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인터뷰

끊임없이 배우는 배우 서벽준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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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되지 않음. 일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끝없이 배우고 탐구하는 자세는 굳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노력을 가볍지 않게 말하는 배우의 앞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심과 고민이 담긴 대답에 자세를 고쳐 앉고 펜을 들어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공감이기도, 감탄이기도, 배움이기도 한 순간들. 배우 서벽준과 나눈 대화에서는 그런 순간이 유독 잦았다. 계속해서 배우고 탐구하며 자주, 오래 걷는 사람이 그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 인터뷰를 많이 준비하신 것 같아요. 질문지에 적어둔 내용이 많아 보이던데요.

깊게 사고할 질문을 많이 준비해 주셔서 신중히 말씀드리려고 고민했어요. 배우로서 연기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생각을 많이 했고요.

 

지금까지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굉장히 다양한 역할로 채워져 있어요. 상반된 분위기를 가진 역할도 많고요. 그중 실제로 가장 닮은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2018년 조연 데뷔작이었던 <식샤를 합시다 3>가 생각나네요 . 대학생 역할이었는데 수업이 끝난 뒤 뭘 먹을지 고민하거나 친구들 자취방에 놀러 가고, 유행을 따라 하는 모습이 비슷했어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제 평소 모습이 잘 담겼던 것 같아요.

 

가장 달랐던 캐릭터도 궁금해요.

영화 <런 보이 런>과 드라마 <행복배틀> 두 작품이 바로 떠올라요. <런 보이 런>은 주변에서도 많이 우려했어요. 캐릭터와 달리 제 평소 모습과 외모는 사납거나 센 느낌이 아니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맡 았기 때문에 접근 방식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캐릭터 전사(前史) 를 창작 하기도 하고, 설정 자체에 더 당위성을 부여했죠. <행복배틀> 도 마찬가지였어요. 진서연 선배님께서 영화 <독전>을 통해 쌓은 경험이나 참고했던 자료를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가장 어렵고 동떨어졌던 캐릭터지만 저라면 어땠을지 생각하며 접근했죠.

 

 

어렵지만 재밌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살면서 다양한 삶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직업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고요. 배우는 정해진 약속 안에서 의사, 재벌 집 막내, 철부지 등 다양한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이 일을 선택하고 계속해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행복한 스트레스’라고 표현하는데요.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촬영 후 방영되는 걸 보면 성취감과 보람을 느껴요. 희열을 얻기도 하면서 다음 단계를 위한 목표나 위안을 찾죠.

 

앞으로 어떤 역할을 더 해보고 싶나요?

심리 스릴러, SF 판타지를 좋아해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초현실적, 초능력적 부분을 실현할 수 있잖아요. 심리 스릴러를 통해 범인을 쫓는 이성적인 캐릭터, 또는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캐릭터 모두 해보고 싶습니다.

 

장르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너무 많이 말씀드릴 것 같아서 조금 추려왔어요. (웃음) 우선 영화 <추격자>를 정말 좋아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의 잔혹함과 원초적 부분을 저렇게 표현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SF 판타지는 <전우치>를 좋아해요. 한국 정서를 잘 접목한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계기이기도 해요. 그때부터 ‘내가 저 작품에 어떻게든 출연해 보면 재밌겠다’라는 상상의 씨앗을 품었거든요.

 

 

벽준 님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 어떤 캐릭터가 될까요?

로드무비일 것 같아요. 일단 걷는 걸 좋아하거든요. (웃음) 그러다 보니까 혼자 여행하는 걸 선호하게 됐어요. 고민이나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놔도 괜찮지만 어느 순간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대방도 힘든 일이 있을 텐데, 힘든 감정을 더 주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큰 일을 마주하면 불현듯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뭐예요?

혼자 여행하는 걸 두려워하는 분들은 ‘외로움’을 이유로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감정을 오롯이 마주하고, 눈물이 나면 우 는 시간이 소중해요 .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죠. 혼자 여행을 다녀오면 감정이 진정되고 새롭게 도전하거나 힘든 마음을 걷어낼 수 있던 경우가 많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가장 처음 갔던 여행인 것 같아요. 2019년 일일 드라마 <여름아 부탁해>를 끝마친 뒤였어요. 128부작이라 7개월 동안 촬영하면서 좋은 선생님들께 많이 배웠고 긴 시간 동안 작품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 계속 긴장 상태로 살았어요. 부족한 부분도 느끼고, 이전보다 발전한 점을 찾은 뒤 불현듯 혼자 여행을 가볼까 싶더라고요. 처음으로 KTX를 타고 목포로 떠났어요. 9월쯤이니까 딱 이맘때겠네요. 혼자 2인분짜리 빙수를 먹기도 했어요. (웃음) 둘째 날엔 밤새 걷다가 유달산 중턱에서 가방을 껴안고 잠들었고요.

 

 

왜 밤새 걸으신 거예요?

뭔가 흥분 상태였던 것 같아요. 모든 게 처음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까 보이는 대로 걸었어요. 그러다 새벽이 왔고, 노숙 아닌 노숙을 하게 된 거죠.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는 편인가요?

어디든 흥미로울 것 같으면 일단 가봐요. 그래서 길을 잃은 적이 좀 많아요. (웃음) 재미라고 생각하면 진짜 재밌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 텐데요. 저는 재밌게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캐릭터를 해석하고 준비해 나갈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참고하는지 궁금해요.

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당위성’이에요. 대학 시절 연극에서 50대 이장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요. 그 연령대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려고 어르신이 많이 계시는 공원이나 식당을 자주 찾아갔어요. 그분들이 가진 보편적 습관이나 특징을 발견해서 연기에 반영했더니 교수님께서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의상 등 외형도 신경 쓰고 , 정서도 많 이 고민하 는 편이에요 .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끊임없이 생각함과 동시에 제삼자 시선에서 탐구하며 당위성을 찾죠.

 

 

그럼 좋은 연기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단순하지만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좋은 연기란 관객과 시청자분들께 만족감을 드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배우는 봐주는 사람이 필요한 존재니까요. 보시는 분들께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고 느껴요. 악역이라면 악역으로서 선한 캐릭터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일에 충실해야 하고 요. 그런 측면에서 좋은 연기란 받아 들일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건 뭐예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예요.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는데요. 그런 시야로 사니까 ‘연기자라면 이렇게 표현해야지’하는 틀에 갇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나와 같은 시간, 같은 나라 혹은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늘었어요.

 

과거 인터뷰에서 행운과 행복 중 ‘행복’을 선택하셨죠.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했어요. 사실 모두가 욕망하는 게 참 많잖아요. 저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 얼굴이 걸린 포스터가 세상에 나오길 바랐고, 주연으로 많은 분량을 연기하고 싶고, 영화제도 가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원초적 욕망이죠. 그런데 그게 저를 괴롭게 하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속도와 바람대로 이뤄지기 어려우니까요. 꾸준히 작품을 하며 주인공이 겪는 고충과 그들이 감당하는 무게를 지켜보면서 저는 너무 막연했다고 느꼈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다져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봤죠. 물론 지금도 좀 속상할 때가 있지만 과거처럼 저를 괴롭히지는 않아요. 하루하루 펼쳐지는 일이 중요해요. 그래서 행복이란 크든 작든 계속 해서 느끼는 일 같아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고, 그 행복이 쌓여야 다음날도 행복하게 맞을 수 있다고 믿어요. ‘미래에는 좀 행복하겠지’라는 상상을 반복하면 당장 오늘이 불행해지더라고요.

 

 

오랫동안 활동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근황을 걱정하지 않도록’이라고 언급한 점이 인상 깊었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와 이유가 궁금해요.

우선 저를 궁금해하시는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저는 제 이름을 잘 검색하는 편인데요. 제가 출연했던 작품이나 연기에 대해 써주신 감상을 볼 때마다 큰 힘을 얻어요. 사실 배우라는 길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그런 분들이 이정표가 돼주세요. 오래 걸리더라도 계속 본질에 충실해서 나아가라는 뜻 같아서 용기와 원동력을 얻곤 하죠. 저는 연기를 할 때마다 인생의 마지막 작품인 것처럼 몰입하고 노력해요. 그런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제 분량보다는 관객분께 어떤 감정을 전달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배우는 외형을 가꾸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 연기를 잘 해야 하니까요. 또 연기하는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매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 경험도 필요하다고 느껴서 많이 흡수하며 배우려고 하죠. 그런 일들을 통해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배우로서 어떤 수식어를 갖고 싶나요?

가장 많이 듣고 싶은 말은 ‘사람 냄새 나는 배우’예요. 오늘 인터뷰를 읽으신 뒤에도 ‘사람 냄새 나네, 재밌는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 연기도 조금 더 재미있게 보시지 않을까요?

 

 

단답 Q&A

가장 좋아하는 색깔 

연보라

가장 좋아하는 날씨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는 날씨 

배우고 싶은 것 

외국어, 악기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것

2024년 잘 마무리하기 

출연하고 싶은 예능 

SNL, 핑계고

갖고 싶은 초능력 

순간 이동

스트레스 해소법

일기 쓰기, 걷기, 혼자 여행하기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

손빨래

내가 가진 좋은 습관

쓰레기 바닥에 버리지 않기 

최근에 본 영화 

<나이트 크롤러>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좋아하는 사람 

입맛이 비슷한 사람  vs 취미가 비슷한 사람 

꿈을 꿀 때 흑백 vs 컬러

열린 결말 vs 닫힌 결말 

과거로 돌아가기  vs 미래로 가기 

산 vs 바다 

휴양지 vs 관광지 

하루 종일 낮  vs 밤

맛집 2시간 기다리기 vs 사람 없는 옆집 가기 

수박 맛 찌개 vs 훠궈 맛 빙수

 

CREDIT

글 김혜정 기자

사진 이진철

헤어 오훈

메이크업 성미현

스튜디오 이거슨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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