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우는 과학 지식은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만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몰라도 된다는 말 한 마디에 기자의 부담감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쉬운 과학이 아닌 친절한 과학으로 보통 사람들에게 과학의 재미를 전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 원종우를 만났다.
인생을 초조하게 보내지 마세요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쉽게 말해 통역사죠. 과학도 언어예요. 과학계에서만 쓰는 용어, 개념, 배경 지식이 있는데, 과학과 무관한 일로 생계를 잇는 보통 사람들의 레벨에서 과학 지식을 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해요.
선생님은 비과학자 출신이면서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세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나요?
어려서부터 과학을 계속 좋아했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접하고, 당시로는 큰돈인 4천 원을 주고 샀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생이 뭘 알겠냐만은 마냥 그 책이 좋아서 보고 또 보고 한 거죠. 고등학생 땐 폴 데이비스가 쓴 이론 물리학 교양서를 읽게 됐는데, 그분이 저를 진짜 과학 세계에 입문시켰죠. 한국어 제목은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라는 책으로 원제는 《God and New Physics》예요. 이 책 덕분에 기초과학, 물리학에 빠져들게 됐죠.
과학을 좋아했는데 대학에선 과학을 전공하지 않고 철학을 전공하셨어요.
워낙 과학책을 좋아하고 쭉 읽다 보니 철학이 추구하는 주제가 과학에서 발견하는 주제와 연관성이 있다고 여기게 됐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무엇인가’와 같이 존재론적인 고민이 철학인데, 과학도 같은 주제를 연구하거든요. 풀어내는 방식이 논리에 기초하느냐, 물질에 기초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대학에서 철학과 과학을 접목해 공부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어요. 제가 학교에 다닐 무렵엔 대학가에 학생운동의 강렬한 여진이 남아있었어요. 전공인 철학과 학생운동이 한 덩어리로 생각될 때라 제가 좋아하는 자연 과학적인 요소는 낄 자리가 없더라고요. 되돌아보면 과학 언저리에서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던 시기 같아요.
그렇다면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요?
2010년대에 교양 과학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면서 과학커뮤니케이터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인 흐름이 왔을 때, 제가 그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죠. 감각적으로든 우연으로든 내가 준비되어 있고, 알맞은 자리에 서 있으면 흐름을 타고 갈 수 있어요. 전혀 엉뚱한 데 서 있으면 소용이 없죠. 그런데 때로는 초조함이나 지나친 욕심이 사람을 흔들어 놔요. 불안하니까 제 자리에 못 서 있고 이리저리 가다 보면 막상 흐름이 올 때 놓치는 거예요.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을 꾸준히 맡아오고 계세요. 주제는 어떻게 정하세요?
저희 방송의 주 청취자는 30대에서 50대예요. 삶에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어른들이 듣고 싶은 과학 관련 이야기는 무엇일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학을 좋아하게 될지를 고민하고 주제를 정하죠.
약 7만 명의 청취자가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구독하고 있어요. 인기 비결이 있을까요?
비결이랄 게 있을까요? (웃음) 다만 청취자들에게 과학 지식을 완벽하게 알려고 욕심부리지 마시라고 말씀드려요. 상대성 원리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것들을 속속들이 알 필요 없고, 헷갈리시면 나중에 또다시 들으면 된다고 해요. 이런 마인드가 과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청취자들께 편안함을 드리는 것 같아요. 또 하나, 쉬울 필요는 없지만 친절한 방송을 추구해요. 어른들이 원하는 과학은 쉽고 유치한 과학이 아니라 친절한 과학이거든요. 천문학, 물리학, 기초과학을 교양 수준에서 다룰지라도 친절하게 안내한다면 비전공자들도 판타지 소설보다 더 재밌는 과학의 세계를 맛볼 수 있어요.
<과학하고 앉아있네>가 다른 과학 방송과 차별점이 있다면요?
저희는 과학 지식 자체보다는 과학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의미나 변화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이를테면 뉴욕 맨해튼 섬에 소행성이 떨어져서 쑥대밭이 되었다고 가정해 봐요.
이 경우 먼 과거라면 뉴욕과 그 주변 지역이 해일로 입는 피해가 가장 클 거예요. 지금은 맨해튼이 폭발하면 미국 증권 시장과 전 세계 증권 시장이 동시에 괴멸되고, 경제 불황이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이어지게 돼요.
소행성 하나로 전 세계가 구렁텅이에 빠져요. 이처럼 소행성이 떨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같이 얘기하는 거죠.
지금껏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가 있나요?
세월호 특별편이 기억에 남네요. 그땐 코미디 프로도 다 쉬었잖아요. 저희도 웃고 떠드는 방송이라 아예 한 달을 쉬었어요. 한 달 뒤 다시 방송을 준비하는데 ‘어떤 과학 얘기로 청취자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죠. 저희는 과학하는 사람들이니까 좋은 세계로 가셨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관측될 수 없는 사후세계를 언급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별에서 와서 별로 가는 존재라고 이야기했어요. 우리 몸을 이루는 수소, 탄소와 같은 물질들이 정말로 별에서 왔거든요. 별의 죽음은 초신성 폭발 같은 큰 천체 현상이 일어나는 걸 말하는데, 이때 원소가 만들어지고 그 원소가 우리 몸을 이루죠. 우리가 죽고 나서도 원소가 사라지진 않아요. 먼 훗날 50억 년 뒤 태양이 터지고 지구를 삼키면서 지구상에 있는 기체·액체·고체를 전부 끌어들였다가 다시 우주에 뿌리거든요. 그렇게 뿌려진 원자가 다음 태양이 되죠. 이게 물질의 대순환이에요. 천문학과 일반물리학이 결합한 주류 과학 이야기죠. 당시에 과학 이야기로 청취자분들께 작게나마 위로를 건넬 수 있어서 저희도 보람이 있었고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흐르는 대로 살아오셔서 그런지 삶의 태도가 굉장히 느긋하고 여유가 있으세요.
인생에서 초조했던 적이 없어요. 언제까지 뭘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원래도 초조해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2000년대 초 지인의 소개로 서준식 씨를 뵙고 더 그렇게 살게 됐어요. 서준식 씨는 1970년대에 ‘서승, 서준식 간첩단 사건’의 주인공이에요. 두 분은 형제고, 재일교포 2세인데 이분들이 고국에 대해 알고 싶다며 남한에도 오고 북한에도 간 거예요. 공안 당국이 한국말도 거의 못하는 재일교포를 간첩으로 몰면서 형인 서승 씨는 19년을, 동생인 서준식 씨는 감옥에서 17년을 살았어요. 그런 분을 만났을 때 제게 《서준식 옥중 서한》이란 책을 주시며 사인과 함께 ‘초조해 하지 말기’라고 써주셨어요. 감옥에 17년을 있었고, 그중 7년을 독방 생활을 한 사람이 한 말이에요. 그 이후로 지금도 정말 초조해지는 순간이면 서준식 씨가 써주신 그 말이 떠올라요. 초조해 하지 말기.
PROFILE
저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2019)
파토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 (2019)
과학하고 앉아있네 1~10 (2015~2018)
호모 사피엔스씨의 위험한 고민 (2015)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2012)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2013~)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2020~)
방송
YTN 사이언스 <지식충전소> (2019~)
JTBC <방구석 1열> (2019)
국방 TV <본게임> (2017~)
tvN <밝히는 과학자들> (2017)
취재_이신애 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Dot Studio, 010-4214-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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