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뒤에서 함께 걷는 스승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엄태웅 교수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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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뒤에서 함께 걷는 스승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엄태웅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아이돌’로 불리는 엄태웅 교수는 늘 따스한 표정과 목소리뿐 아니라 ‘학생이 가는 길을 따르는 게 진짜 교육자’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고전문학을 일상과 만나게 하기 위해 힘쓴다며 신중히 선택하는 단어, 어미 하나하나에서 제자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대학원에서 고전소설을 전공하셨다고요. 여러 문학 중 해당 분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고전문학 작품이 좋아서 전공을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서양사학과(현 사학과)를 부전공했었는데 공부하다 보니 우리 문학 학문 체계가 서양의 근대적 전환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구축됐다고 느꼈어요.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대적 기준에서 재단하고 평가한 것 같더라고요. 그보다는 당대 시선으로 우리 작품과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싶어서 고전문학을 선택했습니다. 문학사적으로 고전문학을 재조명해 보겠다는 나름 큰 포부였죠. (웃음)

그런 포부 때문인지 수업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 볼 만한 여지를 많이 알려주시는데요. “《사씨남정기》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라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막장 드라마는 사랑하는 사람, 가족 간 질투와 시기를 기본 요건으로 하죠. 《사씨남정기》 속 시기·질투심, 가문 내 갈등 같은 요건이 막장 드라마 연원이라고 생각해요. 고전소설은 드라마처럼 방송통신위원회 심의 규정을 따른 게 아니다 보니 결말은 윤리적일지라도 그 과정은 굉장히 자극적이에요. 그래서 막장 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매 학기 자원하는 학생에 한해서 고전문학 작품을 창의적으로 비교·분석하는 발표를 진행하시죠. 가장 기억에 남는 흥미로운 주제를 꼽으신다면요?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참 어려워요. 큰 발표 주제는 ‘옛이야기와 요즘 서사 콘텐츠의 상관성’인데요. 학생들이 매번 다른 작품을 참신한 시선에서 소개한다는 점이 놀라워요. 예를 들어 영웅·군담소설과 슈퍼 히어로물을 연결하거나, 우리 옛이야기가 해외에서 공연된 사례를 소개해 주기도 했죠. 학생들의 넓은 시야, 깊은 생각을 두루 확인하면서 제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고려대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나오신 만큼 20대를 전부 이곳에서 보내셨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께서는 재학 당시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수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도 국어국문학과는 사랑했던 학생이었어요. (웃음) 학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나 소통에 정말 관심이 많았지만 앞에 나설 용기는 부족해서 조용한 편이었죠. 대신 활발한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습니다.

학부생 때 겪으신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절이에요. 국어국문학과 문학연구학회 ‘문학반’을 들어갔는데 매주 금요일마다 세미나를 진행했죠. 어느 날 세미나가 끝난 밤 9시쯤에 한 친구가 “우리 강촌에 놀러 가자!”라고 제안한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10명 정도가 모두 동의해서 바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어요. 마침 딱 막차가 남아 있더라고요. 그렇게 강촌까지 가서 새벽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강가를 산책한 뒤 다시 서울로 왔어요. 즉흥적으로 한 행동에서 즐거움을 찾았던 기억이 많네요.

학부생 시절 국어국문학과 소속 사회과학토론학회 ‘햇새벽’(당시 철학반)의 학회장으로서 쓰신 글을 최근 국어국문학과 과방에서 학생들이 발견했어요. 어떤 글이었나요?
철학반에서 발행하던 과지 ‘언집’이었어요.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많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라 공지와 학회 운영에 대한 안내를 언집에 직접 손으로 썼어요. 정말 옛날이죠? (웃음) 주로 MT, 세미나 에피소드처럼 소소한 이야기가 많았죠. 가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도 싣고, 다음 호에는 또 다른 학회원이 반론을 제기하면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지금 학생들이 그 언집을 읽고 정말 낭만적이라는 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교수님도 사람이구나’라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앞으로 국어국문학과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제가 학부생일 때 대학은 연구자를 길러내는 ‘학술적 지향’이 강했기 때문에 연구 성과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도 괜찮았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모든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는 연구 성과와 학생의 개인적 경험이 만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발표를 신청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고전문학과 현대 콘텐츠를 연결하고 현실과 접점을 찾으면 학생들도 ‘우리 삶에서 작품이 멀리 떨어진 섬처럼 존재하는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국어국문학과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신데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영광이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늘 건강 관리 잘하겠습니다. (웃음) 제가 학생 여러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사실이지만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온전히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고 느끼기도 해요. 그래도 학생들이 제 노력을 인정해 줘서 이런 별명이 붙은 것 같아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하지만 춤은 못 춰요. (웃음)

한 학생이 ‘일개 학부생’이라고 표현하자 ‘학부생은 일개가 아니다’라고 답장해주신 문자가 인상 깊었습니다. 학생이란 교수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제가 대학생 때 가졌던 꿈과 희망을 상기해 보면 ‘지금 학생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생각 자체로 설레요. 그런 가능성 때문에 학생들은 저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라는 마음이 들고, 한 명 한 명 다 의미가 있죠. 그래서 ‘일개 학부생’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얘기한 거예요. 제가 학부생일 때 교수님과 학교가 학생 의견을 존중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함께 고민해 줬던 기억이 있어서 저도 학생을 그렇게 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교육자로서 가지고 계신 신조는 무엇인가요?
제가 학부 때 수업보다 학회 세미나를 더 열심히 했던 이유는 그 커리큘럼을 제가, 우리가 짰기 때문이었어요. 무엇을 공부할지부터 직접 결정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던 거죠. 교육자로서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신조는 ‘학생들이 무얼 공부하고 싶은지’ 파악하는 거고요. 궁극적 목표는 ‘학생들과 함께 무엇을 공부할지’ 정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안내자가 되어 방향을 잡아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학생이 가는 길을 따르는 게 진짜 교육자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PROFILE

학력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경력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2007-2008)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원(2009-201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연구협력부장)(2012)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2012~2019)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2019~현재)

수상
저서 《사랑과 불륜의 문화사》 ‘2022 올해의 우수도서’ 선정 (2022)
고려대학교 ‘석탑강의상’ 5학기 연속 수상 (2019.2~2022.2)
CREDIT
 강다현 인턴기자
사진 엄태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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