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숙명여자대학교 성악과 박현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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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현주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성악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마음과 노력이 예술가로서, 교육자로서 성공의 결실을 맺은 것 아닐까. 나침반 같은 교수가 되고 싶다는 박현주 교수의 다음 악보가 궁금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숙명여자대학교 성악과 93학번이자 교수인 박현주입니다. 독일에서 유학 후 15년 정도 소프라노 오페라 가수로도 활동했어요.
성악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잘 부른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아빠 친구분들이 집에 오시면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교내 합창단도 했었죠. 보통 고등학생 때 진로를 결정하잖아요.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노래가 생각나 성악을 선택했어요. 부모님도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고요. 재능을 가졌다는 생각에 정말 그냥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노래로 가능한 많은 영역 중 성악의 어떤 점에 끌리셨는지 궁금합니다.
마이크가 없는 상태에서 목소리만으로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게 성악만의 매력 같아요. 특히 공명통을 울리는 발성법을 내기 위해서는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삶을 표현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큰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슬프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한숨을 쉬잖아요. 기쁘고 놀랄 때도 호흡을 통해 표현하죠. 일정한 홀 크기 안에서 호흡과 목소리만으로 모든 감정 표현이 가능해요.
오페라 가수로서 출연하신 여러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베르디가 쓴 이탈리아 오페라 <돈 카를로>를 가장 애정해요. 왕자를 사랑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왕에게 시집가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 ‘엘리자베타’를 맡았었는데요. 마음 아픈 사랑을 하는 그의 복합적 내면을 표현하는 노래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극을 본 동료와 다른 교수님께서 역할이 저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해주셔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웃음)
좋아하시는 오페라 작품을 추천해주세요.
우리나라에서 많이 하는 작품 중 <춘희>가 있어요. 원작 이름은 <라 트라비아타>인데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상류층 접대부 인생을 그린 내용이에요.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지만 접대부로 살며 마신 술 때문에 결국 쓸쓸하게 죽음을 맞죠. 음악이나 극의 요소, 무대 예술 등이 매우 훌륭해서 종합 예술인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문화예술계에서 성악만이 가진 부분은 무엇일까요?
성악은 다른 예술에 비해 가장 직접적 소통이 가능해요. 앞서 얘기했듯 가수가 어떠한 장치나 도구를 거치지 않고 소리로 감정을 표현하거든요. 성악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래서 더 깊이 위로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해요. 재능뿐 아니라 노력이 더한 목소리로 소통하기 때문에 특별한 것 같아요.
오페라 가수 활동 이후 현재 숙명여대 교수님으로 뵙게 됐는데요. 교수가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교수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학부생으로 공부할 때도 어떻게 하면 작곡가 의도대로 표현할지, 악보를 한 페이지라도 더 보고 씹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고지식한 면이 있었죠.
(웃음) 그렇게 오페라 가수가 됐고 계속 그런 삶을 살 줄 알았어요. 그러다 저를 아껴주신 교수님께서 학교에 공채가 났으니 교수직에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모교에서 사랑하는 후배를 키우며 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덕분에 어느새 9년째 학생을 가르치고 있네요. 학교에서 후배이자 제자에게 작은 보탬이 되는 퍼즐 조각 하나로 남는 것, 이게 교수가 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잠깐 말씀해주신 학창 시절이 궁금한데요. 숙명여대 재학 당시 어떤 학생이셨나요?
남녀공학이 별로 부럽지 않았어요. 여대 장점을 십분 활용한 학생이었거든요. 미팅도 많이 나가고 잔디밭에 수건 깔고 누워 놀기도 했고요. 성악과 학생으로서도 열심히 살았어요. 당시 음악대학은 연습실이 굉장히 좁고 시설도 열악했어요. 그럼에도 늘 그 좁은 연습실에서 악보와 씨름하면서 치열하게 보냈죠.
전공 실기 과목을 가르칠 때 문화와 언어적 이해를 중요하게 여기신다고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페라나 가곡은 대부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이야기가 많아요. 인간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우리나라와 환경, 문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독일의 ‘슈바르츠 발트’는 우리나라 태백산맥 같은 곳인데요. 한밤중이 되면 옆에 누가 있는지도 안 보여요.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못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유일하게 빛나는 게 달이나 별이죠. 그래서 독일은 그걸 주제로 한 노래와 시가 많아요. 이런 배경을 모르면 텍스트만 봤을 때 상상 가능한 영역이 좁아져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오페라 가수나 성악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유학은 필수라고 얘기합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나요?
예술가는 자기표현과 작품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노래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이만 먹은 게 아닌 진짜 ‘성인’이어야 하고요. 성실히 인내의 과정을 견디고 어른이 된 사람이 예술을 표현하는 것. 이게 궁극적 목표였으면 해요. 학생들에게도 어른으로서 본인을 대하라고 자주 말하는 편이에요. 20대를 아름답고 귀하게 여기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교수로 남고 싶으신가요?
노래하는 법을 가르치는 만큼 가수로서 떳떳한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교수가 돼야겠죠. 또 제가 학생 때 배운 것처럼 단순히 성악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학생들 인생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교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셨을 거야’하고 떠올릴 수 있는 나침반 같은 존재로 남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롤모델인 학생을 위해 여러 수상을 하신 예술가로서, 교육자로서 성공을 거두신 비결을 알려주세요.
성공이 완료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는 진행형이죠. 상은 그 순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추억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점을 넘어 또 많은 시간을 지나왔잖아요. 앞으로도 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거예요. 그렇게 멈추지 않고 좋은 인생을 사는 게 ‘소중한 순간’이라는 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
CREDIT
글 조효선 인턴기자
사진 박현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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