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충전 아닌 당뇨 충전? 설탕과 이별하기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10-17

facebook kakao link
당 충전 아닌 당뇨 충전?
설탕과 이별하기
 
단맛, 짠맛, 쓴맛 등 다양한 맛 중 단맛은 중독성이 있어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피로가 몰려오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혹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당 충전’을 위해 찾는 단 음식, 이대로 먹어도 괜찮은 걸까?

 

달달함으로 채우는 혈당 부스터

한때 마카롱, 흑당, 달고나, 초콜릿을 코팅한 마시멜로 등 글자만 봐도 혈당이 폭발할 것 같은 디저트가 성행했다. 이후 코로나19 엔데믹과 함께 건강,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헬시플레저 문화가 형성되면서 제로 음료가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그러나 요즘은 설탕을 줄이자는 움직임과 ‘당 충전’ 유행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현재 가장 인기 간식은 긴 꼬치에 과일을 꽂고 표면에 반짝반짝한 설탕 시럽 옷을 입혀 굳힌 탕후루(糖葫蘆).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설탕 겉면이 와사삭 부서지면서 촉촉하고 달콤한 과일 맛이 어우러져 극강의 달달함을 자랑한다. 중국에서 유행하던 간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길거리 어디에서도 쉽게 보인다. 10~20대 모두 줄지어 사 먹을 정도로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탕후루 기원에 대해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다. 여러 설이 난무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건 본래 약으로 쓰였다고 전해지는 일화다. 12세기 말, 중국 남송 황제 광종(光宗)의 후궁인 황귀비가 원인 모를 병으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 회복을 위한 여러 약을 시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 의사가 설탕물에 끓인 산사나무 열매를 처방하자 이를 먹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이 소식이 민간에 전해지며 백성들이 설탕에 달인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꿰어 먹기 시작한 게 지금의 탕후루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 과일 꼬치 열풍에 많은 사람이 ‘언뜻 보기엔 몸에 좋은 과일을 챙겨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되레 건강을 해치는 불청객’이라고 언급한다. 두꺼운 설탕 시럽을 입은 덕분에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강해지는 중이다. 이에 과도한 당 섭취에 대한 위험성도 함께 떠올랐다.

 

설탕과의 달콤한 전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당 충전이 전혀 근거 없는 행동은 아니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수치가 올라가면 에너지원인 포도당의 정상적 흐름을 방해해 단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당은 단순당과 복합당으로 나뉘는데 여러 전문가가 걱정하는 건 단순당이다. 흔히 ‘당분’이라고 부르는 포도당, 과당, 설탕, 자당 등이 해당한다. ‘혈당 스파이크’ 주요 원인으로 꼽는 이 당은 구성 분자가 작아 소화 과정 없이 바로 흡수·분해돼 즉시 에너지원으로 사용 가능하다. 대신 우리 몸은 급상승한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을 과다 분비한다. 그렇게 혈당을 떨어뜨리면 저혈당과 공복감이 나타나 다시 단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당류를 과잉 섭취할 경우 당뇨병, 치매, 심장 질환 등을 겪을 확률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당뇨병은 40~50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성인병이었으나 근래에는 발병 평균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20대 당뇨 환자는 3만 7천 명으로 지난 5년간 평균 12% 늘었다고. 많은 사람이 해당 원인으로 단 음식을 꼽지만 사실 설탕은 당뇨병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당뇨병은 인슐린 부족으로 혈관에 있는 포도당을 우리 몸에 공급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병이다. 포도당 대사는 설탕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기 때문에 당을 많이 섭취하더라도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고, 제 기능을 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일반적 설탕 섭취량과 섭취 방법이 인체에 해롭다고 할 수 없으며, 당뇨병과 설탕은 무관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당뇨병학회는 ‘당뇨병 환자 금지 식품 리스트’에서 설탕을 제외했다.
 

그럼에도 단 음식을 주의하라고 하는 이유는 과잉 섭취 시 체중이 쉽게 증가하기 때문.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처럼 과하면 문제가 된다. 비만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커져서 2형 당뇨병 발병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 기억력 중추인 해마를 위축시키는 혈관성 치매도 이러한 이유로 발병률이 높다고 하는 것. 단 음식을 끊었을 때 불면증이 생기고 ‘가짜 식욕’을 느끼는 현상, 산만해지거나 무기력증·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면 ‘설탕 중독’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체적·심리적 원인에 의해 단 것을 끊임없이 찾아 먹는 행동으로, 정신과 진단명에 명시된 질병이다.

당분은 뇌 안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신경전달물질이자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serotonin)을 분비시키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한다. 설탕을 섭취하면 뇌의 보상중추에 작용하는 도파민이 분비돼 마약을 복용할 때와 같은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기에 더 큰 쾌락을 위해 보다 많은 양의 설탕을 찾게 만든다. 즉 단순당을 과도하게 섭취한다면 단맛 의존도가 높아져 설탕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당류 소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최근 식품업계는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탕후루 본질인 설탕을 뺀 ‘제로 슈거’ 탕후루가 등장한 것. 과연 제로 슈거로도 기존 매력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 설탕 대체재로 흔히 알려진 스테비아, 알룰로스, 자일리톨 등을 대안으로 떠올릴 거다. 하지만 이 대체당은 설탕과 분자 구성, 물성이 달라서 탕후루를 만들 수 없다. 제로 슈거로 기존 광택, 단맛, 질감 등을 살리려면 물엿이나 올리고당을 추가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국 설탕을 피하지 못하는 도돌이표가 되는 셈이다.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물질은 이소말트(Isomalt)다. 이당류 알코올의 혼합물로, 설탕과 매우 비슷한 물리적 특성을 보인다. 당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분해반응을 일으켜 갈변하는 캐러멜화가 일어나는데, 이소말트는 열에 강해 가열해도 유리처럼 투명하게 코팅된 탕후루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인슐린 분비 자극도 없다. 단점은 장에서 흡수되지 않아 과도하게 섭취하면 설사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로 슈거여도 단맛은 그대로 유지돼, 단맛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여전하다.

사실 탕후루의 당류 함량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탕후루 프랜차이즈 업체 ‘왕가 탕후루’의 한국분석센터 영양성분 검사 결과서에 따르면 한 꼬치 기준 딸기탕후루는 당류 9.9g를 포함한다. 당 함유량이 가장 높은 블랙사파이어탕후루는 24.7g이다. 이는 당류가 38g 들어 있는 사이다 350ml 한 캔보다도 낮은 수치다. 문제는 최근 재료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기존에 귤, 딸기, 포도 등 한 입 거리 과일로 만들었다면 이제 가래떡이나 약과도 탕후루 재료로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탕후루 마카롱, 탕후루 쉐이크, 탕후루 타르트까지 등장하는 중이다.

 

달콤함이 죄가 된 사회

2021년 식약처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공식품으로 섭취하는 당은 34.6g이다. 하루 총열량인 1,837kcal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일일 당류 섭취 비중은 7.5%. 하루 섭취 열량의 10% 미만으로 제한하라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보다 낮은 수치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는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하는 한국인 특성상 이미 당 섭취량이 충분한 상황에서 디저트로 단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탕후루 유행은 당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져 나타나는 여러 현상 중 하나일 뿐’이라며 특정 간식을 조심하기보다 하루에 섭취하는 단순당의 총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 ‘음식 섭취와 비전염성 질병 예방을 위한 세제 정책(Fiscal policies for Diet and Prevention of Noncommunicable Diseases)’ 보고서에서 설탕이나 감미료처럼당류가 첨가된 청량음료 등의 식품에 세금을 매긴 ‘설탕세’를 부과할 것을 권장했다. 설탕세 제도를 가장 먼저 시행한 국가는 노르웨이다. 무려 1922년 초콜릿 및 설탕에 제품세를 도입한 게 시작이다. 2010년 이후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했고, 현재 멕시코, 태국, 필리핀 등 45개국이 자국민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을 위해 설탕세를 부과하는 중이다. 해당 정책을 시행하며 첨가당을 넣은 제품 가격이 상승했기에 대부분 나라에서 당류 관련 식품 수요가 감소했다고. 우리나라도 2021년 2월 가당음료부담금 신설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음료 가격을 인상하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우려와 질병의 주범은 설탕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반발이 일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 만큼 ‘과한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인생의 단맛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탕의 달콤함에 한 번 길들여지면 정도를 낮추기가 매우 어렵기에 입맛을 단계적으로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탄산음료만 즐겨먹는 사람이었다면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아주 약간 넣는 일 등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 보자. 덜 달콤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질 거다. 아픈 세월을 보내지 않으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CREDIT
 양지원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