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 ‘비봉이’
남방큰돌고래 삶으로 보는 동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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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한 곳에 갇혀 살다가 비로소 집으로 돌아간 이가 있다. 영화 <올드보이> 이야기 같지만 실화다. 제주 앞바다에 살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는 2005년 포획된 뒤 5살 때부터 수족관에서 살다가 지난 10월 16일 아침, 바다의 품으로 돌아갔다. 자연에서 삶을 지속할 남방큰돌고래를 위해 생태법인을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남방큰돌고래는 바다로 돌아갔지만
비봉이는 2005년 4월, 제주 비양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활동 중 포획됐다. 본래 목적이 아닌 해양생물을 혼획하면 방생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 그렇게 비봉이는 퍼시픽리솜(구 퍼시픽랜드)에 인도돼 돌고래쇼를 하며 전시물로 살아야 했다. 올해 23살로 추정하니 5살 때부터 무려 17년을 수족관에 갇혀 살았다. 2013년 '제돌이' 방류를 시작으로 올해 비봉이까지 바다로 돌아가며 국내 수족관에 남은 남방큰돌고래는 없다.
제주 앞바다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2012년 국내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됐으며 세계적으로도 개체 수가 많지 않아 멸종 ‘준위협종’으로 분류한다. 올여름 방영했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은 고래에 큰 애정을 가졌고, 남방큰돌고래를 작품 주요 소재로 활용했다. 드라마는 돌고래가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 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의도와 달랐다. 물론 남방큰돌고래를 지키자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지만 직접 보겠다는 사람이 많아져 피해가 늘었다. 제트보트를 타고 돌고래 무리를 쫓는 모습도 목격됐다. 보호를 위한 관심 호소가 되려 상처를 입힌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자연도 소송할 권리를
바다로 돌아가도 끝없이 위협을 겪는 남방큰돌고래는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을까. 멸종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동물을 위해 ‘생태법인(Eco Legal Person)’을 지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닌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생태법인 기본 가치는 자연은 ‘물건’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해외 생태법인 사례로 아르헨티나 침팬지 세실리아(Cécilia), 뉴질랜드 황거누이(Whanganui)강, 미국 이리(Erie)호수가 대표적이다. 특히 세실리아는 2016년 법인격을 인정받았고 인신보호영장 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동물원을 벗어나 숲으로 돌아갔다. 이외에도 아마존 열대우림 등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이 법적 권리를 인정받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 초부터 남방큰돌고래를 대상으로 한 논의를 시작했다. 비봉이 방류 이후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생태법인 제정에 지지 의견을 표했다. 이전까지 논의가 전혀 없던 건 아니다. 2003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도롱뇽을 원고로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소송대리인은 비대위 대표 및 실무자 총 3명으로 ‘도롱뇽의 친구들’이었다. 2019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추가 설치를 반대하며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가 산양을 원고로 제기한 소송도 있다. 각 재판부는 자연물을 원고로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 기본 요건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각하했다. 하지만 생태법인을 부여하면 자연물도 소송이 가능하다.
생명은 호기심 아닌 공감의 대상
이제 전시 중인 남방큰돌고래는 없지만 여전히 국내 수족관에 고래 21마리가 남아있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지난 8월, 비봉이 방류 계획을 밝히며 남은 고래류를 모두 방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내 방류가 어려운 종은 캐나다, 노르웨이 등 해외 기관과 협의해 진행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국내 해양에 고래 바다쉼터 조성을 위한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2년째 기획재정부에 가로막혔다.
고래류뿐 아니라 동물권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관련 법이 개정됐다. 11월 24일,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동물원수족관법>은 지금까지 등록제로 이어지던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허가제 전환과 전문검사관제도 도입을 중심으로 한다. 또한 고래 등 전시부적합종 전시와 스트레스 유발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야생생물법>은 동물원이나 수족관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한다. 야생동물카페, 이동 동물원 등이 이에 해당하고, 방치가 우려될 경우 정부가 보호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지며 국내 동물권 수준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동물 전시 시설을 없애자고 하면 꼭 돌아오는 답이 있다. ‘교육을 위해서 필요하지 않을까?’ 동물원과 수족관을 통해 새로운 종을 알아간다는 거다. ‘요즘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잘 나오는데’라는 답을 전하고 싶다. 실제로 가지 못하는 곳, 만나지 못하는 대상을 최첨단 장비와 훌륭한 구성으로 담은 콘텐츠가 많다. 생명체를 한 곳에 몰아넣고 구경거리로 삼는 게 교육에 좋을 리 없다. 대상이 무엇이든 궁금한 건 어떻게든 직접 보고 만져야 한다는 접근법부터 고쳐야 한다. 호기심 해소와 흥미 충족을 위해서라면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다뤄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도 있다. 작은 호기심보다 생명감수성을 높이는 게 우선이다.
자유는 인간만의 권리가 아니며 인간이 내키는 대로 부여할 수 있는 권한도 아니다. 생명체라면 마땅히 가지는 것으로, 다른 존재가 제한할 수 없다. 모든 환경과 기술을 누리는 인간으로서 비인간 동물과 자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땅과 바다에 숨 쉬는 존재가 우리뿐이 아님을 자각하며 공생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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