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에 진심인 사람 어떤데 내 삶을 디깅(digging)하는 Z세대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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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에 진심인 사람 어떤데
내 삶을 디깅(digging)하는 Z세대
 
남다른 몰입을 통해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 건 물론 또 다른 정체성을 발견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취향에 맞는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디깅러’가 그 주인공. 파고듦을 통해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활약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이다.

 

트렌드가 된 콘셉트 놀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과몰입 토론하자'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과몰입이란 단순 취미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깊이 파고들거나 몰두 수준이 높은 상태를 의미한다. ‘과몰입러’는 콘텐츠를 단순히 수용하기보다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세계관에 깊이 몰입해 2차 창작물을 만들기도 하고, 등장인물이나 사건 분석, 비하인드 관련 이야기를 나눈다. 그저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같은 질문처럼 직접 그 속에 들어간 듯 생각하거나 해당 작품을 볼 때의 내 상황, 추억을 공유한다. 콘텐츠를 깊게 이해하고 빠져들어 함께 즐기는 거다. 과몰입은 이러한 Z세대 문화 소비 특성을 반영해서 등장한 용어다.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아이돌 그룹 모두 대상이 된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과몰입을 해봤다. 어릴 적 서로 역할을 정하고 콘셉트에 맞게 상황극 하는 ‘소꿉놀이’를 한 적 있을 거다. 혹은 영화 <해리포터>를 보며 내가 저 세계관 속에 산다면 어떤 기숙사에 배정될지, 내 지팡이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생각해 봤을지도 모른다. 같은 관심사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모여서 동아리, 소모임 등에 참여한 경험도 해당한다. Z세대는 이러한 생각과 경험을 온라인에서 과몰입이라는 이름으로 나누고 깊게 공감한다. 즉 콘텐츠를 최대한으로 즐기는 하나의 문화인 것.


파고 또 파는, 디깅모멘텀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3》은 이러한 현상을 ‘디깅모멘텀(Digging Momentum)’이라고 정의했다. 과몰입보다 조금 더 중립적이고 긍정적 개념으로 쓴다. ‘파기, 채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디그(dig)에서 파생한 디깅(digging)은 본래 대중음악 분야에서 쓰던 말이었다.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음악 장르를 찾아내고, 유행하는 음악 동향을 분석하는 행동을 설명한 게 시초였다. 현재는 그 범위가 예술, 식품, 스포츠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광산을 채굴하듯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디깅을 실천하는 사람을 ‘디깅러(digging+er)’라고 칭한다. 설명을 들었을 때 과거 일본어 ‘오타쿠(オタク)’에서 기인한 ‘덕후’ 또는 특정 브랜드, 제품에 대한 애정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를 말하는 '팬슈머'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디깅러 개념은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특정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점은 닮았지만 덕후와 팬슈머 몰입 목적은 자기만족 위주이며, 좀 더 나아가 성숙한 팬덤 문화를 만든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 디깅은 대상이 다양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완성도 높은 재미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단순 취향 소비를 넘어 자기 행복과 성장을 위해 과몰입한다는 차이가 보인다.


취향을 발굴하는 유형

디깅러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특별한 콘셉트를 즐기거나 특정 캐릭터에 집중해 자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콘셉트형 디깅’이다. 대표적 예로 ‘과몰입 공부법’이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관련 ASMR을 들으며 ‘항상 1등을 차지하는 주요 인물 헤르미온느’가 된 것처럼 몰입해 학습 집중력을 높이는 식이다. 유튜브에서 시작해 인기를 끌었던 ‘뉴진스의 하입 보이(Hype Boy)요’ 밈(meme)도 콘텐츠형 디깅이다.

‘관계형 디깅’은 타인과 소통하며 어떤 대상에 함께 몰입하는 유형이다.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소통하는 ‘덕질’이 그 사례다. 과거에는 특정 연예인 공연을 관람하고 굿즈를 나누는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최근 물건이나 취미 등을 좋아하는 디깅러가 모여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하고 소장품을 자랑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이다.

마지막 부류인 ‘수집형 디깅’은 말 그대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특정 아이템을 모으고 이를 SNS 등으로 공유하며 만족과 과시를 추구한다. 피규어나 인형 등 소품뿐 아니라 경험과 관계까지도 수집 대상이 된다. 특정 영화나 뮤지컬을 여러 번 관람한 뒤 세세한 소감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N차 관람’이 여기에 속한다.


성장, 행복 그리고 아름다운 과몰입

디깅 모멘텀 배경에는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다. 여러 전문가는 Z세대가 어릴 적부터 게임과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즐기며 자랐기에 가상 세계를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성향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대상에 대한 몰입과 디깅으로 이어진다고. 개인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전 세대에 덕질 문화가 널리 퍼진 점도 디깅 보편화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불안한 경제·사회 등 개인이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활발하게 발전했다.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만한 덕질을 통해 일상 에너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

지난해 가장 인기였던 키워드를 꼽는 ‘유튜브 트렌드 2022’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한국 Z세대 응답자 중 55%가 자신을 무언가나 누군가의 ‘찐팬’이라고 답했다. 그야말로 건전한 과몰입이 트렌드인 시대다. 디깅러는 현실을 열심히 사는 동시에 덕질을 즐기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성장과 행복을 추구한다. 적절한 디깅과 함께 삶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게 디깅모멘텀 핵심이다.

과몰입보다 더욱 과하게 파고드는 딥디깅(deep digging)에 대한 우려도 존재하지만 디깅러는 단지 취미에 진심이기만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멀티 페르소나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시대에서 자기만의 ‘찐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이자 성취를 목표로 하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 살면서 습관처럼, 때로는 나도 모르는 새 무언가를 디깅 했을지도 모른다. 방식과 대상은 각자 다를지라도 행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는 목적은 같다. 아직 나만의 디깅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면 정말 애정하는 걸 탐색하며 삶에 몰입해 보는 건 어떨까.
CREDIT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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