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만큼 영상 유행도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유튜브 길이는 10분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1분이 채 되지 않는 영상이 늘어났다. 말 그대로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숏폼은 평균 15~60초, 최대 5분을 넘기지 않는다. 글로벌 모바일 비디오 플랫폼 틱톡(TikTok)이 불러일으킨 숏폼 열풍, 정말 괜찮을까?
Z세대 홀리는 15초 마법
지난 2020년 SNS를 강타했던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이 여러 요인 중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동작, 1분을 넘지 않는 러닝타임을 꼽는다. 그 수혜는 고스란히 틱톡 인기로 연결됐다. 덕분에 틱톡은 Z세대에게 전폭적 지지를 받았고, 2020년 소셜미디어 분야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틱톡 인기 배경에는 숏폼 콘텐츠가 있다. 과거에는 TV나 컴퓨터로 동영상을 시청했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후 영상 콘텐츠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 많은 현대인이 1시간이 넘는 드라마, 영화 대신 어디서나 간단히 볼 수 있는 숏폼 콘텐츠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 숏폼은 부수적 요소를 제외하고, 짧은 시간 내에 요점만 전달한다. 시청자는 궁금증을 해소하고, 재미를 느끼기 위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또 시간, 장소에 상관없이 편하게 보기 좋다. 이런 문화를 ‘스낵 컬처(Snack Culture)’라고 부른다. 과자를 먹듯 5~15분의 짧은 시간에 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뜻이다.
숏폼 콘텐츠 주요 소비자는 Z세대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바일 디지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호흡이 긴 TV보다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 유튜브에 더 익숙하고 이동 중에 볼 수 있는 영상을 선호한다. 숏폼은 짧은 시간 내에 임팩트와 재미를 줘 효율적 콘텐츠 소비를 추구하는 Z세대 트렌드에 부합한 셈이다. 틱톡이 인기를 끌자 인스타그램은 '릴스(Reels)'를, 유튜브는 60초 정도 짧은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쇼츠(Shorts)’를 도입했다.
▶ 사진 출처_유튜브 채널 ‘Netflix Is A Joke’
일상에 자리한 숏폼
개인 크리에이터뿐 아니라 예능이나 드라마 하이라이트 장면을 축약해서 만든 콘텐츠도 인기다. 많은 방송사가 ‘편집에 편집’을 더한 쇼츠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미 방송한 내용 중 화제성이 높은 장면을 모은 클립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더 나아가 편집 영상 중 일부를 다시 추출해 쇼츠 형식으로 업로드한다. 이 외에도 나영석 PD는 TV 프로그램에서 숏폼을 시도했다. tvN 예능 ‘삼시세끼’, ‘신서유기’ 등 정규 방송 말미에 ‘아이슬란드에 간 세끼’를 아예 5분만 방영한 것. 풀버전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공개했다.
대표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도 지난 3월 일부 국가에 '패스트 래프(Fast Laughs)’ 앱을 출시하며 숏폼 동영상 플랫폼 시장에 합류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영화, 예능 시리즈 영상 중 재미있는 부분만을 골라 1분 이내 짧은 동영상 클립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콘텐츠 주요 장면을 다양한 버전의 짧은 클립으로 소개해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자 이목을 끌었다.
▶ 사진 출처_CU 공식 인스타그램 @cu_official
각종 기업도 잠재적 구매력을 갖춘 Z세대를 포섭하기 위해 발 빠르게 틱톡 챌린지를 진행했다. BGF리테일은 지난 2019년 틱톡과 협업해 CU 홍보 모델을 선발했다. 참가자는 PB 브랜드 노래 ‘헤이루 송’에 맞춰 춤을 추고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총 2만 명이 넘는 참가자 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또 CU는 지난 3월 숏폼을 활용한 ‘다시 읽는 독립선언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3.1 독립선언서 전문 중 10개 문장을 발췌해 인스타그램 필터를 제작한 것. 이용자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 릴스 영상을 촬영한 뒤 개인 계정에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CU는 이를 통해 독립운동 유공자 후손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1천만 원을 기부했다.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숏폼 콘텐츠가 영향력이 크고 참여를 이끌어 내기 좋은 수단이라는 점을 활용한 결과다.
짧은 콘텐츠, 짧아진 생각
최근 Z세대, 혹은 그 아래 세대까지 불거진 문제가 있다. 어휘력과 문해력 저하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숏폼 콘텐츠와도 연결된다. 몇 년 전 ‘사흘’이 한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이는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광복절이 토요일이었기에 정부는 ‘관공서의 임시공휴일 지정안’에 따라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했다. 많은 언론사가 ‘사흘’ 간 연휴라고 보도하자, 사흘이 3일의 순우리말인 걸 모르는 몇몇 사람이 ‘사(四)’ 일로 오해해 뜻을 검색한 것. 적반하장으로 ‘왜 사흘이라고 써서 헷갈리게 하냐’고 반문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송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했다. 한국교양방송공사 EBS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은 고등학교 2학년 수업 현장을 공개했다. 영화 〈기생충〉 가제가 ‘데칼코마니’였다는 걸 설명하며 ‘가제(假題)’ 의미를 묻자 많은 학생이 바닷가재를 뜻하는 ‘랍스터’라고 답했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걸 넘어 글의 의미를 파악해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최소한의 능력’으로 규정했다. EBS는 지난 2021년 8월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 내용을 동명 책으로 발간했다. 여기서 전국 중학교 3학년 학생 2,405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진단 평가’를 실시한 결과, 27%가 적정 수준 미달이며 심지어 11%는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밝혔다.
문해력 저하 원인은 영상 중심의 미디어 발달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21년 한국교원단체연합회에서 전국 초중고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디지털 환경에 더 익숙한 Z세대는 필요한 자료를 글보다 영상으로 찾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정보를 요약한 콘텐츠만 보면 굳이 긴 글이나 기사를 읽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 활자를 읽을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현직 교사, 교수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상 시대에 잊지 말아야 할 텍스트 가치
Z세대에게 숏폼 콘텐츠는 단순 유행을 넘어서 이미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숏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방송영상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서 숏폼 콘텐츠가 정식 분야로 선정됐을 정도로 국가에서도 성장을 주목한다.
그러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숏폼 콘텐츠를 통해 얻은 정보는 짧고 빠르게 지나가고, 또 쉽게 얻다 보니 머릿속에 남는 내용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가 옳은지를 판단하고 생각할 시간도 부족하다. 인상적 이미지를 순식간에 전달하기 때문에 짧은 콘텐츠만 쫓는다면 오랜 시간 집중해서 글을 읽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다소 복잡할지라도 긴 콘텐츠를 소비할 때 사고력이 발달하는데, 이 과정이 점점 사라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문장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정보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거나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문해력 저하는 필연적으로 오독과 오해의 일상화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요즘. 새로운 재미를 주는 숏폼 장점은 활용하되 지식과 아이디어가 축적된 문자 매체와 멀어지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