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쌓은 순간의 미학 가수 이승윤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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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쌓은 순간의 미학
가수 이승윤
 
<싱어게인> 우승자로 존재를 알렸던 이승윤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그가 ‘무명 가수’로 쌓은 수많은 시간과 음악이 비로소 우리에게 와닿은 것이다. 하루하루 순간에 집중한다는 그의 태도는 경험의 소중함, 다른 이와 함께하는 가치를 알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그런 사람이 축적한 시간의 결과물은 우리에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선사한다. 오늘 그와의 대화도 차곡히 쌓여 언젠가 꺼내볼 순간으로 남길 바란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 6주간의 전국투어 콘서트를 끝내셨어요. 공연 중 거짓말처럼 놀란 순간이 있었나요?
투어 내내 거짓말 같았죠. 사실 저는 음악 외 큰 아이디어를 내지는 않았어요.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즐거운 자아실현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텍스트로 접했던 아이디어를 공연장에서 처음 본 순간이 생각나요. 상상했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모든 장면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공연 중 맨 뒤로 가서 무대와 객석을 볼 때 ‘내가 진짜 공연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가장 좋았던 요소는 어떤 건가요?
연출팀에서 큐브를 콘셉트로 기획하셨어요. 여러 큐브가 각자 우주를 유영하다가 하나로 모여 우주선이 되고요. 저는 그 우주선을 타고 관객석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다니며 공연하는 거였죠. 흩어져 있던 제 고민이나 감정, 스태프분들 아이디어와 노력이 모두 합쳐진 무대라는 게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팬분들께 승윤 님 스스로를 ‘순간을 드리는 존재’라고 하셨죠. 지난 6주가 팬분들께 어떤 순간으로 남길 바라시나요?
저는 그런 거창한 얘기는 안 합니다. (웃음) 그냥 즐거운 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즐거웠으면 ‘장땡’입니다. 거대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어요. 들어주시는 분들이 의미를 찾고,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하며 삶에 조금이나마 환기가 된다면 영광이죠. 제 의도는 ‘그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게 끝입니다.

그럼 승윤 님께는 어떤 순간으로 남을까요?
제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커요. 이번 투어를 하면서 ‘비로소 내 초심을 구현하면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떤 초심인지 궁금하네요.
각자 순간순간 벌어지는 관계와 교류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추상적인 초심을 품고 산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음악으로 이런 공연을 하는 거였어요. 이번 투어에서 비로소 해냈죠. 저는 하루하루, 순간순간만 사는 타입이라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편인데요. 투어가 끝날 때는 ‘이 순간을 참 많이 기억하고, 돌아가고 싶어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어 중 재충전할 시간도 있었나요?
아예 없었습니다. (웃음) 작년 4월부터 앨범을 만들기 시작해서 1년 동안 달렸어요. 하지만 너무 행복했고 투어도 정말 즐거웠어요. 평일에는 빨리 주말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전국투어 시작 전 인터뷰에서 ‘4월 1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될지 알 바 아니다’라고 농담을 던지시기도 했어요. 완전히 집중했던 공연이 끝난 지금은 어떤 삶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일단 《캠퍼스플러스》 화보와 인터뷰를 잘 해야죠. (웃음) 아직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소화해야 하는 일정들이 남아서요. 모두 끝나면 다시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한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있거든요.

곧 페스티벌 공연도 예정돼 있죠. 페스티벌·단독 공연·방송 등 무대마다 느낌이 다를 텐데요. 그중 가장 편한 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신경 쓰는 건 단독 공연이죠. 모든 걸 허용해주시는 관객분들이 있으니까요. 온전히 제 무대를 위해 힘 써주시는 스태프분들 에너지와 그 순간만큼은 ‘네 마음대로 하렴’이라고 해주시는 분위기도 좋아요.
 

무대에 오를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건지 궁금해요.
120%로 치밀하게 준비하지만 막상 무대는 80%의 여지를 열어놓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수를 좋아해요. 그게 공연의 일부가 될 때 짜릿함도 느끼고요. 그러려면 공연을 만드는 모든 분이 함께 집중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돼요. 저 혼자 돌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무대에서 실수나 변수가 생기더라도 그 자체로 공연이 되게 하는 시너지를 미리 충전하는 거죠.

공연 중 바닥에 눕는 등 퍼포먼스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부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변수의 일부일까요?
미리 생각해놓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아무 때나 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우선 일종의 라포르(rapport)를 형성하고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라는 순간적인 판단을 해요. 거기에 반응이 올 때 짜릿함이 있어요. 작위적이거나 의도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모멘트로 만드는 거죠. 일부러 ‘어떤 퍼포먼스를 해야지!’ 하면 이상해지더라고요.

이번 투어에도 변수가 있었나요?
매 공연마다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는데요. 대구 공연에서 제가 객석 2층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어요. 어떤 노래가 끝나가면 스태프분이 잡아두신 엘리베이터를 탈 계획이었죠. 그런데 엘리베이터 잡아놓는 걸 깜빡하신 거예요. 그걸 다 중계하던 상황이었어요. 관객분들이 제가 기다리는 걸 보면서 재밌어하시고, 무대 위 친구들도 깔깔댔어요. 각본을 짰으면 그런 그림이 안 나왔을 거예요. (웃음)
 

지난 1월 발매하신 [꿈의 거처] 앨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세계관이나 서사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하셨지만 듣다 보니 어떤 흐름이 느껴지더라고요. 트랙리스트를 짤 때 많이 고민하시는지 궁금해요.
당연히 엄청 신경 쓰죠. 이번 앨범은 철저히 음악적인 부분을 기준으로 짰는데 정서도 비슷하게 묶이더라고요. ‘난 이런 가사를 쓸 때 이런 장르나 멜로디를 사용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의도하지 않았으나 나름의 맥락이 있는 거죠.

‘잠비나이’ 이일우 님 피처링 등 많은 분과 함께 작업하셨는데요. 협업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더하기가 아닌 곱셈이 되면 좋겠어요. 시너지가 생기길 바라고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의 아이디어와 시간, 수고가 담긴다는 게 중요해요. 함께 만든 것에 혼자만 박수받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무슨 역할을 얼마나 멋지게 해냈는지, 또 그 덕분에 제 음악이 더 좋아졌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혼자보다 다른 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걸 선호하시나 봐요.
처음 아이디어를 나열할 때는 혼자하는 걸 좋아하고요. 완성할 때는 함께인 걸 좋아합니다. 날것의 부끄러움이 있어서 얼추 됐다 싶을 때 다른 분과 함께 살을 붙여가요. 후자가 더 재밌긴 해요.

‘말로장생’, ‘누구누구누구’에서는 승윤 님만의 ‘말맛’이 느껴졌어요. 그런 가사를 쓰기 위해 참고하는 거나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일상 속에서 집요할 정도로 아재 개그를 해요. (웃음) 사실 끊었다가 최근에 투어를 하면서 다시 시작했어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거든요. (웃음) 가사는 노래를 불러보면서 멜로디에 맞게 단어를 많이 수정해요. 자주 불러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꿈의 거처]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를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매번 달라지는데요. ‘꿈의 거처’ 중 ‘삶을 공허에게 바치는 건 이젠 됐어’로 하겠습니다. 살면서 당연히 공허감을 맛보고, 그에 삶을 뺏기기도 하지만 삶 전체를 갖다 바치는 건 그만 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저처럼 마이너스한 감정선을 가진 사람은 공허에게 다 미루면 오히려 편한 경우가 있어요. 그 탓을 하면서 삶의 모든 문제를 떠넘기죠. ‘이제 그렇게 변명만 할 수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에 썼던 가사예요. 물론 저도 공허와 친하게 지낼 때가 있지만 나를 전부 바칠 수는 없다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가진 곡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전국투어 공연을 하면서 ‘비싼 숙취’ 후렴 부분이 좋아졌어요. 쉽고 직관적인 멜로디라서 관객분들이 함께 따라 해주실 때 짜릿하더라고요.
 

앨범 제목과 같은 ‘꿈의 거처’는 사랑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고, 희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승윤 님의 꿈의 거처는 무엇인지, 가사에서 말하는 ‘너’는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사실 노래를 쓸 때 제가 뭘 알았던 건 아니에요. 막연히 썼던 곡이죠. 오히려 노래를 부르면서 정립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통 미래를 꿈꾼다고 이야기하지만 ‘꿈을 꿔서 뭘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잖아요. 단정적 목표를 답하면 그 외 꿈은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하고요.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여기’가 합쳐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꿈의 거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여기’라고 답하고 싶어요. 바라보는 지향점이나 도달하고 싶은 곳으로 간 순간엔 그곳이 다시 ‘여기’가 되겠죠.

‘웃어주었어’, ‘기도보다 아프게’, ‘한 모금의 노래’는 위안을 주는 듯했는데요. 승윤 님이 위안을 얻거나 믿음을 갖게 되는 건 무엇인가요?
시간이 축적되고 있다는 걸 인지할 때 위안받아요. 순간을 산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 순간의 99%가 흩어지더라도 1%가 쌓이고 쌓여서 저를 지탱해요. 혼자 쌓은 시간과 친구들, 함께 해주시는 분들, 관객분들과 만들어온 시간도 있죠. 그 시간들 덕분에 이번 공연도 할 수 있었고요. 전국투어 마지막 공연에서 ‘오늘 이 순간도 쌓이겠구나’라는 걸 각인했을 때 비로소 시간의 축적을 느꼈어요.

5월호 주제가 ‘약속’인데요.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이번 전국투어를 시작하면서 공연이 다 끝났을 때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해냈다’는 말을 해주겠다고 다짐했어요. 끝난 뒤에 그 말을 할 수 있었고요. 물론 미래의 저도 열심히 살아갈 테지만, 한 번 더 무언가를 잘 해내겠습니다. 어느 순간 저희가 또 만난다면 다시 저를 불태워서 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캠퍼스플러스》 독자분들과 팬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제가 얼마나 순간적으로, 횡설수설 말했는지 느끼곤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의 진심을 담아주시고 읽어주셔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답 Q&A

꿈을 꿀 때 컬러 또는 흑백
돌비 서라운드 8K 컬러

가장 최근에 들은 노래
Sam Smith – Stay With Me

오늘 기분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이승윤 - 웃어주었어

오늘의 TMI
채소가 하나도 없는 버거를 먹었다

오늘 아침에 한 생각
대학생은 땡땡이 칠 수 있어서 좋겠다

자주하는 말버릇
아...

숙취해소법
숙취가 사라질 때까지 앓는다

갖고 싶은 초능력
모든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

듣고 싶은 애칭
율리우스 카이사르

인생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난 마지막 나야

 

PROFILE

앨범
정규 [꿈의 거처] (2023)
정규 [폐허가 된다 해도] (2021)
EP [새벽이 빌려준 마음] (2019)
EP [달이 참 예쁘다고] (2018)

방송
NOW 오리지널 <이승윤의 후아유> (2022)
JTBC 예능 <유명가수전> (2021)
JTBC 예능 <싱어게인> (2020)

공연
2023 이승윤 전국투어 콘서트 ‘Docking’ (2023)
이승윤 콘서트 ‘Docking’ (2022)
싱어게인 TOP3 전국투어 콘서트 (2021)
CREDIT
 김혜정 기자
사진 이진철
헤어 김수철
메이크업 김현경
의상 김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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