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으로 현실을 흔들다 _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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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인터뷰 소감을 먼저 말하자면? ‘역시는 역시다’ 정갈한 단발머리, 안경 너머 보이는 무심한 표정, 냉철한 말투, 매서운 눈빛. 그녀의 실제 모습은 미리 떠올려 본 이미지와 그대로 일치했다. 지난 20년간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해온 그녀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무엇일까. 여성과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를 만났다.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자에 대해 정의하자면 둘은 어떤 점이 같고 다른가요?
둘 다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일을 하지만, 신분상 프로파일러는 경찰이고 범죄심리학자는 학자죠. 현재 프로파일러는 경찰청 소속 공무원으로, 그전에는 민간에 의뢰했어요. 민간인 신분으로 했던 사람이 표창원 선생님이나 저예요. 저는 교육기관에 있고 교수이기 때문에 범죄심리학자로 볼 수 있어요.

범죄심리학자가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원에서 심리측정을 전공한 후 경기대에 교양학부 교수 자리가 나서 지원했어요. 그런데 교정학과(교도소학과)로부터 재소자를 등급별로 분류하는 심사 절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그때부터 범죄심리학을 연구하게 됐죠. 그 뒤 대학원에 범죄심리학 과정을 신설할 계획이니 제게 맡아달라고 했는데, 범죄심리학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해외 연수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이후 미국 샘휴스턴주립대 교환교수를 다녀오면서 본격적으로 범죄 사건을 맡게 됐죠.

이 일을 해야겠다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셨나요?
2004년 경남 마산에서 아내가 딸과 함께 남편을 토막 살해한 사건이 있었어요. 경찰에서 시신 일부를 찾지 못해 피의자를 면담해야 하는데, 여형사가 없으니 제게 의뢰를 했죠. 만나보니 아내와 딸은 수십 년간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학대 피해 여성들이었어요. 반면, 경찰 조서에는 ‘부부간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배우자를 살해한 사건’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앙심’이란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심리학자로서 볼 때 이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남편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앙심이 아니라 자기방어적 본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심리학자로서 제가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어요.

남초 업계에 일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으셨을 텐데요. 그런데도 여성이라서 할 수 있던 부분이 있었다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땐 재소자도, 교도관도, 형사사법기관 실무자들도 모두 남성이었어요. 지금은 친고죄(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고소해야 공소 제기가 되는 범죄)가 폐지됐지만, 그때는 ‘성폭력 친고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 듣던 시절이었죠. 한편으론 이 분야에 일하는 여성이 없어서 여성의 특수성이 필요한 일에는 우선 배려가 된 것도 있어요. 예를 들면 대부분 피해자가 여성인 성폭력 사건이나 여성이 피의자 또는 피해자인 범죄 사건에는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문을 많이 맡았죠. 또 제가 여자였기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각도로 사건을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어요. 피해자보다 피의자의 인권이 중요시되는 형사사법제도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는 것도, 앞서 말한 사건에서 모든 사람이 ‘앙심’이라고 이견 없이 얘기할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겠죠.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로 불립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기본적으로 심리학자가 가진 호기심이 있었고, 거기에 여성 피해자들을 만나며 공감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에 계속 해올 수 있었다고 봐요. 연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어서 이걸 나만의 특수성이라고 보진 않아요. 연구는 궁금하고 재밌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거든요.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여성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범죄 예방 제도로 ‘스토킹 방지법’, ‘아동 유인 방지법’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고 계십니다. 취지와 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요즘엔 CCTV도 확대되고 치안력도 좋아져서 강력범죄자를 100% 검거해요. 하지만 문제는 피의자를 검거해도 피해자들은 이미 사망했거나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야 하죠. 그래서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예비 행위를 제재하는 법률이 있어야 해요. 이를테면 피해자가 여성인 살인 사건의 30%는 스토킹 기간이 있어요. 만일 그 스토킹을 구애 행위로 여기지 않고, 처벌하는 ‘스토킹 방지법’이 있으면 피해가 줄겠죠. 또 최근 랜덤 채팅 앱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온상이 됐어요. ‘집에 오면 10만 원 줄게’, ‘신체 일부 사진을 보내주면 커피 쿠폰 보내줄게’라며 아이들을 유인하고 있죠. 그래서 온라인으로 성매매를 유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아동 유인 방지법’이 필요해요. 그런데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어요. 앞서 말한 행위들을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많고, 국회에서는 법안이 상정돼도 오랜 시간 계류하다 폐기되고 말죠. 그래서 국회를 향한 압박과 여론 형성이 필요해요.
 

입법을 돕기 위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일단 많은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청와대 게시판이라고 생각해요. 수십만 명이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모아 정부와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거죠. 국회의원은 선출직이니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뽑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그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 같아요.

현재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우리 사회와 본인 생활에 문제의식을 느끼길 바라요. 제 연구 영역이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모든 건 현실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믿거든요. 문제의식 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사람이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키우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던지죠. 궁금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교수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가르친 대학원생들이 성장해서 실무 현장에서 범죄자의 자백을 받는 등 곳곳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죠. 전 대학원생들을 제자가 아니라 내 동료라고 생각하고 함께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20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제가 20대 때도 나중에 뭘 해 먹고 살지 고민하고 회의감이 들던 순간이 있었어요. 근데 순간순간 성실하게 살다 보니 어느 위치에 도달해있더라고요.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컨베이어 벨트에 밀려 오른손이 불구셨어요. 하지만 어느 회사의 고용된 CEO가 될 정도로 많이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전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 자기가 노력하면 뭐든 될 거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누구나 갈피를 못 잡고 시작해요. 근데 그걸 비관하고 필요 이상으로 포기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20대에 벌써 결론을 내리는 건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에게 기회는 와요. 다만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 성과가 오죠. 그건 제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제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現 경기대학교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경력
한국심리학회 심리서비스법위원회위원장
미국심리학회(APA) 정회원
미국범죄학회(ASC) 정회원
여성가족부 정책위원
경찰청 과학수사 자문위원
검찰청 전문수사 자문위원
법원행정처 전문심리위원
경기대학교 양성평등문화원 원장
미국 샘휴스턴주립대학교 형사정책학부 교환교수
서울대학교 심리과학연구소 박사 및 연구 참여

저서
최신 범죄심리학 (2018)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2016)

방송
KBS2 무한리필 샐러드 (2019~2020)
JTBC 체험! 사람의 현장 막나가쇼 (2020)
KBS2 대화의 희열2 (2019)
tvN 어쩌다 어른 (2018) 등

수상
BBC ‘올해의 여성 100인’ 선정
한국심리학회 심리검사 제작상
취재_구은영 기자·구보정 학생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Dot Studio, 010-4214-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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