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 뮤지컬 <그리스>를 시작으로 <쓰릴 미>, <풍월주>까지. 배우 이석준은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하고, 자신의 연기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연구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중하고,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 그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공연 준비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주로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뮤지컬 <풍월주>와 <쓰릴 미>를 맹연습하고 있어요. 공연이 없는 날에는 취미를 즐겨요. 코로나 이전에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취미였는데, 시국이 시국이라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고 있어요. 최근에는 <협상>, <프리즌 브레이크>, <워킹데드> 등을 보고 ‘이렇게도 연기할 수 있구나’하고 자극을 받았어요.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 우연한 계기로 연기학원을 다니게 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는 거예요. 캐릭터에 동화돼 이야기할 땐 전율이 느껴졌어요. 또 안양예고 재학 당시 뮤지컬 <페임>에서 연기를 공부하는 ‘닉 피아자’ 역할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날 공연장을 채웠던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아직도 생생해요. 생애 처음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해냈다’ 싶은 마음에 통쾌하고 짜릿했어요. 그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 ''이쇼티비''에서 학창 시절에 성격이 내성적이었다고 고백했어요. 배우가 된 후로 성격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어릴 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힘들어했어요. 지금도 많은 사람 앞에서 인간 이석준으로서 이야기하면 떨려서 얼굴이 빨개져요. 하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달라요. 배우로서 제 역할에 충실할 땐 부끄럽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아요. 관객들을 만나면 오히려 대범해지고 가슴이 설레요. 배우라는 직업이 저라는 사람 자체를 바꾸어 놓은 것 같아요.
첫 데뷔를 뮤지컬 <그리스>에서 두디 역할로 시작했어요. 오디션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지정곡과 춤까지 세세하게 준비하는 오디션은 처음이었어요. 춤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오디션 준비 때 온종일 연습에 매진했어요. ‘내가 정말 다 외웠나?’ 이런 마인드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했죠. 후회 없이 노력한 만큼 오디션도 마음 편히 볼 수 있었어요.
스테디 뮤지컬 <쓰릴 미>를 거쳐 간 배우들이 승승장구했어요. 출연하면서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처음에는 새로운 ‘그(리차드)’를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새로운 시도보다 선배님들이 잘 쌓아온 리차드 캐릭터를 보존하고, 내 해석을 담으면 자연스레 나만의 리차드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쓰릴 미>는 너무 어려운 뮤지컬이라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배우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뮤지컬이니 많이 보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쓰릴 미>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나 노래가 궁금합니다.
<쓰릴 미>는 주인공인 ‘나(네이슨)’의 기억에 따라 흘러가는 구조예요. 심의관과 대화하는 네이슨의 연기에 따라 두 캐릭터 구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Life Plus 99 Years(살아있는 동안)’이라는 곡을 애정합니다. 주인공의 관계가 역전되는 걸 잘 보여주면서 상황과 역설적으로 선율이 참 아름다워요.
‘그(리차드)’는 이성과 동성에게도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리차드 역할을 어떻게 해석했나요?
리차드는 어릴 때 학대를 당했고 아버지로부터 동생과 차별당해서 상처와 자격지심이 많은 캐릭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우상화해주는 네이슨이 필요했을 거고요. 때론 네이슨이 눈엣가시여도 애정이 있으니 데리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리차드가 자신의 라이터가 있음에도 네이슨에게 “불 있어?”라고 묻는 심리가 궁금해요.
리차드에게 ‘불’은 흥분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자 많은 의미가 담겨있어요. 개인적으로 해석하자면 리차드는 담배, 네이슨은 불에 비유할 수 있죠. 담배를 피우려면 불이 무조건 필요하듯,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을 거예요. 그렇기에 해당 장면은 ‘네이슨이 리차드를 내심 기다리고 있구나’라는 걸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리차드가 ‘얘랑 한 번 놀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을 거고요. 실제로 저는 해당 장면을 장난스럽게 가거나 짜증스럽게 연기할 때도 있어요. 해석은 관객분들이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 전부 옳다고 생각합니다.
연기하기 전 나만의 습관이 있나요?
공연 전 습관은 딱히 없어요. 다른 배우분들은 기도하거나, 목을 풀기 위해 입술을 부르르 떨며 립 트릴을 하세요. 저는 대신 별다방 유자민트티를 자주 마셔요. 흔히 생각하는 민트 초코의 맛이 아니라 달달하고 맛있어요. 유자의 효능 때문인지 목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요.(웃음)
뮤지컬 <풍월주>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신라시대의 남자 기생인 ‘풍월’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들은 ‘운루’라는 섬에서 귀부인을 접대해요. 제가 맡은 주인공 ‘열’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인 ‘사담’과 평화롭게 지내던 중, 어느 날 진성여왕이 열에게 애정을 갈구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뮤지컬이에요.
<풍월주> 열 역할에 애정이 크다고 알고 있는데 다시 무대에 서게 됐어요. 소감이 어떠세요?
<풍월주>는 작품 속 공백이 없고 풍성한 뮤지컬이에요. 공연이 끝날 무렵엔 너무 아쉬웠죠. ‘다시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찰나, 운 좋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어요. 대본에서 놓쳤던 부분이나 새롭게 보이는 부분을 발견하며, 한 단계 성장한 열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풍월주>는 두 번째 참여시죠. 이전과 달라진 지점이 있나요?
이전에는 온전히 저한테만 집중하며 연기를 했어요. 하지만 2인극 <쓰릴 미>를 거치니 이제는 상대방의 연기도 고려하게 됐죠. 똑같은 대본이더라도 상대방에 따라 호흡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때마다 어떻게 반응할지 여러 가지 플랜을 짜고 상대 배우에게 집중해요.
''자이언트 베이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힘이 세요. <풍월주>에서 매진 공약으로 사담 역할을 맡은 배우를 가뿐하게 들어 올리셨죠.
제가 의외로 힘이 있는 편이에요. 물론 힘이 엄청 센 건 아닙니다.(웃음)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공약을 이행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의외의 반응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인간 이석준으로서 이야기하면 떨려서 얼굴이 빨개져요.
하지만 배우로서 제 역할에 충실할 땐
부끄럽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아요”
<풍월주>에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가사를 잊은 적이 있어요. ‘술에 취한 꿈’ 노래에서 “어느 빈집에 들어가 밥을 짓고 굴뚝에 연기를 피우며”라고 해야 하는데 “굴뚝에 연기를 피우며”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속으로 당황했는데 “달빛에 구름을 띄우며”라고 무마했어요. 이 외에도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를 줍고 울어야 할 때 종이가 땅바닥에 떨어져서 곤란한 적이 있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게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제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할 수 있어요.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에서 주인공 인후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연기를 보면서 펑펑 운 적은 처음이었어요. 특히 ‘거울과 아버지’라는 곡은 ‘저만의 해석으로 좋게 표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또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DIMF) 참여 당시 주요 곡 중 하나인 ‘둘만의 이야기’는 석 달 동안 연습했을 정도로 애정이 깊어요.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수식어로 불리고 싶나요?
‘믿고 보고 들을 수 있는 배우’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어요. 이 말 자체가 인성이든 실력이든 모두 빼놓지 않고 좋다는 말이니까요. 앞으로 제가 펼치는 연기가 관객들에게 인정받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꼭 이뤄낼 수 있도록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취재_김선화 기자
사진_천유신 실장
의상_이진혁
헤어·메이크업_최혜영
스튜디오_루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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