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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의 힙한 유혹 힙트래디션(Hip Tradition)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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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의 힙한 유혹
힙트래디션(Hip Tradition)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 등 여러 아이돌이 전통 한복을 리폼한 의상을 착용하거나 국악기 연주를 넣어 편곡하는 등 전통문화를 활용한 콘셉트를 선보인다. 뉴트로 열풍으로 과거를 재해석해 소비하는 게 익숙한 Z세대는 요즘 ‘옛것’의 매력에 빠졌다.

 
▶ 사진 출처_‘한국문화재재단’ 공식 홈페이지

Z세대가 재해석한 전통

개성 넘치고 유행을 잘 따른다는 의미를 가진 ‘힙(Hip)하다’는 ‘트렌디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사용했다. 주로 최신 유행에 따라붙던 ‘힙’을 ‘레트로’에 적용한 지는 오래됐지만 Z세대에게는 20~30년 전 복고만 힙한 게 아니다. 새로운 물결 속에서도 클래식은 그 빛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의 ‘Oldies but Goodies’를 시작으로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Old but New’를 넘어섰다. 이제 전통에 Z세대 특유의 힙한 감성을 입혀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힙트래디션(Hip Tradition) 문화로 넘어가는 중이다.

힙트래디션(Hip Tradition)은 힙(Hip)과 전통(Tradition)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를 합친 신조어다. 우리 고유의 미감이 담긴 문화재나 이러한 모티프를 적용한 상품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끄는 현상을 의미한다. 할머니 세대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을 뜻하는 ‘할매니얼’, 궁궐 문화 체험을 위해 치열하게 티켓팅하는 ‘궁케팅’도 힙트래디션 일종이다. 전통에 색다른 색채를 입힌 문화가 트렌드 대명사로 변모하면서 Z세대는 ‘국뽕이 차오르는’ 감성을 반겼다.

 
▶ 사진 출처_‘국립박물관문화재 뮤지엄샵’ 공식 홈페이지

전통문화 하나 획득했네

57초, 58초, 59초... 00초! 사이트 서버 시간을 확인하며 치열하게 예매하는 티켓팅. 1초라도 망설였다가는 ‘포도알’을 모두 수확한 텅 빈 자리만 보인다. 주로 공연이나 경기를 보기 위해 티켓 전쟁을 벌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약과 같은 전통 먹거리뿐 아니라 깊은 밤 경복궁을 탐방하는 ‘별빛야행’이나 왕이 먹던 궁중다과를 즐기는 ‘생과방 다과’ 등 궁궐 체험 프로그램도 티켓팅에 성공해야만 경험할 수 있다. 대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전 회차 입장권이 매진된다. 생과방 다과는 문화재청이 지난 2016년부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 최근 SNS를 통해 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고.

또 다른 Z세대 ‘핫 플레이스’는 전통시장이다. 시장 곳곳에 2030 소비자가 가득하고, 인증 사진도 넘쳐난다. 로컬의 매력을 잘 아는 청년이 하나둘씩 가게를 열며 심리적 장벽을 낮춘 덕분이다. 이들의 전통시장 방문 움직임은 신용카드사 통계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가 분석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각각 1~4월 동안의 매출지수 추이 결과 전통시장을 찾는 Z세대가 5년 만에 10배나 늘었다고 한다. 백종원 대표가 직접 시장 활성화 사업에 참여해 화제였던 충남 예산시장에 젊은 세대 방문 증가율은 무려 934%였으며, 강릉 중앙시장 전통 디저트 매출은 60%나 급증했다.

힙트래디션 계보는 식문화뿐 아니라 굿즈까지 번졌다. 특히 신비한 이미지를 담은 불교 조각품 ‘반가사유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출시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매력은 다소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문화재를 디자인 오브제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실제 반가사유상을 1/8 크기로 줄였으며,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컬러를 입혔다. 과거 청동, 구리색 미니어처를 판매했었으나 당시에는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2020년 처음으로 다양한 색상의 미니어처를 선보인 후 힙하면서도 현대적 느낌이 드는 굿즈로 큰 호응을 얻었다. 개당 4만 9,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뮤지엄샵 매장과 온라인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간다. 이 외에도 나전칠기 속 자개로 무늬를 더한 작은 상 형태의 ‘자개소반 무선충전기’를 비롯해 고려청자 무선이어폰 케이스, 나전칠기 스마트톡, 조각보·자수·색동 등 규방 공예를 모티프 삼은 테이블 매트와 코스터 등 다양한 전통문화 굿즈를 일상생활 속 상품으로 출시하는 중이다.

 
▶ 사진 출처_‘한국문화재재단’ 공식 인스타그램 @kchf_official

진부한 전통문화가 현대의 ‘힙’으로

힙트래디션 특징은 이질적 요소를 합쳐 새로움을 창출하는 ‘크로스오버’다. 전통문화가 잊혀져 가는 현실이기에 무형문화재도 계승자를 찾지 못해 하나둘씩 맥이 끊겼다. 그러나 최근 전통문화 유행에 무형문화기술도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이수자이자 옻칠 공예가이자인 안소라는 악기 제작자와 함께 특별한 기타를 만들었다. 나무나 금속을 활용해서 일렉트릭 기타를 만든 후 그 위에 옻칠, 나전 작업을 통해 전통적이면서 현대적 악기를 탄생시킨 것.

퓨전국악그룹 이날치는 지난 2020년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를 통해 국악, EDM 비트, 현대무용을 컬래버레이션한 ‘범 내려온다’를 선보였다. 현대적 감각으로 판소리를 재해석한 노래는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힙하게 누릴 수 있다면 전통문화 자체를 배척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Z세대가 한국적인 것에 열광하는 현상은 단순히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한 게 아니다. 많은 전문가는 한국문화를 인식하는 범위와 개념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옛날에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위기를 극복하며 ‘한민족’임을 확인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게 중요한 가치였다. 우리 문화를 알릴 때도 한국에 뿌리를 둔 한복, 김치, 비빔밥 위주로 홍보했다. 하지만 Z세대는 국경을 넘어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하는 환경에 익숙하다. 그들에게 전통문화는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유물이 아니라 현대적 감성을 더한 것까지 포함한다. ‘K-마카롱’처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프랑스 디저트를 한국 문화 범주에 속한다고 여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즉 역사적 뿌리가 없거나 전통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않더라도 한국 고유의 특색이 드러나는 요소를 가미했다면 이 역시 ‘한국 문화’로 여기는 것.

전통문화에 대한 Z세대의 관심을 그저 지나가는 유행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단순히 상품과 문화를 소비하는 게 아닌 자신만의 의미나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행동으로서 망설임 없이 소비한다. 현상을 넘어 원인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접점을 만들어 간다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다. 한류, K-POP, K-컬처 등으로 변주된 흐름 속에서 전통문화가 얼마나 더 잠재력을 발휘할지 기대해 본다.
CREDIT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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