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주는 여백의 미학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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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주는
여백의 미학
 
시각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그림과 그 안에 담긴 넓은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하는 그림책. 이를 한 장르로 구축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일렁였다. 하지만 대부분 서점은 그림책을 성인 독자 코너에서 멀리 배치하는 등 여전히 독립된 장르가 아닌 어린이문학 중 하나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이와 반대로 그림책에 ‘다시 빠졌다’라고 말하는 어른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삶에 지친 어른을 위로하는 책

최근 그림책 심상에서 마음의 넉넉함을 느끼고 싶다는 성인이 늘고 있다. 따뜻한 그림이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절대 유치하지 않은 생각, 철학, 인생을 담은 그림책이 감성을 자극한다. 성인 독자가 그림책 세계로 들어오며 작가층도 확대됐고 작품 주제 또한 다채로워졌다. 출판업계 전문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나이가 들어도 동심이 남아 있기에 직관적 그림으로 이야기를 표현한 책이 성인에게 위로와 치유가 된다”고 전했다.

전자책, 웹소설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 독서 형태가 달라진 현재, 그림책은 종이책 물성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이야기에 따라 판형, 종이 재질, 표현 양식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 또 그림책은 두께가 얇아도 그 자체의 독특한 언어를 곱씹으며 느리게 읽어야 한다. 줄거리 파악뿐 아니라 페이지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림 요소들을 하나씩 들여다봐야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독자 감성을 가득 채우는 게 그림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현실의 벽을 넘은 동화

여전히 그림책이라고 하면 아이만 보는 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2016년 그림책 작가, 연구자, 출판인 등 동종업계 종사자가 모여 그림책협회를 설립했다. 열악한 그림책 산업 현실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겠다는 일념에서다. 이들은 그림책을 이 시대에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할 제10 예술로 선언하고, 장르 독립 법령화와 지원제도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 초대 회장 한성옥 작가는 “그동안 그림책은 아동문학 하위 장르로 분류돼 서점·도서관 도서 배치나 정부 지원정책 등에서 소외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림책협회 노력 덕분인지 최근 그림책 시장은 눈 부시게 성장했다. 지난 2020년 《구름빵》 백희나 작가는 한국 작가 중 최초로 세계 최고 아동문학상 중 하나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받았다. 또 올 3월 《여름이 온다》 이수지 작가 역시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이처럼 세계적 상을 수상한 스타 작가가 탄생하고 성인 독자 호응으로 그림책 시장은 질과 양에서 많은 변화를 맞았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가 큰 인기를 얻은 것을 비롯해 《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어른의 그림책》,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등 성인을 위한 그림책 읽기 에세이도 여러 권 출간될 정도다.

 

내면을 마주하는 마음 처방전

그림책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많아서 독자 해석으로 채울 공간이 풍부하다. 좀 더 깊게 읽고 싶은 사람을 위해 성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문화, 일명 ‘그림책 테라피’가 꾸준히 확산하고 있다. 여러 명이 모여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활동은 책을 읽은 후 무엇을 느끼고 발견했는지 등을 활동지에 적어서 공유한다. 그림책을 통해 본인 마음을 마주보고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며 행동 변화를 도모하는 게 목적이라고. 《그림책 테라피가 뭐길래》 저자 오카다 다쓰노부는 “그림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테라피 효과가 있지만, 여러 각도에서 비춘 답을 모으고 전체적으로 무엇을 느꼈는지 깨달아야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림책 강좌, 전문 출판사, 책방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림책 필사 모임, 시니어 모임 등 다양한 분야 및 계층과도 연결되는 추세다. 지자체 문화재단을 통한 활동 역시 두드러진다. 의정부문화재단은 ‘문화도시 100만 원 실험실’을 통해 지난 2021년 4월 ‘어른들의 동화책 모임’을 진행했다. 또 고양시 행신도서관은 2021년 9월부터 성인 대상 그림책 테라피 프로그램 ‘쓰담쓰담 그림책 테라피’를 운영하고 있다.

 

팍팍한 현실 속 쉼터가 되는 예술

지난 2008년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수 알렉스가 배우 신애에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는 그림책을 읽어준 모습이 방영했다. 이후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했으나 미디어 효과로 인한 반짝관심에 머물렀다. 반면 많은 관계자가 최근 그림책에 대한 열풍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앞서 말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국내 도서 종합 TOP 100에 3주간 올라 있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른 그림책 역시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했다.

그림책을 흔히 ‘일상을 담는 예술’이라고 한다. 일상에 있을 법한 내용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내용이 많기 때문. 그림책은 수많은 함축적 내용을 내재한 만큼 어린이뿐 아니라 전 연령이 누리기에 충분한 문학 장르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지쳤다면 그림책을 통해 여러 가지 감성을 직접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CREDIT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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