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인생 멘토

세상을 향한 따뜻한 믿음의 시선 박지현 다큐멘터리 디렉터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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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따뜻한 믿음의 시선
박지현 다큐멘터리 디렉터
 
사랑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 ‘어쩜 저렇게 사랑이 많을까’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15년간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온 박지현 다큐멘터리 디렉터가 그랬다. 그의 시선으로 담은 세상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서로를 믿고, 다시 일어서도 된다는 희망과 힘을 준다. 사람을 믿는 사랑이 결국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꾸고, 우릴 구할 거라 믿는다. 직업의식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닮아도 좋을 멘토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디렉터’를 생소하게 느낄 분들을 위해 직접 소개해주시겠어요?
사실은 없는 직업이라고 할까요. (웃음) 새롭게 만든 명칭이거든요. 제가 하는 일은 광고, 방송 등 여러 플랫폼에 다큐멘터리적 접근이 필요할 때 기획·구성·촬영·연출·인터뷰 등 역할을 해요.

영화 연출을 전공하신 뒤에 사람과 부딪히는 게 어려워서 뮤직비디오 작가로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지금은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내향적 성격은 바뀌셨나요?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 아마 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상상도 못했죠. <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 3일)>이 시작이었는데요. ‘한 번만 해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눈앞에 닥치고 책임이 생기니 카메라를 들고 나서야만 한 거예요. 막상 마주하니까 가능하다는 걸 그때 확인했어요. ‘카메라’라는 도구가 다리 역할을 했고, 자신감 같은 거였어요. 그렇게 소통이 가능한 걸 확인한 뒤에는 ‘이 감각을 이어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놓고 싶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신다고요. 다큐멘터리 디렉터를 천직이라고 느끼시나요?
네, 정말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 말을 듣는 건 좀 하는 편이고, 그게 어렵지 않거든요. 마음이 열리는 순간에 매력을 느껴요. 문답 과정과 대화를 통해서 답하는 분 스스로도 몰랐던 삶의 의미와 이유를 함께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럴 땐 제가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감정과 교감을 느끼는데요. 항상 그 충족감과 행복감이 너무 커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터뷰를 진행하셨는데도 항상 질문이 생기시는 거잖아요. 특히 <다큐 3일>에는 사람을 대하는 다정한 시선이 있다고 느꼈어요. 어떤 태도로 관찰하시는지, 호기심과 궁금증은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사랑’인 것 같아요. 사랑. (웃음) 거짓말이 아니라요. 특히 <다큐 3일> 현장에는 늘 다짐을 하고 갔어요. “내일도 누굴 만나든 사랑하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궁금한 게 안 생길 수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한 일상, ‘저 사람이 입은 옷 중 가장 오래된 건 무엇일까, 저 물건이 저기에 있는 이유는 뭘까’ 등 이런 호기심의 시작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 사진 출처_KBS2 교양 <다큐멘터리 3일>

<다큐 3일>은 섭외부터 모든 게 현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이었을 텐데요. 지금은 사전에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실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다큐 3일>은 그 사람의 삶에 제가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생생한 일상의 순간을 담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호기심과 질문을 풀었죠. 지금은 주어진 시간 동안 인터뷰이 삶을 조명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자료를 찾다 보면 키워드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키워드를 찾는 것, 키워드의 이유와 그걸 돌아보고 잘 정리하는 작업으로 바뀐 것 같아요.

<다큐 3일> 현장에서 과거 인터뷰이를 다시 마주친 경우도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서울 지하철 2호선 편을 찍었을 때 에피소드인데요. 어떤 승객분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타셨는데 지방에서 올라와 아산병원으로 병문안을 가신다고 하셨어요. 내려가시는 길에 다시 지하철에서 뵐 수 있으면 뵙자고 연락처를 받았지만 결국 그날은 못 만났어요. 몇 년 뒤 통영 여객선 편을 찍었는데요. 여객선을 타고 승객을 따라 무작정 내리는 콘셉트였어요. 그러다 배가 끊길 수도 있으니 제작진이 섬마다 이장님을 섭외해두셨더라고요. 제가 어떤 섬에 내려서 그곳 이장님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이미 저장돼있는 거예요. 멀리서 이장님이 오시는데 얼굴을 보니 2호선에서 뵀던 분이었죠. 이렇게 또 인연이 닿는구나 싶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도시 속 굉장히 삭막한 지하철에서 만났던 분을 통영의 한 섬에서 이장님으로 다시 만났으니까요.

새로운 에피소드도 궁금해요.
너무 많지만 최근 만난 튀르키예 지진 구조대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재난 현장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린 사람을 만나는 게 흔치 않잖아요. 그분들을 통해 인간의 강인함과 희망을 다시 엿봤어요. 참사 현장에서도 무자비해지지 않고 다정할 줄 알고, 타인에게 양보하고, 자신을 도우러 온 사람에게 감사함을 잃지 않는 것. 그걸 확인함으로써 큰 희망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 생생한 순간을 전달받은 게 너무 감사했어요.

<다큐 3일> 주인공이 되신다면 어떤 3일을 담고 싶으세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네요. 하루에 세 명, 네 명까지도 인터뷰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장소에서, 한 카메라 앞에 서시는 다양한 분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를 통해서 같은 질문에도 여러 답이 나오는 재밌는 장면을 조금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을 대하는 제 모습도 나올 거고요.
 

모든 인터뷰이에게 던지는 공통 질문이 있으신가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꼭 물어보는 편이에요.

직접 답해주신다면요?
전 행복을 자주 느끼는 편인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참 괜찮은 태도》를 출간하고 첫 반응을 접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한 후기를 봤는데 책을 읽고 ‘사람을 믿어도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대요. 과한 표현일 수 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몇 년 동안 붙잡고 책을 썼던 이유가 사람을 믿어도 되고, 각각의 삶은 의미가 있고, 그대로 빛난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책을 통해서 그게 닿은 것 같더라고요.

가장 힘드셨던 때는 언제인가요?
<다큐 3일>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위협을 당한 적이 있는데요. 혼자서 카메라를 든 채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고,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팀원이 와서 도와주고 촬영을 중단했죠. 3일 일정 중 첫날이었는데 일을 멈추고 바로 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죠. 위협을 겪어서라기보다, 제 가장 큰 장점은 사람에게 겁 없이 다가가는 거였는데 혹시 트라우마가 생길까 두렵더라고요. 제주도에서 그런 저를 꺼내준 순간이 있어요. 세화 바닷가에 혼자 오래 앉아있었는데 옆에서 90대 할머니도 한참 바다를 바라보시더라고요. 그 할머니가 너무 궁금하고 말을 걸고 싶은 거예요. (웃음) 그래서 왜 바다를 보고 계시냐고 여쭤봤죠.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데 바다는 매일 봐도 보고 싶대요. 그래서 늘 그렇게 나오신대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랑이 한순간에 쉽게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힘을 얻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사랑이 정말 많으신 것 같아요.
사실 그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워요. 최근에 직장인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요. 끝나고 ‘일하면서 상처받은 적 없냐, 사람을 믿어도 되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상처와 배신을 많이 겪었다고 당당하게 말했죠.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 때문에 누군가를 믿고 싶은 귀한 마음을 놓는 게 너무 아까워서 지키기로 했다고요. 배반당할지언정 상대를 미워하고 복수를 다짐하기보다 한 번 더 마음을 열고 믿어보는 게 저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답했어요.

계속 사람을 믿게 되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예를 들어 병원이라면 저는 수술을 받는 환자·보호자·간호사·의사 모두 만날 수 있어요. 각각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다 듣게 돼요. 일을 하면서 한 공간, 한 상황에서 서로를 다르게 이해하고 오해하는 게 참 많다고 느꼈죠. 이 직업을 통해 행동의 배경을 살펴보는 태도를 얻었어요. 누군가가 저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이유를 생각해보니 미워하는 것까지 가지는 않더라고요. 상황이 안타까운 거죠.
 

지난해 도서 《참 괜찮은 태도》를 펴내셨어요. ‘참 괜찮은 태도’란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이해한 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걸 시작으로, 타인도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본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타인을 사랑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팁 같은 게 있을까요?
나만 결핍이 있는 게 아니고, 나만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게 아니에요. 타인과 다른 모습을 비교하면 자신을 마주하기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진짜 모습을 보이는 게 두려워지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결핍과 불행이 있어요. 모두가 그렇고, 나도 다르지 않으니 괜찮아요.

사실 《참 괜찮은 태도》를 읽다가 자주 울었어요. 촬영 현장에서 우신 적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하셨을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냥 울어요. 일보다 사람을 만나서 대화한다는 마음이 더 커요. 그렇게 생각하면 감출 이유가 없어지더라고요. 당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있고, 어떤 감정이 든다는 걸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서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다큐멘터리 관점을 가진 분도 많고, 저도 그래야 할 때가 있지만 직업관은 이런 쪽이라고 생각해요.

책에 좋은 문구를 많이 인용하셨더라고요. 《캠퍼스플러스》 대학생 독자에게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요?
최애 책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인데요. 작가가 이혼과 알코올 중독 등 많은 경험을 한 뒤 인생 말기에 쓴 소설이에요. 그래서인지 어떤 영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해요. 미국의 평범한 소시민이 결핍·상처·불행을 겪으며 나아가는 삶에 대해 정직하고 담담하게 적었어요. 결국 사람 사이 소통을 통해서 희망을 보여주는 내용인데요. 깊은 위로와 삶에 대한 성찰을 느끼실 거예요.

20대 때 읽으셨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런 마음은 아니었을 것 같긴 해요. (웃음) 영적인 힘이 느껴진다는 감정까진 가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저도 많은 슬픔을 겪고 상처를 받았기에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20대 때보다 넓어진 것 같아요.

<다큐 3일> 이후 뉴욕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셨다고요. 언젠가 그때 작업물을 만날 볼 수 있을까요?
뉴욕 퀸스의 잭슨하이츠(Jackson Heights)라는 곳에서 촬영했는데요. 다양한 이민자가 첫 정착을 시작하는 곳인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유, 그들이 희생하고 포기한 것, 궁극적으로 바라는 행복한 삶, 그들의 자녀는 현재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 많은 걸 담은 다큐멘터리에요. 작년부터 해외 여러 영화제에 출품했고, 상영했던 적도 있어요. 아직은 계속 영화제에 도전하는 중이에요. 빠르면 내년에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으신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따뜻함을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살아가는 데 실질적 보탬이 되지 않는 말을 혼자 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예상하기 어렵고, 점점 더 타인과 닿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외로운 길이더라도 어떻게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더 굳게 먹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 늘 새롭고 녹슬지 않기를 바라고요. 아이 같은 눈으로, 늘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PROFILE

방송
KBS2 교양 <다큐멘터리 3일> VJ
KBS2 교양 <길 위의 아버지들> 연출
MBC 예능 <무한도전 - 토토가> 다큐 VJ
MBC 예능 <놀면 뭐하니? - 대한민국 라이브> 다큐 VJ
tvN 예능 <어쩌다 사장1, 2> 다큐 VJ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다큐 디렉터

저서
《참 괜찮은 태도》 (2022)

다큐멘터리
<더 베러 라이프> 연출

MV
SG워너비, 휘성, 씨야 등 MV 시나리오 작업

광고
한화금융 < LIFE MEETS LIFE > 광고캠페인 총괄디렉터
KIA THE K9 < MASTER'S WAY > 광고캠페인 기획작가

기타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예술상 부문 후보
CREDIT
 김혜정 기자
사진 박지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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