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사이즈 모델: 한국 기준 77, 88 사이즈 이상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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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양 님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아닐까 싶은데요.
정확히는 미국의 풀 피겨드 패션 위크(Full Figured Fashion Week)에서 데뷔한 최초의 한국인 플러스 사이즈 런웨이 모델이에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된 건 TV에서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1> 광고를 본 게 계기가 됐어요.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라는 광고 카피에 나는 언제 내 인생에 주인공이었나 싶어 홀린 듯이 모델 지원서를 썼어요. 1차 심사는 합격하고, 2차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그때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즐겁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게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 도전하게 됐죠.
그 뒤 플러스 사이즈 패션 문화 매거진 <66100>을 창간하셨어요. 모델 활동과 잡지 사이에 접점이 없어 보이는데요?
당시 미국에서 플러스 사이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추세였지만, 자비를 들여 쇼를 다니는 실정이었어요. 미국에 가면 비행기 표나 체류비 등으로 약 천만 원 정도를 써야 했는데, 쇼를 서기 위해 금전적으로 들이는 부담이 커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어요. 이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죠. 결국 천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고민하다 플러스 사이즈인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패션 문화 잡지를 창간하게 됐어요.
잡지를 만드실 때 특히 유의하거나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단어를 선택할 때 날씬한 몸을 선망하지 않게끔 신경 썼어요. 또 사이즈 다양성을 비롯해 문화 다양성, 젠더, 성 정체성 등 누구 하나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도록 모든 다양함을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면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추천하거나, 게이 매거진 < DUIRO >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내가 차별받지 않는 만큼 누구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어요. 반면 호모포비아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도 보였죠.
지금은 플러스 사이즈 쇼핑몰 ‘66100’의 대표세요. 쇼핑몰 ‘66100’에서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가슴을 압박하는 와이어가 없어 숨 막히지 않는 브라렛, 골반 압박감을 최소화해 살을 파고들지 않는 팬티가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아이템이에요. 또 어떤 종류든 바지가 잘 팔려요. 저희가 오프라인 쇼룸 ‘오픈 하우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곳에 방문해서 입어보시고 상품을 구매하실 수 있거든요. 바지 입는 걸 엄두도 못 내셨던 분들, 불편해서 입어본 적 없는 분들이 와서 착용감이 매우 편하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런 부분이 많이 뿌듯해요. 그리고 저희는 해외 배송 제품들도 있어요. 사실 국내 제품은 저희가 직접 제작하지 않는 한 도매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대략 비슷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옷을 살 때 선택권을 가지지 못하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란제리, 수영복, 웨딩드레스 등 일부 품목에 한해서 해외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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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살 때 선택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오네요.
예를 들어 바지가 XL, 2XL 라고 해서 샀는데 77도 못 입을 정도로 사이즈가 작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고객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되도록 다양한 사이즈를 마련하려고 해요. 신발은 여성화 기준 270까지, 란제리의 경우 5XL까지 판매해요. 팬티를 여섯 가지 사이즈로 만드는 건 아마 저희 쇼핑몰밖에 없을 거예요. (속옷 전문회사도 안 할 것 같은데요.) 만들면 다 손해인데 안 하죠. 그래서 지금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800종 가까이 되고, 그중 실제 재고가 있고 유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400종이 넘어요. 그 정도 종을 가진 쇼핑몰은 흔치 않죠. 덕분에 창고에 재고가 많아요. (웃음)
플러스 사이즈 모델, 잡지 출간, 쇼핑몰 대표, 영화제 기획 등 바쁜 일정 중에도 시간을 쪼개 강연도 하세요. 계속해서 김지양 님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제가 ‘당신이 어떤 몸이든 아름답다’고 사이즈 다양성을 전하는 게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섭식 장애를 앓고 있는 친구가 ‘어제까지 먹고 토했던 제가 언니 유튜브 영상 보고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됐어요’라고 이야기해요. 그런 얘길 듣고 나선 멈출 수가 없게 됐어요. 내가 멈추면 다 멈춘다고 생각되니까요.
섭식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봐요.
마른 몸매를 찬양하는 획일화된 미의식이 섭식 장애가 퍼지는 토양이 돼요. 부모가 딸에게 먹을 때마다 타박하고,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워서 못 먹게 통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상 체중인데도 ‘살쪘다’고, 혹은 ‘살쪘으니까 더 찌지 마라’고 끊임없이 압박하는 거죠. 이런 환경에 놓인 친구들이 스스로 신체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강박적인 다이어트를 반복하다가 폭식증과 거식증을 앓게 돼요. 머지 않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 연령대에 걸쳐서 섭식 장애가 사회 문제로 떠오를 거예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도 섭식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수는 아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섭식 장애가 가진 가장 위험한 점은 무엇인가요?
거식증은 환자 사망률이 높은 정신 질환이에요. 그런데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학생들 사이에 ‘개말라’, ‘뼈말라’ 등 다소 마른 체형이 아니라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을 동경하고 찬양하는 *프로 아나(Pro-Ana)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위험이 가중되고 있어요. 거식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질병을 앓고 있다는 인식도 없고, 고치려고 하지 않죠.
*프로 아나(Pro-Ana):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의미하는 아노렉시아(Anorexia)의 조합으로 이뤄진 신조어
섭식 장애는 해결 가능한 문제인가요?
환자 본인의 의지로만 섭식 장애를 해결하긴 어려워요. 또 섭식 장애를 완전히 퇴치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섭식 장애를 문제로 인식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 적절한 개입이 이뤄진다면 적어도 발병률을 낮추거나 완치율을 높일 수는 있어요. 그래서 섭식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 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캠퍼스플러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어요. 한때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완벽해요. 나에게 필요한 건 이미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더라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완벽합니다.
경력
LS1426 패션 위크 (LS1426 Fashion Week) (2012)
캐리비안 플러스 사이즈 패션 위크 (CPFW 2012) (2012)
아메리칸어패널 플러스 사이즈 모델 콘테스트 (American Apparel Next Big Thing) 온라인 투표 부문 전 세계 8위 (2010)
풀 피겨드 패션 위크 LA (Full Figured Fashion Week LA) (2010)
강연
KBS <명견만리 플러스> ‘당신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나요?’ (2016)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2014)
외 다수
방송
tvN <리틀빅 히어로> (2018)
온스타일 <바디 액츄얼리> (2017)
수상
2019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