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종교,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박진규 교수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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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종교,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박진규 교수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을 방문하자 문에 붙은 성모 마리아 포스터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미디어학과와 종교 탐구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박진규 교수는 그 관계를 알아야 현대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전한다. 한국 최초의 미디어와 종교 연구자이자, 언론영상학부 인기 강의 ‘대중문화론’을 이끄는 박진규 교수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에서 2007년부터 교수로 재직 중인 박진규입니다. 벌써 햇수로 17년째인데 꽤 오래됐네요. 대중문화나 이론 수업 등 미디어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 미디어와 종교 연구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데요. 관련 내용이 생소할 독자를 위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미디어 종교’는 종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만든 새로운 영역입니다. 저 같은 미디어 학자를 비롯해 종교 사회학자, 신학자, 문화인류학자 등 다양한 계통의 전문가가 모였죠. 한국뿐 아니라 많은 사회가 종교적 원칙에 따른 국가 운영을 허용하지 않는 ‘세속 사회’인데요. 미디어와 종교는 ‘세속 사회에 속한 우리는 어디에서 종교를 발견해야 할까?’를 질문하는 분야예요. 미디어를 들여다보면 제도 종교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합니다.

생소한 연구 주제인 것 같은데 해당 분야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종교가 정말 중요했어요. 미디어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둘의 연결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연구하면 신앙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유학을 준비할 무렵 우연히 《Rethinking Media, Religion, and Culture》라는 책을 읽었어요. 문화 연구 방식을 통해 미디어와 종교 관계를 연구한 접근 방식이 너무나 신선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눈이 떠지는 경험이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만약 그 책이 없었다면 미디어와 종교보다 미디어와 기독교라는 보수적이고 좁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됐을 거예요. 책 한 권이 제 인생을 바꾼 거죠. (웃음)

미디어와 종교학자로서 흥미롭게 보신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재밌게 봤어요. 드라마에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 혹은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제도 종교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거든요. 소수 집단이 죄와 벌, 구원 같은 진리 체계를 독점할 때 세상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하는지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요. 또 인간이란 종교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줘요. 사람은 언제나 죄에 대해서 질문하고, 삶과 죽음에 관해 고민하는 존재잖아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그 내용을 풀어낸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교수님 강의는 OT를 꽉 채우시기로 유명한데요. OT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OT 주간에는 10분 정도만 강의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15주간 수업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는데 OT를 짧게 끝내는 건 한 주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잖아요. 그만큼 수업 목표도 줄어들고요. 예전부터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OT는 수업 출발점을 확인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건지 설명하는 시간이거든요. 그걸 모두 얘기하니까 자연스레 시간이 꽉 차게 됐죠. 나이가 들면서 잔소리가 늘었는지 OT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더라고요. (웃음) 요즘은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모든 수업 과정에 토론을 포함하는 점도 교수님 수업만의 특징이죠.
본래 대학은 고등 교육기관이며 민주사회의 시민을 만드는 곳이잖아요. 교수로서 앞으로 학생들이 어떤 시민이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강의식 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거든요. 이론을 바탕으로 주관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행동할 수 있게 생각하는 연습이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토론 수업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죠.
 

인기 과목 중 하나인 ‘대중문화론’은 완전한 토론형 수업이에요. 어떤 걸 가르치시나요?
대부분 대중문화를 여가나 시간 보내는 용도로 여기잖아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대중문화 의미와 영향력은 매우 커요. 비전공자라면 대중문화를 단순히 즐기기만 해도 상관없지만 전공자라면 미디어가 생산하는 대중문화에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한 학기 동안 대중문화를 탐구하기 위해 관련 수업을 개설했습니다. 토론을 통해 대중문화가 사람들을 사회질서에 순응하게 만드는지, 저항하게 만드는지 한 번쯤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대중문화론’ 수업에서 매년 조별로 수작(秀作) 후보를 선정하고 이유를 발표하는 ‘대중문화 수작 시상식’을 진행하죠. 여태까지 나왔던 시상식 후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대중문화에 대한 평가는 사회 분위기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사는지에 따라 수작이 달라지는 거죠. 2009년에 선정한 수작 중 뮤지션 김디지의 ‘Mad Bull’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당시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세대가 광우병 때문에 정부에 저항하던 시기였는데요. 이 노래는 정부를 향한 반발의 목소리를 거세게 담았고,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이 부르기도 했죠. 용기 있게 수작으로 뽑았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교수님은 늘 양파 심지에 빗대어 ‘자신만의 관점’을 강조하시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관점을 정하는 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교수님의 비결을 알려주세요.
여러 학생에게 나만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시키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우리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니 주관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일관적이지 않거나 모순될 때가 많죠. 그렇기에 ‘양파 심지’처럼 핵심 부분부터 출발해 관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부터 시작하는 거고요.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과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자신만의 관점을 찾지 못하고 혼란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조언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실 관점은 쉽게 세우기 어렵고, 변치 않는 것도 아니에요. 세상을 보는 눈이 계속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출발 자체가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수업을 통해서 나만의 양파 심지를 찾는 시도 자체가 바람직하고 의미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실망할 필요 없어요. 충분히 잘하는 중이니까 칭찬하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PROFILE

학력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대학교 저널리즘 석사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경력
일본 리쓰메이칸아시아 태평양 대학교 Asian Society and Culture 학과 조교수(2006~2007)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2007~현재)
한국언론학회 종교와커뮤니케이션 연구회장 (2010~현재)
《한국방송학보》 편집위원 (2012~2013)
《커뮤니케이션이론》 편집위원 (2023~현재)

저서
《청춘, 대중문화로 말하다》 (2015)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2023)
CREDIT
글, 사진 유영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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