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JTBC 드라마 <밀회>에서 남모르게 열정을 쏟아낸 숨은 주인공이 있다. 바로 송영민 피아니스트다. 화제를 모은 유아인의 피아노 연기 뒤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노력이 있었다. 이후 높은 인지도를 쌓으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그를 만났다.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지난 삶부터 현재 조금 색다른 음악가의 길을 걷기까지 그의 밑바탕에는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가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곱 살 때 아랫집 친구가 치는 피아노를 듣고 제가 그대로 따라쳤어요. 그때 부모님이 제게 절대음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하셨죠. 피아노 외에 바이올린도 4년 정도 배웠고 플루트, 기타, 성악 등 많은 사교육을 받았어요. 그중 피아노가 유일하게 지겹지 않았어요. 열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께서 피아노가 즐겁다면 러시아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어요. 당시 남자가 무슨 피아노를 치냐는 사회적인 분위기였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밀어줄 것이라는 소신이 확실했어요. 전 부모님 품을 떠나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단 생각에 아무 걱정 없이 유학을 결심했죠.

러시아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처음에 학교 수업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빨래하고, 숙제도 해야 하니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었죠. 지금까지 살면서 러시아 생활보다 더 힘든 시절은 없었어요. 그래도 전 제 입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한국에서 동네 학원 교육만 받다가 러시아에 가니 학교에서 전 학년 통틀어 피아노를 제일 못 쳤어요. 작은 시골학교였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하루에 6~7시간씩 연습해서 다음 학기 시험 때 3등안에 들었어요. 그 후 계속 1등을 했죠. 그러다가 도시에 있는 예카테린부르크 영재음악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중위권이더라고요. 그러나 연습을 거듭해 졸업은 1등으로 했어요.

러시아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다시 독일로 유학을 떠나셨죠. 힘들지 않으셨어요?
보통 클래식 피아노는 열아홉 스무 살이 되면 기량의 70% 이상이 완성돼요. 제가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에 들어갔을 때가 스무살이었어요. 그때 주위 친구들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기사에 소개되며 한창 잘나갔죠. 근데 전 실력이 늘지 않았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늘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저를 제일 힘들게 했던 건 주변 사람들의 말이었어요. 제가 한국가면 인맥, 학연, 지연도 없으니 피아노로 생계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피아노를 그만두겠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독일에서 긴 정체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어느 날, 저희 학교에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 독주회가 열려서 보러 갔어요.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시는 분은 태어나서 처음 봤죠. 그 순간 난 저렇게 될 수 없겠지만, 이 좋은 음악을 그만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연습실에서 살았어요. 이후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까지 밟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유럽 데뷔 무대를 가졌어요.

피아노를 끝까지 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어린이집을 다녔고, 방학이면 아버지가 교사로 잠깐 근무하시던 장애인 특수학교에 놀러갔어요. 그때 부모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레슨비가 어떤 수고를 통해 나오는지 알았죠. 그래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그동안 끊임없는 노력을 하셨어요.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구나 노력은 할 수 있어요. 특히 우리나라에는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달콤한 열매를 가질 수 없어요. 오히려 그에 대한 보상이 달지 못한 경우가 많죠. 그럼에도 노력한 시간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보답으로 돌아와요. 자기가 100을 노력했는데 절반만 돌아왔어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안 했으면 50도 못 받았을 테니까요. 주위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나를 믿고 나아가면 좋겠어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괜찮아, 뭐 어때. 또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연주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선생님과 처음으로 함께 연주한 무대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이시고, 현재 서울대 전임 교수로 계세요. 저같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선생님과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었어요. 부족한 제가 그분의 연주에 폐가 되지 않을까 부담이 컸죠. 하지만 선생님은 ‘우린 선생과 제자가 아니라 음악인 대 음악인으로 만난 것이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좋은 인연을 맺어 선생님과 작업을 계속하고 있죠.

요즘은 연주자 겸 클래식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계시죠.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나요?
올 한 해 스케줄이 벌써 꽉 찼을 정도로 너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최근엔 프로듀싱과 연주를 겸하고 있어요. ‘최인아 책방 콘서트 시즌 3’ 음악 감독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기획, 캐스팅, 선곡, 연주까지 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후로도 계속 맡게 돼서 현재 시즌 7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 외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독주회를 볼 수 있는 ‘N.W.A 영 피아니스트 콘서트 시리즈’, 국내 젊은 아티스트들의 신선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성남 TLI아트센터 제1회 실내악 축제’, 그리고 세라믹 팔레스 홀에서 열리는 ‘송영민 피아니스트와 함께 하는 마티네 콘서트(가제)’를 준비 중이에요. 마티네 콘서트는 7월 쯤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대중들에게 어떻게 어필하고 계시나요?
클래식 음악은 한 곡당 기본 10분이 넘고, 가사도 없어요. 그런 음악을 그저 앉아서 듣기만 하라는 건 너무 불친절한 거예요. 20년 넘게 음악을 한 저도 새로운 곡을 익히려면 책 찾아보며 공부하는데, 일반인들이 모르는 건 당연하죠.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음악을 설명해주는 것이에요. 곡마다 기승전결이 있어 스토리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10분인 곡도 끝까지 들어요. 몰랐던 음악도 설명해주면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고 집중해서 듣게 되거든요. 

앞으로 음악가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음악 프로듀서로서 음대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많도록 새로운 직업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4년 내내 전공 악기만 공부하는데, 그렇게 해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연주자나 선생님 정도에요. 우리 사회에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아요. 클래식 음악을 발전시키고 응용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요. 연주자로서는 나이가 들어도 초심을 잃지 않고 매일 연습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연주를 계속 해도 물론 노쇠하겠죠. 하지만 기술은 낡아져도 삶은 깊어지니까, 음악에 연륜이 묻어나오는 피아니스트가 된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現 최인아 책방콘서트 예술 감독 (2017~2019)
現 N.W.A 영피아니스트 시리즈 예술 감독 (2019)

연주
만 14세에 러시아에서 첫 독주회 (2001)
러시아 벨리츠키 피아노 콩쿠르 3위 (2002)
베를린 국제음악콩쿠르 파이널리스트 (2009)
독일 게반트하우스 메인홀에서 협연, 유럽데뷔 (2010)
그리스 데살로니가 국제 실내악 콩쿠르 3위 (2010)
이태리 페다라 국제콩쿠르 1위 (2011)
예술의 전당(2017, 2018), 금호아트홀(2015) 총 3차례 독주회 전석 매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롯데콘서트홀, 대구 콘서트하우스, 부산문화회관, 강릉아트센터, 
인천문화예술회관, TLI아트센터 등 전국 공연장에서 협연 및 앙상블 연주 다수

참여 작품
JTBC 드라마 <밀회> 주인공 유아인 대역 (2014)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주인공 박정민, 한지민 오리지널 피아니스트 및 OST발매 (2018)

방송
tvN 예능 <선다방>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