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감정을 흔드는 섬세한 공감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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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 최초 누적 조회 수 3억 뷰를 기록한 ‘연애플레이리스트’(이하 연플리). 캠퍼스에서 피어난 청춘 남녀들의 사랑을 실감 나게 그려 화제를 모았다. 2017년 시즌1을 시작으로 시즌3까지 방영된 ‘연플리’는 인지도 없는 배우들을 스타 반열에 올려 이제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됐다. 이렇게 웹드라마계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연플리’ 일등공신 이슬 작가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다.
 

웹드라마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생 때 드라마 PD 지망생으로 3년간 언론고시를 준비했어요. 시험에 계속 낙방하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드라마 프로덕션 소속 작가로 2년 정도 일했어요. 이후 프리랜서와 피키픽처스에서 경력을 쌓았죠. 그러다 새로운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분께서 좋은 제안을 주셔서 함께 하게 됐어요. 때마침 스토리텔링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연플리’의 흥행으로 제가 속한 팀의 규모가 커져서 플레이리스트라는 회사가 만들어졌죠. 제가 웹드라마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연플리’가 유명해지면서 웹드라마가 세상에 알려졌고 그래서 이 직업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웹드라마 ‘연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요?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오면서 제게 처음 주어진 미션이 ‘모바일 콘텐츠를 성공시켜라’였어요. 그래서 모바일 화면에 맞는 구성으로 드라마를 만들기로 했죠. 당시 제가 봤던 웹드라마는 기성 드라마 한 편을 10분으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정도였어요. 심지어 10분인데도 지루해서 끝까지 못 보겠더라고요. 왜냐면 10분 내 이야기의 중요한 서사가 진행이 안 돼요. 저는 10분에 맞는 기승전결 구조를 짠다면 시청자들이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얼개를 잘 짜기 위해 노력했죠. 특히 TV보다 모바일로 웹툰을 즐겨보는 10~20대를 보면서 그들이 모바일형 드라마도 분명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웹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획할 땐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지식재산권) 요소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요. IP는 창작물에 대한 권리로 쉽게 말해 저작권을 말해요. 다른 드라마가 우리 드라마를 모방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IP 요소를 넣는 거죠. ‘연플리’ 같은 경우 CD플레이어를 통해 한 명의 이야기가 재생된다는 스토리 IP를 넣었어요. 그 외 ‘연플리’ 로고의 네온사인이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문구, 주인공들의 내레이션 등 여러 요소를 많이 고려했어요. 그리고 집필할 땐 감정을 신경 쓰는 편이에요. 전 드라마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메시지만 닿으면 안 되고 그 메시지에서 감정 터치가 돼야 하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본 후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많이 생각해요. 

대본은 어떤 방식과 과정을 거쳐 집필하시나요?
작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큰 줄기를 만들어서 메시지와 감정을 글로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죠. 작가마다 성향이 다른데 저는 아이디어 회의를 열심히 해요. 집단지성만큼 강한 건 없다고 보거든요. 아이디어를 모으는 방식은 ‘신박스(Scene box)’라고 저희가 만든 용어인데요. 장면별로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 박스처럼 정리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장면의 순서를 박스 맞추기처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요. 복선 배치도 쉽고요. 생각이 흐르는 대로 대본을 쓰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또 사전 조사 차원으로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 뭘 좋아하는지 얘기도 많이 들어요.
 

웹드라마와 일반 드라마 작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저희 제작사로 본다면 작가와 연출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작업해요. 일반 드라마 작가는 탈고하면 끝이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아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되 대본과 연출에 면밀하게 피드백을 주면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점까지 함께 협업해요. 작가와 연출자 사이에 소통을 많이 하죠. 또 한 가지는 여러 피드백에 열려 있다는 점이에요. 마케팅팀이나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많이 반영해요. 

웹드라마 작가로 일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요?
일과 삶의 구분이 없어요. 퇴근해도 집에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대본을 써야 해요. 근데 이건 작가의 숙명이라고 봐요. 이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작가로서 권태기가 온 적이 있어요. 그때 남편과 샘 스미스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고척돔에 사람이 꽉 찼더라고요. 세상 사람이 다 모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곳에 이만 명이 들어갈 수 있대요. 놀라는 저를 보고 남편이 ‘당신 드라마는 백만 명이 보잖아’라고 말하는 거예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다시 정신 차리고 좋은 대본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죠.

‘연플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세상에 나쁜 사랑은 없다. 나쁜 상황만 있을 뿐’ 모두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를 좋아하고 보니 이미 여자친구가 있어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사람을 나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사랑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각 캐릭터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또 ‘연플리’ 주인공들처럼 훗날 흑역사가 되더라도 대학생 때만이 할 수 있는 연애와 사랑, 충분히 하세요. 절절한 짝사랑도 오글거리는 고백도 좋아요. 응원합니다. 

‘연플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선 시청자들이 섬세한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자분들이 잘 표현해주셨어요. 사람들이 ‘연플리’하면 공감 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희는 ‘섬세한 공감’이라고 말해요. 일반적인 공감과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섬세한 공감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누군가 대신 잘 표현했을 때,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거죠. 또 우리가 웹드라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단 생각으로 열심히 하자고 얘기했어요. 근데 모두 다 그 마음으로 응해주셨어요. 정말 열정 가득한 현장이었어요. 일할 때 제 모토가 ‘모든 사람이 같이 일하고 싶게 만들자’인데 그 마음이 동해서 잘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재밌었다’, ‘연플리 또 하고 싶다’고 말할 때 가장 힘이 나요. 

웹드라마 작가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언론고시에서 수많은 낙방만 겪다가 지금 원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으니 저도 꿈만 같아요. 내가 어떻게 이런 운을 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첫째,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드라마 프로덕션에서 작가로 일했지만 글쓰기 외 잡일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모두 경험하니 그게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둘째, 남에게 피드백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피드백 받을 용기가 있어야 해요. 제가 봤을 때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천재 같은 사람이 출작을 하지 않아요. 왜냐면 자기검열이 너무 심한 거예요. 아직 완벽하지 않으니까. 근데 그건 자기 생각이잖아요. 스스로 만족 못 한 작품이 생각지도 못하게 대박 날 수 있고,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어요. 그건 남에게 보여줘야 알아요. 마지막으로 어찌 됐든 글 쓰는 일과 가까이 있으면 좋겠어요. 돈을 떠나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이면 뭐든지 하세요. 그 모든 것이 쌓여서 운을 기다리는 사람한테 돌아올 거예요.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 시즌4> 집필 (2019.6 방영예정)
<이런 꽃같은 엔딩> 집필 (2018)
<연애플레이리스트 시즌1~3> 집필 (2017~2018)

<리필> 스토리디렉터 (2019)
스토리디렉터 (2018)
<하찮아도 괜찮아> 스토리디렉터 (2018)
<옐로우> 스토리디렉터 (2017)
취재_구은영 기자, 김혜빈 학생기자, 김유림 학생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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