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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n번방’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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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n번방’
 

지난 10월, 텔레그램 ‘박사방’을 통해 성 착취 영상물을 불법 제작·유포했던 조주빈(25)에게 징역 42년이 확정됐다. 사건이 보도된 지 2년이 지나서야 그를 포함한 문형욱(24)과 강훈(20)은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징역살이는 범죄자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새다. 아직도 성 착취물을 주고받는 방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곳을 방문하는 자도 많다. 언제 누가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 잠재적인 피해자들만 두려움에 떨고 있다.
 

▶ 사진_텔레그램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디지털 성범죄 10년간 1.5배 증가
휴대폰과 태블릿,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의 발달에는 분명한 명암이 존재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보다 편한 삶을 누림과 동시에 언제든지 신상이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피해자의 신체를 불법 촬영해 불구속 입건된 성범죄는 지난 2019년이 되자 3만2000 건이 넘었고 이는 10년 전에 비해 56%나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이 같은 사건을 비교적 가벼운 성범죄로 간주, 실형 선고율이 감소했고 집행유예 선고만 10년 사이 13%나 늘었다.

잊지 말자 ‘n번방’
‘n번방’ 사건은 해외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통해 1번부터 8번까지 총 8개의 비밀 대화방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불법 촬영물이 판매된 사건이다. 문형욱은 ‘갓갓’이라는 별명을 사용하면서 2018년 하반기부터 ‘n번방’을 운영했다. 뒤이어 2019년 7월 ‘박사’ 조주빈과 공범 ‘이기야’ 이원호, 그리고 ‘부따’ 강훈이 ‘박사방’을 만들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신상 정보까지 모두 공개해 신고를 막고 자신들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구매자들에게 문화상품권 등으로 대가를 받았다. 텔레그램을 통한 성 착취 범죄는 2019년 9월 대학생 탐사보도 팀 ‘추적단불꽃’이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참가하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를 취재하면서 밝혀냈다. 이후 경찰이 소셜미디어상 불법 음란물 유통 관련 수사를 시작했고, 2020년 3월 16일 조주빈을 체포했으며 그 해 4월 그와 강훈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이 최초로 공개된 사례인 만큼 당시 한국 사회는 충격과 분노로 휩싸였다.

42년 형은 그가 범죄 조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앞서 말한 기술의 발전도 있겠지만 형량 문제도 없진 않다. ‘박사방’ 조주빈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뿐 아니라 범죄집단 조직으로 형법 114조가 추가 적용돼 1심과 2심에서 40년 이상의 징역이 확정된 것이다. 지난 2020년 개정된 양형기준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의 형량 범위는 징역 7년에서 최대 19년이지만, 일부 사유로 형량 감경 시 촬영물 배포만으로는 1년~2년 6개월이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배포 시 최대 6년까지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형량이 더 낮은 셈이다. ‘n번방’이 검거된 이후 한국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국회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켜 전보다 형을 강화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성 착취물을 팔고 구매한다. 올해만 해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9월까지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5,600여 명이었다.
 

▶ 사진_텔레그램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
성 착취물이 온라인에 유포됐는데도 영상이 일반 촬영물로 인식된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일반 성범죄 피해자의 지원책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미비하다. 성 착취 피해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이를 입증하려면 약 9종류의 서류를 제시해야 생계를 겨우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 성 착취물이 재생산될 수 있어 피해자들은 심리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형량만 높이는 것이 아닌, 세부 규정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나는 ‘n번방’ 사건 이후부터 SNS에 절대 내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오늘따라 사진이 잘 나와서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싶어도,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사진을 악용할까 봐. 혹은 소지하고 있을까 무서워서 사진 한 장 내걸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누군가는 ‘왜 뒷북이냐’라며 비난할 수 있다. ‘n번방’ 사건은 이미 2년 전 보도됐고 징역도 얼마 전에 확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도, 당신의 주변 사람도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선 더 이상의 디지털 성범죄는 없어야 한다.

글_하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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