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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발, 대중교통 발을 떼기 어려워지다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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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발, 대중교통
발을 떼기 어려워지다
 
학교에 가기 위해, 출근하기 위해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 올해 들어 급격히 오른 요금 탓에 부담이 커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탈 수는 없는 노릇. 시민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대중교통 부담이 늘고 있다. ‘시민의 발’ 대중교통의 발을 떼기가 망설여진다.

 

비싸진 요금, 울며 겨자 먹기

포털사이트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검색하면 올해 1월 서울특별시가 게재한 대중교통소식이 가장 위에 뜬다. 공지 제목은 이렇다. ‘부득이하게 8년 만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 추진’ 서울시는 대중교통 경영 악화가 한계에 도달했고, 운영 어려움이 커져 ‘부득이하게’ 요금을 인상한다고 설명했다. 부득이하다는 표현이 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 거부감을 의식한 듯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지하철·버스·택시·항공 등 운송서비스 요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9.1% 올랐다. 16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라고. 또한 전국 1인 이상 일반 가구를 대상으로 작성한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2023년 2/4분기 교통비 지출은 총 33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다.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에서 예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 지역에서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서울시는 내년 하반기 지하철 요금 150원을 추가 인상할 예정이다. 한문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은 KTX도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대중교통 외에도 대부분 분야에서 물가가 치솟고 있어 서민 삶은 점점 더 힘들기만 하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안정을 위해 전기세 등 공공요금은 당분간 동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모든 요금이 오른 뒤 나온 발표였다. 대중교통 비용 부담까지 증가하니 먹고 사는 것에 더해 이동까지 큰 부담이 된다. 하지만 학교에 안 갈 수 없고, 출근도 해야만 한다.

 

애매한 정기권, 애매한 할인

우리나라 대중교통 요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꽤 저렴한 수준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단순히 1회 탑승 요금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된다.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의 실제 지출액을 살펴봐야 한다. 정기권 요금으로 비교해 보자. 독일은 지난해 3달간 일시적으로 ‘9유로 티켓’을 시행해 본국 시민은 물론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았다. 버스·지하철·트램을 포함한 전국 대중교통을 한 달 9유로, 약 12,000원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었다. 유류비 부담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기 위한 취지였다. 독일 교통기업연합회는 시행 기간 동안 자동차 운행이 약 10% 감소했고, 이산화탄소 배출은 총 180만 톤 줄었다고 밝혔다. 일종의 실험처럼 진행한 해당 정책 이후 독일은 올해 한화 약 7만 원의 한 달 정기권 ‘49유로 티켓’을 내놨다. 1회 지하철 요금이 2.25 유로, 약 3,000원임을 고려하면 매우 저렴하다. 독일 외에도 유럽의 많은 국가가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을 위해 기본요금보다 저렴한 정기권을 판매한다. 우리나라도 정기권이 있지만 다른 수단으로 환승이 불가능하고 지역별 제한이 존재한다. 결국 정기권 혜택을 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교통수단이나 지역 제한 없는 할인 혜택도 있다. 올여름부터 이용자가 대폭 증가한 ‘알뜰교통카드’는 전국을 대상으로 이용 거리에 따라 대중교통비를 환급한다. 그러나 특정 체크·신용카드에만 적용하는 혜택이기 때문에 제한이 크다. 알뜰교통카드 사용을 위해 새로 카드를 발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매번 승하차를 확인하는 일도 번거롭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K패스’를 신설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특별시는 내년 초 시범 사업 실행을 목표로 ‘기후동행카드’를 마련 중이다. 월 65,000원으로 서울 시내 지하철·버스·공공자전거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수도권 통합을 위해 경기, 인천과 협의 중이지만 경기도는 별도로 ‘The 경기패스’를 추진하기에 통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알뜰교통카드, K패스, 기후동행카드, The 경기패스 등 혜택이 여러 개로 나뉘면 소비자는 각각 대중교통 이용 정도, 지역, 거리를 비교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번거로워진다.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은 혜택을 받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적자 때문에 고립된 사람들

대부분 지자체 교통공사에서 요금 인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적자’다. 대중교통 흑·적자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은 바로 ‘역진성(逆進性)’이다. 거꾸로 가는 성질을 뜻하는 역진성을 조세 분야에 적용하면 소득이 적은 사람이 더 큰 부담을 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대중교통은 상대적으로 자가용 운행이 부담되는 사람이 이용하기 마련이다. 청소년·노인·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가 주로 이용하는 공공서비스에서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철도공사는 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노선을 줄이고 있다. 2004년 KTX 개통 후 기존에 전국을 잇던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에서 일부 노선이 꾸준히 사라지는 중이다. 옛 새마을호를 대신한 ITX-새마을도 중앙선 KTX가 개통하며 입지가 좁아지는 추세다. 현재 심각한 문제는 무궁화호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고속열차 시대에 남은 무궁화호는 여전히 농어촌의 작은 기차역을 들리며 느릿하게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른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지난 9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오피니언에서 “KTX가 인체의 대동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무궁화호는 모세혈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대동맥만으로는 국토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모세혈관 무궁화호가 사라지면 대도시와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은 점점 고립되어 갈 거다.

지난 9월 한겨레 장현은 기자는 전남 보성군에 사는 아흔 살 신달막 할머니 사연을 보도했다. 신 할머니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 예당역, 득량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환승 없이 서울 아들 집에 갈 수 있었다. 6시간이 걸렸지만 직통으로 도착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2021년 여름, 해당 열차가 사라진 뒤 서울에 가려면 인근 대도시인 광주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해야 한다. 기존 무궁화호를 이용하면 할머니 홀로 문제없이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이제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신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간다는 말도 잘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동의 불편함은 물론, 마음의 불편함까지 느껴진다. 폐쇄된 역과 기차는 할머니의 발뿐 아니라 마음까지 묶어버렸다.

하지만 공공성 확보를 위해 불어나는 적자를 안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부 시민 단체는 도로 통행료 등 자가용 이용자에게 거둬들인 세수를 대중교통 지원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자가용 사용을 점차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높이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후 위기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도 이를 목표로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꾀하는 중이다.


‘모든’ 시민의 발

발이 묶인 시민은 오늘도 어디선가 이동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시위를 막기 위해 특정 역을 무정차 조치하거나 역사 진입 자체를 차단했고, 진압 과정에서 시위자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건 장애인도 편리하게 지하철을 타는 것. 시위 진압에만 몰두해 그들이 말하는 권리가 아주 기본적인 이동권이라는 점을 잊은 듯하다. 아직 100%에 미치지 못하지만 대부분 역사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과라는 걸 많은 사람이 간과한다. 처음에는 장애인을 위해 설치했지만 그 외 노약자나 짐이 있는 사람도 편리하게 이용하는 ‘당연한’ 시설로 자리 잡았다. 어느 부분에서든 가장 취약한 계층을 고려하고 배려하면 더 많은 사람이 편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동권은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비용 등 재정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교통공사 적자를 면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높은 요금을 받는다면 그 또한 이동권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혜택이 중요하다. 모든 시민의 이동권 보장과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궁극적 목적은 수익 창출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독일은 ‘대중’ 교통이 아닌 ‘공공 교통(Öffentliche Verkehrsmittel)’이라는 뜻의 용어를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중교통도 대중을 더욱 세심하게 고려하고 더 나아가 공공교통으로 자리할 수 있길 바란다.
CREDIT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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