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니 사투리 좀 치나?
방언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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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문화를 재현하는 레트로 열풍을 따라 ‘서울 사투리’가 유행하더니, 최근 여러 K 콘텐츠에 사투리 바람이 불며 지역별로 심층 탐구하는 콘텐츠가 사랑받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던 사투리 인기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 사진 출처_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
고만혀~ 듣겄다
‘미디어 사투리’라는 말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어색하거나 과장해서 구사하는 말투를 일컫는다. 애매한 억양, 힘이 잔뜩 실린 악센트가 현지인 귀에 걸리는 순간 미디어 사투리로 판명 난다. 경상도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톤으로 ‘했제’, ‘내는’, ‘안카나’ 등과 같은 어미만 반복하는 걸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최근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화제였다. ‘매운맛 로맨틱 코미디’ 장르도 인기 요인 중 하나였지만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가 여러 SNS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내 니 좋아한다고!”나 “스페셜하게 접대할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억양 때문에 삽시간에 ‘밈(meme)’이 됐다.
물론 현지 느낌을 잘 살린 콘텐츠도 차츰 쌓이는 중이다. 충남 부여를 배경으로 한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와 경상남도가 주무대인 ENA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가 그 예다. 이 작품들에는 해당 지역 출신 배우가 등장하거나 대본 사투리 감수, 주연 배우 사투리 지도를 총괄한 책임자가 있을 정도였다고.
미디어 속 사투리가 제각각이다 보니 이를 향한 반작용도 생겨났다. 몇 가지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까지 구현한 ‘찐’ 사투리는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현재 유튜브에서 이 궁금증에 대한 답변 같은 콘텐츠가 유행하는 중이다.
토박이는 이래 말한디
과거에는 사투리를 ‘경상, 전라, 강원, 충청’으로 나눴지만, 사투리에 열광하는 Z세대는 더 섬세하게 파고든다. 예를 들어 경상도 사투리 대상이라면 대구, 부산, 마산·창원 등 지역별로 세세하게 비교하는 것. 이런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수십만을 가뿐히 넘긴다.
“안녕하시소~”로 시작해 대구·경북 사투리를 ‘갈치러’ 왔다는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경상도 사투리 특강’ 영상은 올라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미디어 사투리 기강을 잡는다길래 얼마나 잘하나 싶어 들어왔는데 ‘안녕하시소’에서 바로 전체 화면을 눌렀다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샀다. 이어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오를 뿐 아니라 유튜브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에도 소개됐다. 조회수는 업로드 3주 만에 180만 회를 넘었다. 미디어 사투리 기강을 잡은 ‘사투리 1타 강사’의 탄생을 알린 셈이다.
해당 영상은 대구 출신 유튜버가 시종일관 은은한 ‘광기’를 곁들여 대구·경북 말을 가르쳐 준다. 디테일한 사투리 구현, 언어학자에 버금가는 분석 등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하말넘많> 콘텐츠가 획기적인 건 기존 콘텐츠가 굳힌 방언 위상을 자연스럽게 깨버렸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해당 나라말을 익히듯 사투리 또한 공부해야 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제시한다.
이외에도 개그맨 김두영은 <어제오지그랬슈> 채널을 통해 ‘음식이 맛이 없을 때 충청도 사투리로 돌려 말하기’, ‘커피가 싱겁다를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면?’ 등 상황별로 사용하는 충청도 표현을 소개했다. 해당 유튜브 쇼츠 영상 조회수는 30만~200만 회를 기록했다. 제주도에 사는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 <뭐랭하맨>의 사투리 소재 콘텐츠 조회수 역시 수십만에서 수백만 회에 이른다.
▶ 사진 출처_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짭투리도 깔끼하네
사투리가 촌스럽다는 고정관념 대신 힙하고 쿨한 이미지가 더해지며 웃자고 지어낸 엉터리 사투리까지 유행했다. 그 중심에는 가짜 사투리, 즉 ‘짭투리’를 구사하며 자신이 부산 출신이라고 우기는 ‘경상도 호소인’ 개그맨 이용주가 있다. 그는 실제로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경기도, 호주 등에서 성장했기에 사투리를 전혀 쓰지 못한다.
엉터리 사투리가 유행한 건 유튜브 코미디 채널 <피식대학PsickUniv> 토크쇼인 ‘피식쇼’에서 ‘진짜’ 부산 출신 강동원이 출연한 이후부터다. 그는 경상도 출신임을 호소하던 이용주에게 “바퀴벌레를 부산에서 뭐라고 부르냐”고 물었고, ‘강구’를 몰랐던 이용주는 ‘바쿠쌉꿀빠’라는 괴상한 단어를 내뱉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투리는 폭발적 반응을 보이며 밈(meme)으로 번졌다.
이용주는 경상도 지역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경상도 호소인’ 시리즈 영상을 제작하며 엉터리 사투리 인기를 이어 갔다. 싹퉁마, 맛꿀마, 깔끼하네 등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던지는데도 불구하고 매회 조회 수는 50만~100만이 넘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몬 알아 듣겠으니까 고치라고?
과거에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인물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존재했다. 조직폭력배 역할은 대부분 전라도 말을 구사했기에 폭력적이고 거친 이미지라는 편견이 있었다. 또 경상도 사투리는 고지식하거나 무뚝뚝한 인물로, 충청도 방언은 다소 답답한 인물로 표현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 외에도 주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 소재로 소비했기에 우스운 이미지로 각인됐다.
이에 사투리를 ‘고쳐야 하는 말버릇’으로 인지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에는 서울 소재 한 대학교 학생이 같은 학과의 부산 출신 학생에게 사투리를 쓰지 말아 달라고 얘기해 논란이 일었다. 취직을 준비할 때도 여전히 고민거리로 등장한다. 2018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493명을 대상으로 사투리 교정 필요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8.6%가 취업 준비 과정에서 교정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투리 소외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간다. 조선총독부는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해 언어를 통일했다. 1970년대 산업화를 통한 급속한 근대화를 추진하며 ‘고운 말·바른 말 쓰기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표준어는 바른 말, 방언은 틀린 말이 됐다. 국민이 따라야 하는 말은 표준어이며, 사투리는 고쳐야 할 억압의 대상으로 굳어졌다.
뭐 땀시 관심 가지능가?
그렇다면 요즘 Z세대는 왜 사투리에 열광할까. 여러 전문가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꼽았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지역에 대한 색깔을 강조하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더해졌다고. 기존 미디어에 등장하는 어설픈 사투리가 인기를 부추겼다는 견해도 나온다. 제멋대로 사용하는 사투리에 젊은 세대가 반감을 가지고 새로운 콘텐츠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물론 갑자기 떠오른 ‘엉터리 사투리 붐’에 거북함을 느끼거나 반감을 표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말 그대로 엉터리일 뿐 실제로 쓰지 않는 표현이기에 웃음을 목적으로 사투리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사투리 콘텐츠를 향한 관심은 해당 지역 특색이 담긴 언어를 오래 유지할 자양분이 되기 좋지만, 이는 지역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에 관한 관용의 자세가 뒷받침됐을 때 가능한 얘기다. 사투리를 소재로 삼는 미디어는 이 지점을 숙고해서 자칫 지역 비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소비자 또한 유행을 방패삼아 한 지역의 고유한 언어를 가벼운 마음으로만 받아들인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투리는 고쳐야 할 낯선 억양이나 어휘 정도의 개념이 아닌, 그 지역 정서나 문화를 포괄하는 소중한 ‘문화’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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