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공존하는 삶을 위해
극지연구소 이원영 선임연구원
2021년 11월 8일
SNS에서 ‘펭귄 박사님’으로 불리는 이원영 연구원은 남극에서 직접 촬영한 펭귄의 모습을 공유하며 남극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그는 매년 한국에 겨울이 찾아오면 남극으로 향한다. 혹독한 날씨에도 야외 캠핑을 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원영 연구원. 오는 12월, 다시 남극으로 떠날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주로 남극과 북극에서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남극의 대표적인 동물인 펭귄과 물범, 그리고 북극의 사향소와 늑대 등을 관찰하고, 이 동물들이 극지에서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연구합니다. 국내에 머물 땐 주로 극지에서 모아온 자료들을 살펴보며 분석하고, 연구 결과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죠.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 매미나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곤충의 눈이 멋지다고 생각했고, 민물 가재가 커다란 앞발을 내미는 모습에 매료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동물을 잡아다 집에서 키우곤 했는데 늘 며칠 지나지 않아 싸늘한 사체로 변하더라고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턴 더 이상 잡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대상을 죽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때 어렴풋이 '죽이는 일 대신 관찰하며 탐구하는 일을 하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남극 땅을 처음 밟으셨을 때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야생의 펭귄을 직접 연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남극에 도착했습니다. 남극 펭귄을 연구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생태학자라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실제로 남극에서 펭귄을 마주했을 땐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고, 궁금증도 더 커졌습니다. ‘펭귄은 왜 이렇게 깊이 잠수할까?’, ‘펭귄은 어떻게 잠을 잘까?’, ‘펭귄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답을 구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고요.
펭귄과 특별히 교감한 순간이 있으신가요?
교감을 나눈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야생 동물과 교감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지만 바위틈에 빠진 턱끈펭귄을 한 번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조금 달랐습니다. 마치 자길 구해준 걸 알고 있다는 듯이 펭귄이 제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뒤돌아갔어요. 확신할 순 없지만 무언가 마음이 통한 것 같았습니다.
펭귄 서식지에서 캠핑을 하시며 야외 조사를 진행할 때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셨나요?
기상 상황이 갑자기 나빠져 텐트 안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못했던 적도 있어요. 흔들리는 텐트 속에 웅크리고 누워서 마음을 졸였죠. 스마트폰과 노트북도 있었지만 막상 배터리 충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다 무용지물이더라고요. 책을 읽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우주를 가는 시대가 됐더라도 남극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어요. 겸허히 기다리는 수밖에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제가 아니면 밝혀지지 않았을 동물의 비밀을 알아냈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젠투펭귄에 카메라를 달아 먼바다에서도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걸 밝혀내 논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먼저 질문을 던지고 행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극에서 연구 활동을 진행하며 과학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남극은 과학 연구 목적의 개발만 가능하도록 세계가 약속한 보호 구역이기에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으로, 남극 생태에 개입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물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동물 윤리를 지키고, 궁극적으로 동물 보호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기후 위기로 남극의 환경과 생태계가 위협에 처해있습니다. 2014년부터 남극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그 변화를 느끼고 계신가요?
펭귄 번식지 인근에서 빙하가 깨져 나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빙하 경계선이 해마다 수십 미터씩 뒤로 후퇴하는 것도 보고 있죠. 그런 변화가 눈에 보일 때마다 남극 생태계에 위기가 왔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펭귄의 귀여운 외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관심 이상으로 펭귄을, 남극과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펭귄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대신,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생명체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펭귄은 인간이 귀여워하면 눈웃음을 짓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거든요. 남극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로서 꽤 오랜 세월을 극지 환경에 적응해온 동물입니다. 그런 동물이 최근 인간이 만들어낸 온실가스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해있어요. 책임감을 느끼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남극에 가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국내에서 어떤 연구를 진행하셨나요?
비록 저는 남극에 가지 못했지만, 함께 연구하는 학생이 월동대원으로 남극에 갔습니다. 그 학생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현장 조사를 진행했어요. 동물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위성으로 수신된 기록을 한국에서 분석했습니다. 올해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남극에서 연구를 하고 돌아올 계획입니다. 웨델물범에 해양 관측장비를 부착하고 물속 환경을 정확히 기록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과학자와 연구원을 꿈꾸는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대단한 발견을 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세상을 알아내는 것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뿌듯하게 일할 수 있을 거예요.
PROFILE
경력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일보 <이원영의 펭귄 뉴스>
팟캐스트 <이원영의 새, 동물, 생태 이야기>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원영의 남극일기>
저서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 (2020)
펭귄의 여름 (2019)
물속을 나는 새 (2018)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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