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동심의 세계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말하는 동화 작가 오미경. 그는 동화가 아이들만을 위한 작품이라는 편견을 깨며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의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주 해녀 이야기의 그림책 <물개 할망>을 펴냈다.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오미경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리교육과를 전공했는데, 제가 대학을 졸업했을 땐 임용 고사가 없었어요. 졸업 후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임용 고사가 생겼죠. 발령 대기자는 많은데 모집 인원이 고작 한두 명뿐으로 매우 적어서 오래도록 꿈꿔온 교직의 길을 포기했어요. 이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독서지도사 과정을 밟았는데, 그때 접한 동화에 매력을 느껴서 직접 쓰게 됐어요.
좋은 동화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우선 독자인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어야 하겠죠. 그러면서 감동을 주는 게 좋은 동화 아닐까요? 제가 쓰고 싶은 동화가 그런 것이기도 하고요.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해지는 것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무리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력이 길지 못하겠죠.
동화 작가로서 가장 뿌듯함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장편 동화 <사춘기 가족>이 2012년에 ‘올해의 우수문학도서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어요. 한국도서관협회에서 그해에 나온 도서를 모두 합쳐 분야별로 각 한 권씩만 선정하는 상이었죠.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꾼 것도 아닌 터라 그저 열심히 썼을 뿐인데 큰 상을 받아 무척 기뻤어요. 독자들이 제가 쓴 동화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얘기해줄 때도 뿌듯해요. 책을 잘 읽지 않았었는데 저의 책을 읽고 동화에 재미를 느꼈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읽겠다고 약속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럴 땐 동화 작가가 된 게 정말 보람차고 행복해요.
계속해서 동화를 쓰게 되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더 좋은 동화를 쓰고 싶다는 갈망인 것 같아요. 오래전 아동 문학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하면서,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이 제 대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해요. 제 삶의 모토가
‘성장’이거든요. 더불어, 가족의 응원과 관심도 좋은 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림책 <물개 할망>은 제주어를 그대로 사용하신 점이 인상 깊었어요. 평소 제주어를 잘 알고 계셨나요?
그림책인데도 불구하고 제주어를 쓴 건 제주 해녀의 느낌을 좀 더 생생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 부모님이 오랜 세월 제주도에 사셔서 어릴 적 방학이면 제주도에 가곤 했어요. 그래서 제주어를 구사하진 못해도 아주 친숙하죠. 어휘는 물론 어조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마치 제2의 고향어라고 할까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제주어를 전하고 싶기도 했고요.
동화를 쓰실 때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짜는 것 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요?
두 가지 정도를 말할 수 있겠는데요. 첫 번째로,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싶은 욕심이 커요. 그래서 저학년 동화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살려 쓰는 편이에요. 이미지를 풍부하게 해주고 운율이 있어 읽는 맛을 주거든요. 선조들의 재치와 해학이 스며 있는 속담도 자주 쓰려고 해요. 또, 은유나 상징을 너무 어렵지 않은 범위에서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동화도 엄연히 문학 작품이니까요.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은유나 상징들도 다시 읽으면 하나둘 보이면 좋겠어요.
<물개 할망>을 쓰시며 해녀 체험을 하고자 하셨지만 못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해녀 체험의 목표를 이루셨나요? 새롭게 계획하고 계신 도전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직 이루지 못했어요. 정식으로 해녀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면접을 봤는데 떨어졌거든요.(웃음) <물개 할망>을 쓰면서 해녀에 더욱 매료되어 다시 해녀를 주제로 청소년 소설을 썼고,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동화만 써왔기에 소설은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이 외에도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한번 걷고 싶기도 해요.
책을 써내는 것 이상으로, 강연과 북 토크 등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과 자주 만나시는데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책을 통해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이 주는 특별함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그들의 관심이나 고민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죠. 요즘 아이들을 잘 모르면 과거의 어린이에 머무르게 되고, 독자를 모르는 작품은 외면받기 쉬워요. 그래서 어린이 독자들을 자주 만나려고 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잊지 못할 기억이 있어요. 오래전, 어느 학교에 갔을 때 유난히 제 이야기를 잘 듣던 여학생이 현관까지 따라 나와 연락처를 물어보기에 알려줬어요. 그 뒤로 간간이 문자를 보내오곤 했는데 어느 날 전화로 조심스럽게 제가 사는 곳 근처의 학교에 다녀도 되는지 묻는 거예요.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해 이유를 물어보니 집안 사정이 복잡한 것 같더라고요. 전화로 나눌 만한 내용이 아닌 것 같아 다음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었어요. 하필 전화기를 잃어버려 먼저 연락할 수도 없었죠. 믿을만한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 같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해 두고두고 가슴에 미안함이 남아 있어요.
마지막으로 동화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동화는 어린이로 독자가 한정돼 폭이 좁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절대로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어린이들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함께 사는 존재들이라 어른들보다 더 넓은 세상을 가졌다고 봐요. 동심의 세계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려면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겠죠. 그렇다면 형이나 누나, 언니보다 바로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게 가장 좋은 길일 거예요. 여러분의 밝고 넓은 미래를 응원합니다.
PROFILE
‘어린이동산’에 중편동화
<신발귀신나무>로 당선 (1998)
저서
교환 일기(2005)
사춘기 가족(2012)
직지 원정대(2015)
꿈꾸는 꼬마돼지 욜(2015)
똥 전쟁(2018)
물개 할망(2020) 외 다수
수상
2012 올해의 우수문학도서
아동청소년문상
기자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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