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철학에 대한 끝없는 고민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임상욱 교수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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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철학에 대한 끝없는 고민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임상욱 교수
 
은은한 미소와 늘 함께하는 피카츄, 학생을 향한 열정과 사랑까지. 이 중 하나만 빠져도 임상욱 교수를 설명하기 어렵다. 아는 건 많아도 어쩌면 상식을 잃어버린 시대, 그는 학생들에게 사회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에 재직 중인 임상욱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시민이죠. 제 공적 관심은 ‘다 함께 잘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이를 실현해 가기 위한 방법론의 탐색이 바로 고등교육을 받는 목적이고요.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하셨다고요. 그 시간은 교수님 철학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저만의 연구 방법론을 찾았습니다. 당시 독일 수업 방식은 제게 큰 충격이었고, 처음에는 실망감까지 들었어요. 제가 유학한 이유는 ‘대단한 교수로부터 위대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수업 대부분이 오직 학생 발표로만 구성됐거든요. 덕분에 시간이 지나며 물고기를 받아먹는 것에 익숙하던 학문적 습관이 물고기를 잡는 법을 익혀가는 방식으로 성장했어요.

2005년부터 숙명여대 스승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빼빼로데이에 테이블 한가득 과자를 선물 받은 것? 농담이에요. (웃음) 흔하진 않지만, 아주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수업 중에 교육자와 학습자가 마치 하나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죠. 애매한 표현 같아도 하나가 된다는 느낌은 학생들 눈빛과 표정에서 읽을 수 있어요. 기꺼이 공감하고,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게 전해지거든요. 그럴 때 참 행복하죠.

‘철학개론’ 강의 당시 고대 그리스어로 처음, 시초라는 의미의 ‘Arche(아르케)’를 우리가 각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근원적인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셨는데요. 2024년 현재 교수님의 아르케는 무엇인가요?
교육자 관점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는 우리 학생들이죠. 올해도 제 아르케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에요. 다음엔 그들로 인해 주변인도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고요. 이렇게 이어지는 사이클이 점점 더 사회까지 확산하면 좋겠습니다.

강의하실 때 늘 “커피 마시며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열심히 사랑하며 사세요”와 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죠. 그래서 교수님 강의는 전공 공부에 지친 제게 휴식과 위로의 시간 같았습니다. 교수님 강의가 학생들에게 어떤 시간이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잃어버린 ‘상식’을 찾는 시간이었으면 해요. 작은 상식을 찾다 보면 질문이 시작되고, 결국 세상의 모순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우리를 더 행복하게 변화시킬 방법도 비로소 보이죠. 20대에 공부하느라 잠잘 시간이 없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건 모두 비상식적 사회 현상이에요. 그런 마음에서 “열심히 생각하고 사랑할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는 거죠.

피카츄를 너무 사랑하셔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피카츄 교수님’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많은 학생이 궁금해하는 질문이기도 한데요. 수많은 캐릭터 중 피카츄를 좋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아무런 이유 없이 뭔가에 풍덩 빠져버리는? 사랑하면 첫눈에 반한다고 하잖아요. 저에겐 ‘첫 귀’에 풍덩 빠진 경우가 피카츄였어요. 뭔지도 몰랐는데 우연히 스크린에서 들려온 ‘피카피카’가 천상의 소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보석 같은 친구가 생겨 너무 기쁘네요. (웃음)
 

고르기 어렵겠지만 가장 교수님 철학과 방향성이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철학자가 있을까요?
철학적 인간학 시조라 불리는 막스 셸러(Max Scheler)예요. 제 학위논문 인물이기도 하죠. 어떤 존재를 커다란 생태계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비슷해요. 동학의 시조인 최제우 사상체계가 그와 매우 흡사하다는 걸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죠. 인내천(人乃天)으로 알려진 평등사상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었던 거예요.

과학 기술이 날로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누군가는 철학과를 ‘먹고 살기 어려운 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철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철학의 의미는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철학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바로 질문이거든요. 어원처럼 무언가 알고 싶어 하는 게 바로 철학이니까요. 오늘 같은 과학의 시대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네요. ‘AI가 인간의 작업을 대신하면 노동 이외에 우리가 할 만한 가치 있는 활동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AI가 미래 직업을 모두 대체해서 내가 실업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데요. 이는 경영자 입장에서 보는 걱정이지 결코 철학적 질문이 아니에요. 미래가 어떤 질문을 하는 쪽으로 기울지는 결국 우리 몫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한 명 한 명의 시민이고, 그들의 선택이 곧 사회의 모습이니까요.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아무나 할 수 없을 것 같은 학문이기도 합니다. 철학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함께 살아가기에 적합할 정도의 건강한 상식을 가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편견에 대한 검토, 이른바 지속적 성찰이 필요하겠죠. 그럼 점점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테고, 그만큼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 거라 믿어요. 그 점에서 가장 철학적인 사람은 가장 상식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철학을 전공했느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20대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시대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바로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고 하겠습니다. 사회가 여러분을 왜소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거예요. 분명 많이 지치고 힘든 상태일 겁니다. 그다지 기쁜 일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잦을 텐데요. 여러분은 모두 이 세상의 주인이에요. 영국 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어요. 역으로 내가 사회의 좋은 주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세상은 반드시 나아질 거예요.

마지막으로 철학을 사랑하는 모든 학생을 위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피카피카!

 


PROFILE

학력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철학 박사

경력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부교수(2005~)
CREDIT
 송희재 인턴기자
사진 임상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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