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가면을 쓴
녹색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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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가치소비에 민감한 Z세대를 겨냥한 친환경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환경보호 효과가 클까? ESG 마케팅 뒤에 숨은 그린워싱은 오히려 지구를 망치는 중이다.
지구를 구하는 종이 빨대?
해양생물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 남미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촬영한 바다거북이 영상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콧구멍 안에 약 10cm 길이의 빨대가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 이는 플라스틱 오염 심각성을 일깨웠다.
최근 ESG가 기업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면서 많은 업계가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의 제고에 앞장서는 중이다. 특히 앞서 얘기한 영상이 SNS에 퍼진 후 플라스틱 빨대를 대신할 대체품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2018년 스타벅스는 발 빠르게 종이 재질로 바꿨고, 관련 업계 대다수도 종이 빨대로 대체하거나 빨대가 필요하지 않은 뚜껑으로 개선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 제한 범위를 확대하면서 지난 2022년 11월 24일부터는 식당·카페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보기 힘들어졌다. 축축한 종이 빨대는 그 냄새와 맛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불평이 다수였지만, 환경보호에 일조한다는 일말의 자부심으로 죄책감을 덜어냈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종이 빨대는 환경보호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2020년 11월에 발표한 ‘폐기물 저감 모델(Waste Reduction Model)’에 따르면 종이 빨대를 생산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플라스틱 빨대 원료인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할 때보다 5배 이상 많다. 대통령 소속 국가기후환경회의도 종이 빨대 친환경성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재활용과 생분해가 잘된다는 특징 덕분에 환경을 오염하지 않는다고 알려졌으나,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배출돼 소각하면서 오히려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생산 과정의 친환경성은 인정받았지만 공정 과정에서 폴리에틸렌이 코팅되고, 폐기 중 미세 플라스틱 방출 가능성과 함께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결국 지금까지 대안이라 여긴 종이 빨대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환경 오염 원인이었던 것. 이처럼 사실은 친환경적이 아니거나 반(反)환경적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현혹해 이익을 보고, 오히려 환경을 오염하는 행위를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 한다.
‘환경보호’라는 이름의 속임수
그린워싱은 문제 본질을 가리기 위해 덧칠한다는 뜻을 가진 ‘화이트워싱(Whitewashing)’과 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을 합한 단어다.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활동을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속이는 마케팅 활동을 말하기에 ‘위장환경주의’라고도 불린다.
해당 용어는 1986년 미국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Jay Westerveld)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1983년에 그가 방문한 피지섬 호텔은 환경을 위해 투숙객에게 수건 재사용을 요청했다. 얼핏 보면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듯 보이지만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피지섬 자연을 파괴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 수건을 재사용하는 이유 또한 환경보호가 아니라 세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고. 몇 년 후, 제이 웨스터벨트는 이 사건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린워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본인 가치관에 따라 제품을 사는 ‘가치 소비’나 친환경 제품을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그린슈머(greensumer)’가 늘었고, ESG가 기업 평가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환경문제가 심화하면서 기업은 앞다퉈 자사 제품의 친환경성을 강조했다. 자연스럽게 자동차, 가전제품, 패션, 뷰티 등 그린워싱이 나타나는 산업 범위가 점차 증가했다.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
대표적 그린워싱으로 꼽히는 사례는 폭스바겐(Volkswagen)의 ‘디젤게이트(Dieselgate)’ 사건이다. 지난 2015년 독일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이 자사 브랜드 디젤 차량 배출 시험을 조작해 적발됐다. 주행시험 당시에는 배출 가스 저감 장치가 작동했지만, 실제 도로를 운행할 때는 이 장치가 작동되지 않도록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것. ‘클린 디젤(Clean Diesel)’ 마크를 부착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제품임을 강조했으나, 미국 환경부에 따르면 해당 차량 엔진은 오히려 기준치의 40배가 넘는 가스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2021년 지속가능한 생활을 비전으로 내세우는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도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비영리 환경단체 어스사이트(Earthsight)는 ‘이케아가 수많은 나무를 벌채하고 값싸게 제품을 만들기 위해 불법 벌목을 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 ‘Ikea’s House of Horrors’를 공개했다. 인기 있는 어린이 가구 공급망을 검토한 결과, 우크라이나 카르파티아산맥에서 불법 조달한 나무를 사용해 제품을 제작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이케아는 즉각 무고를 밝히며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벌목한다고 주장했지만 비난이 이어지자 불법임을 인지하고 이를 막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스타벅스 역시 일회용 컵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매장을 운영하거나 종이 빨대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는 등 친환경을 내세웠지만, 플라스틱 텀블러 판매량과 품목이 지나치게 많아 비판받았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19년부터 3년 반 동안 판매한 텀블러 수가 약 1,126만 개라고 전했다. 환경단체는 기념일이나 계절마다 출시하는 MD 상품 상당수를 플라스틱으로 만든다는 점도 지적했다.
속이지 마세요, 환경에 양보하세요
2021년 1월 영국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린워싱 사례 중 50% 이상은 소비자가 판단할 만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그렇기에 기업은 투명하고 정확하며 이해하기 쉬운 정보 제공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이에 영국, 프랑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국가는 그린워싱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가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했다. 해마다 증가 중인 그린워싱 위반 의심사례에 대한 효과적 규제와 방지를 위해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은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상 부당 환경성 표시나 광고로 적발된 사례가 2022년에만 4,600여 건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개정 지침으로 친환경 표시·광고 시 표현과 방법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해 소비자가 오인할 우려가 없어야 한다는 ‘명확성 원칙’과 소비자 구매·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누락·은폐·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완전성 원칙’을 신설했다. 또 일부 단계에서 환경성이 개선되더라도 상품 생애주기 전 과정을 종합해 효과가 상쇄·감소한 경우는 환경성이 개선된 것처럼 표시·광고할 수 없도록 했다.
기업이 환경성과를 평가하는 표준평가체계 및 위반 시 엄격한 제재 등 사전·사후관리를 위한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품 또는 기업을 선택하는 소비자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녹색소비를 추구하는 시대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그린워싱에 대해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 개인의 노력이 모두 맞물려 협력한다면 환경과 경제를 모두 살리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자리 잡는 토대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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