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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좋은 냄새 안 나요? 향기 나는 취향, 향수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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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좋은 냄새 안 나요?
향기 나는 취향, 향수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며 자기표현 방식이 더욱 세분화하고 있다. 이제는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후각까지 그 대상이다. ‘좋은 냄새’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던 향수가 2~30대에게 자기표현 수단으로 인기다. 점점 더 향기로워지는 MZ세대 취향을 소개한다.

 

인류 역사와 함께하다

향수 역사는 언제 시작됐을까? 보통 ‘유럽 귀족이 불쾌한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만들었다’라고 생각할 테지만 실제 기원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향수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중해 키프로스(Cyprus) 섬에서 발견한 고대 향수 공장 유적은 최소 4,000년 전 흔적으로 추정한다. 고대에는 ‘인센스’와 유사한 고체 향료를 더 자주 쓴 걸로 보인다. 종교의식에서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제(祭)를 지낼 때 향을 피웠기 때문. 오늘날에도 제사를 지낼 때 으레 향을 피우곤 하니 인류 역사와 함께한 문화임이 실감 난다.

종교적 목적이 아닌 지금처럼 ‘기분 좋은 냄새’를 위한 향수도 고대부터 존재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찾아보자. 신라, 고려 시대에 향낭(香囊)을 가지고 다니며 서로 자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에센셜 오일과 비슷한 향유(香油)는 성별에 관계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근대 발명품으로 여겨지던 향수는 형태만 달랐을 뿐 오랫동안 일상에 함께해 왔다.

 
▶ 사진 출처_‘샤넬(Chanel)’ 공식 홈페이지

향수를 입는 시대

지금 우리가 쓰는 제품처럼 알코올을 더한 향수는 14세기 말 유럽에서 개발했다. 원료 향을 오래 보존하고 유리병에 담아 편리한 사용이 가능해진 건 16세기부터다. 특히 17세기 말 프랑스 절대 왕정을 이끈 루이 14세가 향수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열악한 위생 탓에 심각했던 악취를 가리기 위해 자주 사용했다고. 우리가 향수를 ‘프랑스 귀족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 가지 꽃향기가 대부분이었던 향수는 20세기 초부터 ‘다른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여러 노트(notes)로 구분해 다양한 향료를 담은 것도 이때부터다. 이런 ‘새로운 향’에 대한 일화로 빠트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중문화를 변화시킨 인물로 손꼽히는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다. 그가 1960년 잡지 《마리끌레르》 인터뷰에서 언급한 “샤넬 넘버 5(Chanel No.5)만 입고 잔다”라는 말은 어록으로 거론할 정도다. 이 한마디로 샤넬 넘버 5는 향수의 아이콘이 됐다. 다양한 향료를 결합한 최초의 제품으로 ‘현대 향수의 시작’이라고 평가받으며 1921년 첫 출시 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요즘 향수는 일반적으로 베이스, 미들, 탑 노트로 구성한다. 우선 가장 오래 지속되는 베이스노트가 깔리고, 그 위에 얹혀 중간 정도 남는 미들노트는 향수의 ‘심장’이라는 뜻으로 하트노트(heart notes)라고도 불린다. 뿌린 직후 맡게 되는 향은 탑노트라고 한다. 각 노트에도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원료를 조합한다. 조향사 전문성이 강화되고 제품이 다양해지면서 향수 시장은 더욱 커졌다.

최근 몇 년간 ‘니치 향수’ 인기가 높아졌다. 니치(niche)는 ‘틈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nicchia’에서 유래한 말이다. 니치 향수는 원래 소수 고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프리미엄 제품이었다. 지금은 패션 브랜드가 아닌 향수 전문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향수를 칭하는 말에 가깝다.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 바이레도(BYREDO), 크리드(Creed) 등이 대표 브랜드인데 고급 향수에 속하기 때문에 가격은 비싼 편이다. 100mL 기준 20만 원대 이상이 대부분이며 40만 원 넘게 치솟기도 한다.

 
▶ 사진 출처_‘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 ‘바이레도(BYREDO)’, ‘크리드(Creed Boutique)’ 공식 홈페이지

립스틱 대신 ‘향수’ 효과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니치 향수 소비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19년 6,000억 원 규모에서 2022년 7,500억 원 대로 커졌다. 이 중 니치 향수가 약 90% 비중을 차지한다고. 향수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중이다. 글로벌 데이터 수집 및 시장조사 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는 2021년부터 전 세계 고급 향수 시장이 매년 8%씩 성장 중이라고 전했다.

불경기 속에서도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향수를 ‘나를 위한 작은 사치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나쁜 경제 상황과 달리 립스틱 같은 저가 화장품 매출이 증가했는데, 이를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고 불렀다. 무리가 되지 않는 작은 사치품을 통해 만족감을 높이는 소비 현상이다.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 검색 데이터를 분석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패턴(Pattern)의 분석가 달린 해치(Dallin Hatch)는 최근 향수 소비 양상이 립스틱 효과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경기 속에서 선택하는 새로운 사치품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패턴은 간편하게 바르는 형태의 롤러 볼 향수 소비가 전년 대비 207% 증가했다고 밝혔다. 비교적 저렴한 향수 샘플은 183%, 바디미스트 등 제품군도 30% 성장했다고. 묵직한 유리병에 담긴 고가 제품뿐 아니라 가볍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까지 종류가 다양해졌다. 선택의 범주가 넓어진 만큼 앞으로 향수 시장은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작은 사치품, ‘스몰 럭셔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화장품이 됐다.


MZ의 향기 나는 취향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니치 향수 구매자 중 80%가 MZ세대로 불리는 2~30대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자기표현과 취향을 중시하는 계층이다. 악취를 가리고자 했던 과거 쓰임과 달리 지금은 좋은 향으로 나를 표현하는 게 선택의 이유다. 향수를 통해서 취향과 개성을 알 수 있기 때문.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숨은 제품을 사용한다면 ‘좋은 안목을 가졌다’고 호평받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직접 조향해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하는 향수를 만드는 서비스도 인기다.

커스텀 제품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향이 아닌 ‘소수’라는 의미에 집중한 니치 향수를 원한다면 관련 편집숍을 찾아도 좋다.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해 ‘쇼핑의 성지’로 불리는 마레 지구 내 향수 편집숍 리퀴드 퍼퓸 바(Liquides Perfume Bar)가 지난해 한국에 진출했다. 이외에도 여러 브랜드를 취급하는 향수 편집숍이 늘어나는 중이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브랜드 제품을 소개하고 시향도 가능하니 내 개성을 담은 향수를 원하거나 큐레이션이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이처럼 향수는 단순 사치품이 아닌 패션의 일부로 관심 받고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을 넘어 나를 가꾸는 시대인 것. 이런 흐름이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할 테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원칙이나 유행은 아니다. 취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쫓는 유행은 낡은 관념이 된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더 개성과 취향을 존중할 거다. 수많은 ‘취향템’ 속에서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걸 찾으면 그만이다.
CREDIT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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