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 아닌 성장담 영화 <성덕> 오세연 감독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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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 아닌 성장담
영화 <성덕> 오세연 감독
 
“어느 날 OPPA가 범죄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영화 소개보다 흥미롭다. 이렇게까지 솔직한 ‘덕후’ 목소리를 담은 매체도 없었다. 광적인 존재로만 설명되던 팬을 누구보다 입체적으로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 오세연 감독은 가수 정준영 팬이었다. 10대 시절을 바친 성공한 덕후에서 하루아침에 실패한 덕후가 된 그는 같은 이유로 ‘최애’를 잃은 팬들을 만났다. 진솔한 이야기로 팬 문화에 변동을 일으킨 오세연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OPPA(오빠)’를 잃었지만 그는 분명 성장했다. <성덕>은 성공했다가 실패한 덕후가 아닌 ‘성장한 덕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성덕> 개봉 후 GV(Guest Visit, 관객과의 만남)를 10회 이상 진행하실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계시잖아요. 요즘 일상은 어떠세요?
최근엔 영화 관련 일정을 계속해왔고, 곧 《성덕일기》 책이 나와서 최종 교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예요. 오랜만에 학교에 복학하고 정말 재미있게 다니고 있었는데, 영화 일정으로 생각보다 수업을 너무 많이 빠지게 돼서 결국 어제 휴학을 했어요. 끝까지 다녀도 가망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슬프네요. (웃음)

스스로 ‘GV 아티스트’라고 칭하실 정도인데요. 지인이나 어머니 등 영화 출연진부터 조연출님까지 다양한 분과 GV를 진행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너가 궁금해요.
조연출 다은 씨와 함께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사랑이 정말 많은 '사랑전도사'이시거든요. 영화 개봉 직후 첫 GV였는데 관객분들께 ‘역조공’을 준비해오셨더라고요. 사탕과 초콜릿을 손수 포장해서요. 계속 사랑하며 살자는 메시지까지 적어주셨어요. 드라마 촬영팀으로 일하고 계셔서 많이 바쁘실 텐데 너무 감동이었죠. 영화 제작에는 6개월 정도 참여해주셨는데, 영화를 만든 후에 고민을 이해해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큰 힘을 받았어요. 영화도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시고요. 마음이 힘들 때 <성덕>을 보면 힘이 나고, 더 사랑하며 살고 싶어진대요. 정말 고맙고 감동이죠.

누군가의 덕후에서 덕후를 가진 존재가 되셨잖아요. 기분이 어떠세요?
GV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어요. ‘누군가의 팬이었던 사람이 이제 팬을 거느린 처지가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실 거냐’ 그땐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하다가 ‘그냥 저 좋아하지 마세요’라고 답했거든요. (웃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장문의 편지를 써주신 팬도 계신데요. 제 몸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빨갛게 탄 사진을 SNS에 올렸었거든요. 그걸 보는 팬 마음도 생각해달라고 하셨는데, 왠지 너무 슬픈 거예요. 애틋하기도,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더라고요. 고마운 마음이 커져서 미안해지는 것 같아요. 더 잘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성덕> 제작 기간이 2년 반 정도로 꽤 길었는데요. 영화를 완성하고 세상에 보이기 전, 어떤 마음이셨나요?
기분이 되게 안 좋았어요. (웃음) 후반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계속해서 조금씩 고쳤거든요. 완성했을 때는 후련함보다 왜인지 모르게 아쉬웠어요. 20대 초반 전부를 이 영화를 만들며 보냈는데 그 시간이 1시간 반가량 작품으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허무했고요. ‘이게 최선이었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개봉 후에는 생각이 좀 바뀌셨나요?
그럼요. 사실 첫 상영 전에도 기분이 좀... (웃음) 아무도 영화를 본 사람이 없는데 상영 전에 화제작이 돼서 걱정이 많았어요. 부담을 안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에 갔는데 혼자 보는 거랑 기분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조금 뒤쪽에 앉으니 영화와 관객까지 한 프레임 안에 보이고, 소리로도 반응이 느껴졌어요. 어떤 장면에서는 술렁이기도 했죠. 그런 반응을 직접 체험하니까 너무 두근거리고, 황홀한 거예요. ‘영화를 완성하는 건 관객이다’라는 말이 진짜인가 보다 생각했죠. 관객분들도 아시겠지만 영화가 완벽하지 않고,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그런 결점과 무관하게 앞으로 이만큼 사랑받는 작품은 다시 만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아쉬움을 떠나서 감사하고 기뻐요.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셨죠. 최근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도 상영했고요. 제58회 대종상 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에도 후보로 오르셨어요. 소감이 궁금해요.
남 일처럼 신기해요. 가슴이 벅찬 단계는 지난 것 같고요.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면 ‘네가 거기 왜 끼냐’는 반응이거든요. 저도 좀 동의해요. ‘저요? <트루먼 쇼>에요?’ 이런 느낌이죠. (웃음) 스스로가 기특하긴 해요. 엄청난 성공을 한 건 아니지만 영화를 잘 완성했고, 관객들에게 보여줬고, 많이 좋아해 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감동이죠.

‘범죄자가 된 최애’를 여전히 응원하는 팬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관점에서 영화를 시작하셨던 것 같은데요. 영화가 그 결말로 향하지는 않아요. 처음 기획과 방향이 달라지신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엔 남은 팬에 대한 궁금증이 컸어요. 목표 자체가 ‘그 사람들은 왜 남아 있을까’를 알아가는 거였죠. 그러다 떠난 팬을 많이 만나면서 일단 그 목소리에 집중하고 싶어졌어요. 이 사람들 이야기만 들어도 왜 남아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그분들이 저를 만나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영화에 담는다 한들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느낄 수도 있겠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떠난 팬’의 목소리를 담으셨는데요. 지금까지 그렇게 접근한 작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너무 이분법적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해요. 찬성 아니면 반대, ‘민초파’와 ‘반민초파’ 처럼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을 수도 있는 건데. (웃음) 그런 복합적 입장을 담으면 어떨까 했어요. 지금까지 팬이라는 존재 자체가 납작하게 그려지기도 했고요. 특정 성향으로 뭉뚱그리기보다 개개인의 목소리와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팬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아는 팬들은 매체에서 다뤄진 것보다 더 복합적인 고민을 안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덕>은 자전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흑역사’를 풀어내는 것도 그렇고, 솔직함에 대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요. '실패한 덕질'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셨나요?
사실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어요. ‘내가 부끄러울 일이 아니라 그들이 부끄러워야 하는데’ 싶었고요. 마음이 앞서서 또 다른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무작정 시작한 것 같아요. 출연진 중 한 명은 왜 나오게 됐냐는 물음에, 나중에 다른 사람이 ‘너 그런 흑역사 있잖아’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나서서 ‘그래, 나 그랬었어’ 얘기하는 게 ‘백역사’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 같다고 답하셨어요. 어쩌면 저도 그런 마음이겠더라고요.

오랜 시간 ‘덕후’로 살면서 가치관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그동안 얻었던 거나 ‘탈덕’하면서 느낀 게 있을까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방식 자체를 덕질로 배웠어요. 취향에도 영향을 받았고, 자유롭고 가식 없는 이미지를 보면서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유를 추구하는 가치관이 그때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고요. 덕질을 그만둔다고 해서 저에게 이미 새겨진 걸 하나하나 떨어뜨릴 수 없잖아요. 이미 제 것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굿즈 장례식’은 성공하셨나요?
영화에서 굿즈를 불태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들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아직 갖고 있어요. 장난스럽게 ‘이제 영화 소품이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나중에 어디 기증할 수도 있으니까. (웃음) 한편으로는 제가 어떻게 살았다는 걸 증명하는 상징으로 느껴져서,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한 시절을 버리는 기분이라 처분을 못 하겠더라고요. 어떤 얼굴이 새겨져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냥 저를 버리는 것 같아서요.

영화를 보며 때로는 웃기도, 분노도 하지만 위로받았다는 평도 많은데요. 상처를 드러내시면서 스스로 치유한 부분도 있으신지 궁금해요.
시작할 때는 분노에 가득 차서 우당탕탕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갔어요. 만들어가면서 분노만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고 여기게 됐죠. 너무 슬플 때도, 안타까울 때도 있었거든요.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를 계속 만나서 대화하다 보니까 마음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일종의 트라우마를 혼자서 감당하지 않고, 같은 일을 겪고 공감해줄 사람을 확인한 게 큰 변화였어요.

관객 평 중 ‘우정 영화’라는 표현이 가장 인상 깊더라고요.
저도 그 평을 보고 감동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 모두 저와 가까운 사이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덕질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대상이 가장 중요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함께 좋아하던 동생, 친구, 언니, 이모들까지 각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이었어요.

‘팬보다 연예인이 봐야 한다’는 평도 많더라고요.
그런 평을 보고 많이 웃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팬들에 대한, 팬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연예인이 볼 수 있다는 것보다 팬들이 만족하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관객분들께서 ‘연예인이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게 재밌더라고요. 연예인도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상처받은 팬 마음을 접할 기회가 없잖아요. <성덕>이 지금까지 어떤 작품보다 더 리얼한 팬 목소리를 담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거 아닐까 싶어요.

도서 《성덕일기》도 출간하시죠. 영화와 같은 주제를 글로 담으면서 느낀 차이점이 있다면요?
영화 내레이션이든 인터뷰든 말은 흘러가잖아요. 그런데 책에 쓰인 활자는 계속 거기에 남아 있다는 게 큰 의미인 것 같아요. 물성을 가진 책에 새겨진다는 것이요. 또, 영화는 제가 만든 거잖아요. 이런 이야기가 책이 된 건 지지해주는 분들 덕분에 가능했던 거고요. 책을 제안해주신 출판사에도, 연재물을 좋아해 주신 분들께도 너무 고마워요. 팬 이야기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됐나보다 생각했어요.

영화 개봉 후 학교에 다니시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아요.
어제 휴학을 해서요. 원래대로면 지금도 재학 중인 건데... 일단 저는 모르는데 저를 아는 사람이 많이 생겼죠. 제가 2주 연속으로 같은 요일에 뺄 수 없는 스케줄이 생겨서 못 간 수업이 있었어요. 그다음 주 수업 때 교수님께 “지난주에는 여기 인터뷰 때문에, 지지난 주에는 여기 촬영 때문에 출석 못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이러시는 거예요. “맞죠? 본 것 같은데.” 그래서 저는 “네, 맞아요.” (웃음) 저는 출석 얘기가 중요한데 갑자기 축하를 해주셔서 약간 당황스러웠어요.

지금까지 취재와 촬영으로 질문하는 입장이셨을 텐데, 영화 개봉 후에는 답변자로 인터뷰를 많이 하고 계세요. 혹시 지금까지 ‘이건 왜 안 물어보지’ 했던 게 있을까요?
의외로 <성덕> 영어 제목에 대한 질문이 없더라고요. ‘Fanatic’인데요. 광적인 사람, 광신도라는 뜻으로 ‘팬(fan)’의 어원이에요. 집단을 의미하는 ‘팬덤(fandom)’이라고 제목을 붙이기엔 매체에서 다루던 팬덤 모습이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느꼈어요. <성덕>은 팬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팬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거라서, 그 ‘덤’을 빼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영화를 요약하는 말일 수도 있겠고요. 연예인 팬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서 광신도적인 측면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성덕>이 어떤 작품으로 남기를 바라시나요?
뭐랄까, ‘오빠’들이 사회면에 많이 오르잖아요.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 나를 이해해줄 수 있고 공감하며 진짜 위로받는 영화. 뭔가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영화. 그들이 계속 사고 치는 세상이라면 우리 덕후들에게 영구적으로 위로를 주는 영화로 남으면 좋겠어요.

어떤 작품을 만드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으신가요?
극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계속 뭔가를 쓰고 만드는 삶을 살고 싶어요. 모순적인 것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각자 제한된 시야 밖의 것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도 싶고요.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일지라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작품을 계속 만드는 게 목표예요.

 

PROFILE

학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재학 중
영화 <성덕> (2022)
저서 《성덕일기》 (2022)
CREDIT
취재 김혜정 기자
사진 오세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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