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Z세대의 실용적 인간관계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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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Z세대의 실용적 인간관계
2024년 1월 15일
 
자극적 소비가 늘어가는 흐름과 달리 현실 속 인간관계에서는 담백함을 추구하는 Z세대. 이들은 복잡하지 않고 심플한, 부담 없고 실용적인 만남을 원한다. 연애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 Z세대에게 홀로 꾸린 삶은 결핍이 아닌 자유다.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아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밥(혼자 밥 먹기)’이 신조어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무언가 혼자 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으며 그런 사람을 신기하게 보거나 용기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금방 낡은 생각이 돼버렸다. 지금 Z세대에게 ‘혼자 놀기’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혼영, 혼밥은 기본,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 가기), 혼생네컷(혼자 인생네컷 찍기)에 이어 혼자 노는 모습을 촬영해 영상 콘텐츠로 만드는 ‘혼놀 브이로그’까지 등장했다.

Z세대 인간관계는 효율성과 자율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어린 시절부터 SNS 등을 통한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과 교류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연결점을 찾기도 쉽다. 비대면 연결이 수월하기에 굳이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 영화를 보려고 친구와 약속을 잡고 만나는 일, 영화를 봤으니 카페에 가거나 밥을 먹는 일은 ‘영화 한 편’을 위해 너무 많은 수고가 든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홀로 예매해서 보러 가는 게 Z세대의 단순하고 자유로운 방식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속에서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경제적으로 시간을 써야 한다. 명절이면 흔히 듣는 ‘남들 다 하는 연애’에 대한 잔소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개인 삶과 개성, ‘나’를 가치의 중심으로 두는 Z세대에게 ‘남들 다 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성과도 없이 귀찮은 과제가 될 뿐이다. 타인 감정을 신경 쓰는 건 감정 소비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내가 진짜 원할 때, 정말 좋은 사람과 만나는 게 중요하지만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나와 딱 맞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일이 너무나 어려워졌다. 이제 연애는 기꺼이 선택한 사람만 하는 일로 남았다.
 


안부 인사는 ‘좋아요’로

앞서 말했듯 Z세대에게 SNS는 새로 나타난 문화나 기술이 아닌 언제나 함께해온 존재다. 기성세대는 SNS에 대해 시간을 낭비하고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Z세대에게는 주요 소통 창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전화번호를 묻기보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묻고, 카카오톡 메시지보다 DM을 선호한다. 전화번호와 카카오톡은 친밀한 사이에서 공유하는 비밀에 가까워졌다.

특히 인스타그램은 생존 신고의 장이다. 게시글과 스토리를 통해 쉽게 근황을 파악하고 ‘좋아요’로 짧은 안부를 전한다. 부담스러운 일대일 대화와 “요즘 잘 지내? 특별한 일 없어”로 시작하는 긴 여정을 1초도 걸리지 않는 더블 탭(Double tap)으로 깔끔하게 끝낼 수 있다. 이만큼 효율적인 소통 방식이 없다. 신년이나 명절이면 SNS 게시물로 인사를 전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나’ 위주로 흘러가는 소통이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갈 필요도 없어졌다.

직접 선택한 방식과 모습으로 나를 표현한다는 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인간관계 또한 나에게 맞춰 꾸릴 수 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들거나 힘들게 하는 관계는 ‘언팔(언팔로우, unfollow)’하면 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면 차단도 가능하다. 타인에게 집중하기보다 나를 중심으로 구성한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꿈에 그리던 인간관계를 비로소 완성하는 방식이다.
 


최애·최소·최적 인간관계

인간관계에서 효율과 실용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무정(無情)하다고 단정하긴 부적절하다. 조금 더 편안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지, 모든 관계를 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Z세대는 최소한의, 최적의, 소중한 인연을 원한다. 인맥을 쌓고 사회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윗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인스타그램 ‘맞팔’을 통한 지인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관계를 넓히는 것보다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한 친구 몇 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거부하는 점도 큰 특징이다. 다른 취향,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와 힘들게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원치 않는 관계는 나를 소모할 뿐. 이런 이유로 직장에서는 종종 ‘요즘 애들은 달라’라는 뼈 있는 말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와 닮은 사람을 찾는 데 다른 세대보다 적극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온라인에서 취미를 공유하는 걸 넘어 소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는 데에 거부감이 적다. 온라인 친구를 실친(실제 친구)으로 만드는 일도 흔하다. 비대면과 대면을 적절히 활용하며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이 목표인 것이다.

유행을 넘어 첫 만남 자리에서 인사로 건네곤 하는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물음은 Z세대의 실용적 가치관을 반영한다. 네 개 알파벳으로 구성한 간단한 성격 유형을 통해 상대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 이를 기반으로 친해질 방법을 고민하고, 서로 배려하기 좋다. 물론 MBTI에 ‘과몰입’하는 경우도 많지만 참고 정도로 활용한다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눈치 보며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는 최적의 첫인사인 셈.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

Z세대가 이런 관계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명확한 부분에 쏟는 노력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들은 환경 오염, 기후 위기, 코로나19, 경제 위기가 뒤섞인 혼돈의 사회에서 자라나 살아간다. 가까운 미래에 불안이 해소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희망적 앞날을 그린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새로운 위협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니 갈수록 ‘지금’에 가치를 두는 것. 자기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안정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Z세대에게 실용적 인간관계는 불필요한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현재에 충실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일종의 생존 수단으로 효율적 소통을 택했다고 해도 피상적 관계가 주는 공허함은 피할 수 없는 법. 이런 삶의 방식을 지속하면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관계에서 얻는 충족감을 채우기 어렵다. 2010년대 후반부터 Z세대가 겪는 외로움을 우려한 연구가 꾸준히 보고되는 중이다. 2018년 미국 생명보험회사 시그나(Cigna Corporation)는 조사를 통해 갓 성인이 된 Z세대가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외로운 세대라고 분석했다. 46%는 ‘가끔 혹은 항상 외롭다’, 47%는 심지어 ‘버려진 기분이 든다’라고 응답했다고.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Z세대가 가장 외로운 직장인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지만 사회 주축인 젊은 세대가 이를 보편적 정서로 공유하는 일을 간과해선 안 된다. Z세대는 더 이상 미래 세대가 아닌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끄는 기둥으로 성장 중인 주요 계층이다. 이들이 깊은 소통을 주저하고 타인과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소수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심화한 외로움은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 구조를 들여다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서로를 고립시키는 소통 방식,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한 미래 등 많은 요소가 이들에게 사회 속 연결을 거부하게 만든다. 실용적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이유가 ‘회피’가 아닌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문화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고찰할 시점이다.
CREDIT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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