이어 사무소 (2003.1~2005.2)

방송
JTBC, 히스토리 채널 <양식의 양식> (2019)
tvN <어쩌다 어른> (2019)
SBS Plus <걷는 재미에 빠지다! 두발 라이프> (2018~2019)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 (2017)
tvN <20세기 소년 탐구생활> (2017) 등

저서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2019)
어디서 살 것인가 (2018)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2015) 외 3권

수상
독일 디자인 어워드 (2018)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 (2017)
아시아 도시경관상 (2017)
아시아건축사협회 건축상 (2017)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2013) 등 30회 이상 수상
취재_구은영 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Dot studio, 010-4214-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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