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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는 곳 대한민국 아닌 ‘서울민국’일지도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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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는 곳
대한민국 아닌 ‘서울민국’일지도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오랜 속담에서도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수도 위주로 정치와 사회를 구성했을 거다. 하지만 하루 안에 전국을 누빌 수 있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서울로만 향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게 서울 위주로 돌아가는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민국’일지도 모른다.

 

로켓배송, 전국배송은 아닙니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쿠팡의 로켓배송 가능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화제였다. 이유는 바로 인구소멸 위험지역 지도와 정반대로 일치하기 때문.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당일배송·새벽배송은 도시, 그중에서도 대도시만의 특권이다. 해당 지역에 사는 이는 이런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얼마나 많은 게 서울에 집중됐는지, 서울 외 지역은 어떤 결핍을 겪는지 깨닫지 못하고 산다.

서울민국 위력은 단순히 돈을 내고 누리는 서비스에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중대한 재난 소식에서조차 속도 차이가 난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폭우가 내렸거나 큰 화재가 발생할 경우 실시간 보도를 접하기 어렵다. SNS를 통해 전하는 다급한 소식이 아니면 저녁 뉴스나 다음날 단신으로만 듣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방의 인프라 부족은 말하기 입 아플 정도다. 서울민국에서 모든 걸 편하게 누리는 사이, 편리한 서비스는 물론 안전과 의료조차 보장받기 어려워 ‘강제 서울행’을 택하는 이도 존재한다. KBS1 교양 <다큐인사이트>는 ‘하드코어 서울’ 시리즈를 통해 수서역, 삼성서울병원, 대치동에서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병원 진료를 위해 하루의 반을 이동시간으로 소요하면서까지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니, 반드시 상경해야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수도권을 조금만 벗어나도 소아과 전문의 진료, 암 전문 병동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3년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약 87%, 전체 취업자의 5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고. 교육 인프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기준 전국 대학교 수는 335개인데, 그중 115곳이 서울·인천·경기 소재다.


서울살이 자체가 스펙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수도권 인구는 약 2,600만 명. 전체 인구가 약 5,100만이니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빽빽하게 몰려 사는 셈이다. 서울 인구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경기도, 인천광역시 등 근교 인구는 늘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많아지면 각종 서비스가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어난다. 반대로 사람이 줄면 일할 곳도 사라진다. 때문에 지방 청년의 취업 고민은 한층 더 복잡하다. 집 근처에서 직장을 구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부족하기에 상경할 수밖에 없다. IT직군 등 특정 업계가 한 지역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역시나 수도권 내에 존재한다. 아직 직장을 잡기 전이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로 향하기도 한다. ‘인서울’ 대학을 바라던 수험생 때와 마찬가지로 공부와 접근성을 위해서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가족과 떨어져 부담스러운 주거비를 감당하는 서울살이를 시작하는 것. 이런 추가비용이 발생하니 ‘서울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스펙’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은 유일한 답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혁신도시는 혁신 실패?

서울민국이라고 불리는 상황을 정부가 방관하는 건 아니다. 2007년부터 시작한 혁신도시 개발을 통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며 대학·연구·산업·지방자치단체 협력을 꾀했다. 2012년 공식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에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구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영향력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을 오가는 교통편이 더욱 편리해지면서 서울생활권, 수도권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대부분 지자체가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청년 유입을 목표로 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대기업 등 일자리 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니 창업을 위주로 지원하는 추세다. 창업 교육·지원금 지급·주거비 지원 등을 통해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외에도 단기간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한 지자체도 많다. 충청북도 충주시, 경상남도 창원시 등 ‘시골’이 아닌 비교적 도시로 여겨지는 곳에서도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청년 귀촌을 유도한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경험한 뒤 귀촌을 결심한 청년이 이주 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도 마련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일부 이야기일 뿐, 눈에 띄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집중을 넘어 포화상태에 다다른 서울을 분산시킬 방법은 없는 걸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

수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서울민국 오명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내놔도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은 물론 기업 협조도 필수적이다. 즐비한 초고층 빌딩 아래에서 발 뻗고 잠들기조차 힘든 서울살이에 지쳤다면 서울 밖 삶에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 누리던 걸 포기해야 한다면 선뜻 발을 떼기 어렵다. 주요 정부 기관을 옮기고, 이주를 지원해도 수도권 같은 인프라는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진료를 위해,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다시금 서울을 목적지로 하는 차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다. 단순 일자리 마련에 치중한 인구 분산 정책은 실질적 효과를 보기 힘들다. 일이 삶을 채우는 중요 부분이긴 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고, ‘살고 싶은 곳’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 유치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 삶까지 설계한 지원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
CREDIT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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