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낙서, 바나나 껍질, 동물 사체 논란의 작품들, 어디까지 예술일까?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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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낙서, 바나나 껍질, 동물 사체
논란의 작품들, 어디까지 예술일까?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좀 치고 싶었어요... 전 예술을 한 것뿐이에요.” 지난 12월 경복궁 낙서 모방 범행 피의자가 경찰 조사 후 블로그에 쓴 글이다. 문화재를 훼손한 본인 행위를 예술이라고 주장한 그의 발언은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개인전 〈WE〉에서 바나나 작품을 먹은 대학생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어디까지 예술로 인정해야 할지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 봤다.

 

경복궁 낙서 모방범이 한 발언과 카텔란 전시의 바나나를 먹은 대학생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승현 2019년 행위 예술가가 카텔란의 바나나를 먹은 건은 개념 미술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죠. 이번 대학생은 이미 했던 퍼포먼스에 대한 단순 모방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예술이 하고 싶었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새로운 요소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경복궁 담장에 낙서한 건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친 범죄이자 반달리즘 행위예요.

박솔아 저 역시 문화재 낙서는 범죄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라고 주장한 모방범 발언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 회피일 뿐이에요. 카텔란 전시 바나나 사건은 재밌긴 했지만 사실 표절에 불과하다고 느꼈습니다.

안유진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윤리를 벗어나는 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해요. 경복궁 사건 역시 처벌받아야 할 범죄입니다. 카텔란의 바나나를 먹는 퍼포먼스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일지라도 이미 누군가가 먼저 했기에 더 이상 새로운 의미가 없었고요.

김수민 경복궁 낙서 모방범이 한 발언은 범죄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 핑계죠. 바나나를 먹은 학생은 껍질을 붙인 사진과 영상을 직접 제보했는데요. 개념미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우리나라 예술계에 파장을 일으키기 위한 행위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예술가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의 “예술에는 성역이 없다”라는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안유진 말 자체는 공감하지만, 미스치프는 법을 어기지 않고 활동했다는 점에서 경복궁 낙서 사건과 다른 경우예요. 낙서 모방범은 미스치프 발언을 부적절하게 인용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한 거고요.

정승현 법을 어겨도 괜찮다거나 윤리를 거슬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교적 더 신성시되는 것을 예술 속에서 다루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지거든요. 해당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본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김수민 예술 속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 같아요. 유진 님 말씀처럼 미스치프는 창의적 활동을 하더라도 변호사 법률 검토를 거치며 선을 넘지 않고 활동했습니다. 이 말을 ‘예술이라면 범죄도 상관이 없다’라고 잘못 받아들이면 경복궁 낙서 테러 같은 사건이 또 벌어질 거예요.

박솔아 본질적 의미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영역을 건드려 세상의 변화를 모색하는 게 미스치프가 가진 예술 가치관이자 목표라고 하더라고요. 이는 권위적 문화나 유명 브랜드 문제를 드러내서 사회적 성찰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창작 세계를 담은 발언일 뿐, 도덕 윤리나 법을 모두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현대 예술의 거장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동물 사체를 활용한 작품으로 화제였는데요. 예술과 동물 학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박솔아 파리는 동물보호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작품에 활용하는 건 명백한 학대예요. 생명이 죽어가는 과정을 전시하는 설치 예술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봐요. 다만 이미 죽은 동물 사체를 활용하는 건 삶과 죽음을 다루는 데미안 허스트 작품 주제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깁니다.

김수민 사체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안규철 개인전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금붕어 9마리가 서로 독립된 길을 계속해서 도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금붕어를 활용했다는 점이 충격이었는데 당시 그 작품이 크게 비판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데미안 허스트가 현대 예술의 거장이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에 더 엄격한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 싶네요.

정승현 생명윤리는 기본 도덕인데요. 예술 작품을 위해 살아있는 동물을 활용하거나 죽이는 건 엄연히 이를 위반한 행위입니다.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범죄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데미안 허스트 작품을 예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유진 카텔란 작품 중 말을 박제한 <노베첸토(Novecento)>를 직접 봤습니다. 자연사한 동물이라도 큰 충격이었어요.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동물보호법과 예술 사이에서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기준이 필요해요.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요?

안유진 예술은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 성향이나 가치관을 드러내는 작품은 예민한 주제라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윤리의 선을 벗어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만요.

김수민 타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죠. 미국 예술가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이 1970년대 총으로 자기 몸을 쏘게 한 경우는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도발 행위 예술이었어요. 반면 죽음을 연출한다는 명목으로 모델에게 독극물을 먹이고 촬영한 사건은 명백한 범죄였습니다. 예술은 타인 권리와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정승현 예술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중 하나잖아요. 최소한의 도덕성도 지니지 못한다면 예술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아요. 꼭 사회적 역할이나 메시지를 담을 필요도 없고요.

박솔아 평화와 자유, 평등 등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하는 예술이 만연해지면 안 되겠죠. 하지만 어디까지 가능하고, 그 이상을 넘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정하기에는 애매하기 때문에 ‘감히 예술의 범위를 정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드네요.


전통적 미술의 정의와 기준이 달라진 지금, 예술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정승현 완벽하게 평가할 수는 없죠. 시대에 따라 정의가 계속 바뀌는 중이니까요. 오늘날 미술은 미적 가치보다 사회적 메시지를 얼마나 독창적으로 전달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앞으로 예술의 범주는 더욱 넓어질 테니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준을 확장해야 할 거예요.

박솔아 이제는 예술 작품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조금 희미해졌어요. 승현 님 말씀처럼 메시지나 아이디어가 인상적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더라고요. 본인 가치관에 부합하고 새로운 고민을 하도록 자극하는 작품이 긍정적으로 느껴져요.

김수민 요즘은 작품을 손으로 직접 제작하지 않아도 컴퓨터, 3D프린터, AI를 활용해서 상상력을 펼치기 쉽잖아요.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그렸는지를 봤던 과거와 달리 아이디어, 기술 활용 능력에 대해서도 예술 작품 가치를 평가할 수 있어요.

안유진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인식하는 예술 활동이 늘어난 것 같아요. 저도 회화전공 학생으로서 작품을 꾸준히 창작하는데요.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의도에 중점을 두는 편이에요.


이를 판단하는 주체는 예술가와 대중 중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수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대상, 즉 대중이죠. 아무리 작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도 그걸 봐주고 인정하는 관객이 없으면 예술 작품으로써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거든요.

정승현 작품이 더 가치 있는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대중이 중요합니다. 예술가는 그들이 작품을 더 쉽게 바라보고 잘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대중과 예술가 모두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 같아요.

안유진 하나를 꼽기가 어렵네요. 예술가는 자기 작품이 도덕 윤리를 위반하지 않도록 인지하며 활동해야 합니다. 대중은 작품을 보고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하며 상호 보완적으로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자율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박솔아 예술지상주의란 ‘예술이 그 어떤 사회성이나 윤리성에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라는 사상인데 이 자체가 도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사회적 통념이나 특정 사상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는 부분은 동의하지만 윤리적 기준은 지켜야죠.

안유진 저는 솔아 님과 반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사회 윤리에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인 만큼 인간이나 동물에게 직접적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정승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예술의 자율성과 독창성은 보장받아야 하는 중요 사항이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허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술은 사회의 도덕과 성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나친 예술지상주의는 오히려 불건전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를 형성할 우려가 있습니다.

김수민 저는 옹호하는 쪽이에요. 예술지상주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권력이나 자본을 위한 예술에서 벗어나 이러한 의미가 생겨났다는 점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요. 타인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어떤 경계 없이 자율적으로 뻗어나가도록 존중해야 합니다.


예술의 자유를 규제하거나 검열하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승현 앞서 제가 예술지상주의를 반대한다고 했지만 예술은 자기표현의 일환이에요.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이므로 검열은 옳지 않습니다. 예술에서 시작해 더 넓은 자유를 제한할 위험이 존재해요.

안유진 검열보다는 지금 저희가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예술에 대한 다양한 논란을 다루며 의문을 제기하고 새롭게 기준을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예술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만한 토론의 장이 많이 생기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예술이 가진 근본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김수민 사회에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를 줘야 해요. 미적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학생에게 예술의 지향점은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에 관객이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생각할 만한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죠.

안유진 사회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의미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우선이죠. 대중에게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역할이 가장 필요합니다. 우연히 접한 예술 작품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를 주기도 하니까요.

정승현 예술은 어떤 의미를 지니기보다 세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식이에요. 최근 작품 중 지향점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다룬 작품이 많더라고요. 오늘날 예술 작품이 지닌 역할은 대중과 소통하고 본인 관점을 전달하는 일이죠.

박솔아 저도 유진 님처럼 예술에는 정해진 역할이 없다고 봐요. 예술은 자유에 기반한 표현 활동이지, 사회적 기능을 위한 수단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예술이 수행할 긍정적 기능은 개인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자극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Audiences Talk
 

정승현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전공 22학번

예술의 기준과 역할, 윤리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큐레이터가 됐을 때 어떤 예술을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던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박솔아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전공 22학번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사람들 나름대로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이 관계가 궁금했는데요. 우리 학교 예술학도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눌 수 있어 정말 알찼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수민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전공 20학번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예술의 경계와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다른 학우와 토론을 나누며 몰랐던 점을 새롭게 알아서 토론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어 볼 것 같습니다.
 

안유진
동덕여자대학교 회화전공 23학번

학우분들 의견을 들으면서 예술을 향한 다양한 시선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제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자리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REDIT
 송희재 인턴기자
취재 송희재 인턴기자, 정하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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